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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식 천도론에 문제 있다

  • 글: 김형국 서울대 교수·지역개발학 kimhk@snu.ac.kr

노무현식 천도론에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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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균형발전이 바람직하긴 해도 그게 천도에 의해 이뤄질 일이라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 수도가 옮겨져도 분권을 하지 않으면 중앙집권체제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 분권을 제대로 실현한다면 천도가 필요 없지 않은가.
노무현식 천도론에 문제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29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식’에 참석해 개막 버튼을 누르고 있다.

지난 1월29일 대전에서 열린 ‘지방화시대 선포식’에서 참여정부 수장(首長)이 행정수도에 대한 속내를 보다 구체적으로 밝혔다. “천도(遷都)는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민주화, 남북평화 등은 전직 대통령이 다 해버려 그 정도론 역사책에 빛이 안 날 것 같아 지방화만큼은 내가 간판을 붙이겠다”고 했다. 이 발언은 거대 국책사업에 대한 개인 야심, 그리고 역사관을 말하고 있어 특히 주목된다.

지배세력 바꾸겠다는 발상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얼마 뒤엔 역시 대전에서 “충청도에서 재미 좀 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언급이 행정수도안(案)이 대선전략용 임기응변책이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과거 행적의 자평이었다면, 위의 두 시각은 관련 국정의 미래에 대한 시사다. 무엇보다 지배세력의 변화라는 뜻은 행정부만 이전하는 분도(分都)가 아니라 천도(遷都)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말을 통해 행정부만 옮길 것인지 중앙권력 3부(府) 모두를 옮길 것인지, 그동안 애매했던 천도의 정체가 점차 베일을 벗고 있다.

지배세력의 변화를 염두에 둔 천도는 멀게는 조선개국도 그렇지만, 가깝게는 반세기 전 외국사례에서도 나타난다. 파키스탄과 브라질의 경우인데, 두 나라 모두 구(舊)수도를 청산해야 할 식민정치의 인적·물적 잔재라 여겨 참신한 국풍(國風) 조성을 목적으로 삼아 각각 새로 수도를 만들었다.

이런 시각이라면 국토가 분단될 즈음 북한이 처음 그들 헌법에 명시한 대로 서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로, 아니 한반도의 정통수도라 우길 만도 했다. 북한과는 달리, 남한은 친일세력을 척결하지 못한 채 한동안 식민세력의 거점이던 서울을 장소적 관성에 따라 계속 수도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반도의 정통성 계승에 명분이 약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라는 문명사적 순리를 선택한 덕분에 오늘의 남한은 국력에서 북한을 압도한다. 이런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건국과정에서 북한보다 많은 인구 그리고 수도 서울의 역사성 선점이 국가 정통성 쌓기에서 상대 우위를 안겨주었다는 점이 새삼 고마울 뿐이다.

해방직후 첨예한 이념갈등으로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과연 참여정부가 편 가르는 신·구 지배세력은 누구를 말함인가. 뜨고 지는 것이 있음을 변화라 한다면 386민주세력은 역사적 소명의 신진 사류(士類)이고, 나라를 절대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 피와 땀을 흘린 경제개발 역군들은 모조리 기득권층이요, 그래서 타기 내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말인가.

성장제일주의가 우리사회에 성취만큼이나 부작용을 낳았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부귀를 쌓는 일이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사회에 만연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도덕성이 가장 중시돼야 할 교육계마저 교육감선거가 돈 잔치판으로 치러진 사실은 기성세대의 타락상을 말해주는 생생한 보기다. 그렇다고 386 민주세력의 행세가 모두 도덕적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참여정부 수장의 측근들이 줄줄이 뇌물수수로 쇠고랑을 차고 있음이 작금의 상황이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세대·계층·지역·이념정향(定向) 별로 허물이 많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이력별 특장(特長)을 북돋우어 상승적 통합을 유도하는 것이 위정자의 본분이 아닌가. 그래야 이 나라가 민주화와 지속 성장의 양 날개로 계속 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한 이분법적 발상

프롤레타리아 혁명식 자본주의 개조론에 서 있다고 믿고 싶진 않지만, 지배세력 변화에 대한 참여정부 수장의 언급은 지역이나 사회계층상 주변부 반(反)엘리트를 ‘압제’해온 지배엘리트가 그들의 반발을 ‘중화’하고 ‘흡수’하는 데 실패하면 마침내 주변부 반엘리트에 의해 ‘대체’되고 만다는 계층갈등론을 염두에 둔 듯이 보인다. 노사화합이니 진보 대 보수의 상생이니 하던 그동안의 언급은 모두 진심이 아니었다는 인상을 줄 만하다.

계층갈등론은 한때 우리 현대사회의 전개를 설명하는 데 유효한 이론으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3공 등장의 계기였던 5·16 군사쿠데타의 전후사정을 그러한 거시이론을 빌려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과 주변 중부지방을 근거로 삼은 정치권이 국가를 독선적으로 다스릴 뿐 국민의 복리 향상에는 지극히 무력했던 반면, 무반(武班)을 하대하던 전래 사회인식의 연장선에서 6·25 전쟁때 몸을 바쳐 나라를 지켰음에도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군부는 오히려 미군을 통해 현대적인 경영기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쟁중에 육국사관학교가 진해로 피난을 오고 경상도 출신 청년들이 대거 입학해 반엘리트로 자라났다. 이 기반을 토대로 국가성장의 기치를 높이 들고 기성 정치인들을 대체한 것이 바로 5·16쿠데타였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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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형국 서울대 교수·지역개발학 kimh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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