2016년 10월호

도전! 서울에서 협소주택 짓기

폭풍전야는 고요했지만…

5화_세입자 이사 & 한옥 철거

  • 글·홍현경 | kirincho@naver.com, 자문·이재혁 | yjh44x@naver.com

    입력2016-09-22 11:40:1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옥집 철거 전까지는 마냥 즐거웠다. 2015년 12월 내내 남편은 한옥에서 소규모 모임을 열었고, 우리 가족은 조촐하지만 편안한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다. 12월은 그렇게 꿈결처럼 흘러갔다. 그때만 해도 2016년이 이렇게 혹독할 줄은 몰랐다.
    2015년 12월은 따뜻했다. 세입자의 협조로 숙원이던 집 공사 일정을 잡을 수 있게 돼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 마음은 이미 봄을 맞았다. 



    부동산 시세가 오른다는데

    “작은 땅은 용적률을 제대로 찾아 지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이런 땅을 어떻게 찾았대?”

    “그래? 그런 땅을 누가 찾았나?”

    “그러게 내 마누라지~”

    우리 부부는 이러면서 논다. 혜화동으로 이사 온 후 6개월가량을 집도 들여다보지 못한 채 지루하게 보냈다. 이미 떠나온 동네 재건축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뉴스를 들을 때면 이런 유치한 말놀이는 나쁜 기억 더듬기로 변질된다.

    “그 집은 엄청 추웠어. 한강 바람이 장난 아니었어.”

    “맞아. 첫 달에는 뭣도 모르고 보일러 계속 틀었다가 관리비가 80만 원 나왔잖아.”

    “아휴 그전 집은 어떻고. 층간 소음 때문에 도망치듯 이사했잖아.”

    “맞아 정말 무서웠지, 그때.”

    그 무렵 남편의 귀가 시간은 항상 자정을 넘겼는데, 시끄럽다며 아랫집에서 올라와 소리를 칠 때면 나는 연신 죄송하다 조아렸고 두 아이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만 좀 하시라, 소리 질러주시던 옆집 아저씨가 어찌나 고맙던지. 사실 남자아이만 둘이라 소음만 나면 우리 집이 지목을 받았다. 억울한 일도 많았다.

    물론 그곳에서의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보다 더 많지만 부러 나쁜 기억을 떠올리며 ‘이곳이 좋다, 이 집이 더 좋다’ 위안하고 스스로 세뇌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 산 기간은 짧지만, 이 기간에 혜화동 근처 집을 알아봐달라는 지인이 2명이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집 찾기가 어렵고, 계약을 하려 들면 갑자기 집값을 1억 원 이상 올려버리기도 했다.

    재건축을 해서 갑자기 바뀌는 아파트촌과 달리 구도심은 한 집, 두 집 야금야금 바뀐다. 그것도 집 짓기 좋은 땅이 먼저 바뀐다. 몇 년 기다리면 다시 기회가 오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은 기다린다고 해서 좋은 땅이 나오는 게 아니라, 개발이 되고 나면 값이 너무 올라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 돼버린다. 리모델링은 그나마 낡은 다가구 주택들이 있어 여지가 있지만 작고 저렴하면서 위치도 나쁘지 않은 신축할 땅 찾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동네 사람들은 10년 전 시세를 기억하기에 너무 비싸졌다고 내려가기를 기다리지만, 딴 동네 사람들은 그나마 이곳이 싸다며 집을 사러 모여든다. 우리가 집을 구할 때만 해도 평당 2000만 원이면 작고 못난 신축 부지를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평당 2500만~3000만 원이라야 주차장을 만들 수 있는 부지를 구하는 것 같다.  



    세입자 이사 가던 날

    드디어 세입자의 이사 날짜를 받았다. 세입자의 전세금을 내주기엔 자금이 조금 모자라 대출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한옥집은 집을 사기 전 딱 한 번 보긴 했지만 신축을 염두에 두고 샀던 터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방이 2칸이었는지 3칸이었는지도 정확지 않았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에 비해 대출받기가 좀 어렵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시세의 80~90%까지 대출되는 아파트에 비해 주택 대출은 단계도 복잡하고 은행마다 대출 방법도 다르다. 일단 대출을 받겠다고 하면 은행에서 감정평가사에게 의뢰해 집 시세를 감정받는다. 그 감정가를 바탕으로 약 50~60% 대출이 되는데 이자도 일반 아파트보다 높게 책정된다.



    우리 집 구상도 실용과 재미의 접점을 찾다


    1 키친가든
    4층 주방 옆에 허브 및 식용이 가능한 여러 가지 채소를 심고 가꾸는 공간입니다. 거실과 식당에 인접한 테라스 구실을 하게 되는데,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죠.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도 설치하고, 해먹을 걸 수 있는 장치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가족의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하길 기대합니다.

    2 다락 & 실험실
    2인용 매트리스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다락은 손님의 거처이자, 아이들에겐 아지트 같은 공간이 될 것입니다. 비록 손바닥만 한 다락이지만 큰 창 너머 테라스가 연장돼 보여 답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락 앞쪽 테라스는 가드닝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이것저것 심어보면서 식물 공부하는 장소로 활용할 예정이고, 아이들은 인디언 텐트를 쳐놓고 친구들을 불러들일 작정입니다.

    3 엘리베이터 대신 도르래

    4 책 놀이 계단
    2층 현관 윗부분부터 3,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주변에 책꽂이를 연속적으로 배치해 계단은 사색의 공간이자 책 놀이의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중목 구조의 중문과 함께 이 집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합니다.

    5 머물고 싶은 욕실

    삼각형 테라스가 있어 충분한 채광과 조망이 가능한 욕실. 단독주택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요. 변기 공간을 별도로 분리해 바쁜 시간엔 여럿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6 건축 사무실

    7 임대 및 커뮤니티 공간

    1층은 층고가 다른 2개 공간으로 나뉩니다. 두 장소를 연결해 계단강의실처럼 활용할 수도 있고, 각 공간을 나눠 임대를 줄 수도 있지요.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사용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8 주차장 마당

    건물과 건물 사이에 끼어 좁고 긴 공간입니다. 음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몇 그루, 벽면 녹화를 위해 덩굴식물도 심고 흙을 만질 수 있는 마당으로 꾸밀 생각입니다. 1층에서 행사가 있을 땐 폴딩 도어를 열어 넓은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마당을 프라이빗하게 사용하기 위해 도로 쪽에 문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9 플러스 알파
    지하는 환경이 가장 안 좋고 비용도 많이 드는 공간이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크기로 계획했습니다. 이곳은 1층에서 직접 연결되는 화장실과 탕비실, 창고로 활용됩니다.



    홍 현 경
    ‘가드너’로 불리고 싶은 전직 출판편집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20년 동안 해오다 2014년 가을 퇴직했다. 요즘 정원 일의 즐거움에 푹 빠져 ‘시민정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재 혁
    ‘놀이터 같은 집’을 모토로 삼는 건축가. 재미있는 공간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
    서울시 공공건축가이자 한국목조건축협회에서 시행하는 5-star 품질인증위원으로 활동한다. 2004년 신인건축가상, 2008년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프라자 리모델링으로 서울시건축상을 받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