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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령조로 쓴‘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

죽어도 편 안 가르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

  • 김화성│동아일보 전문기자 mars@donga.com│

타령조로 쓴‘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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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으로 말만 많고 진심과 진실은 통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은 무슨 텔레파시가 있는지 예부터 ‘거시기’ 세 글자면 모든 게 통합니다. 그동안 이 ‘거시기’란 말은 각종 영화, 문학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됐는데요, 필자는 이 거시기란 말을 ‘말이 돌처럼 딱딱허게 굳은 시상에, 혼자 앙앙불락허는 미친넘들의 나라에서, 죽어도 편을 안 가르는, 맴과 맴을 이어주는 침묵의 소리’라고 정의합니다. 이 글은 전라도 사투리를 타령조로 쓴 것이므로 표준어와 맞춤법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타령조로 쓴‘거시기’의 사회학적 재해석

‘거시기’란 말은 자연과 동심을 닮았다. 드러내지 않아도 그 속내를 알 수 있는 밝고 따뜻한 말이다.

요즘 난 거시기 헙니다. 먹는 것도 거시기 허고, 자는 것도 거시기 헙니다. 신문을 봐도 거시기 허고, TV를 봐도 영~ 거시기 헙니다. 치깐에 안저 있어도 속이 더부룩허니 거시기 헙니다. 꼭 목구녁에 무신 거시기가 걸린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 저승에 기신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만난 날은 하루점드락 맴이 걍 거시기 혀부립니다. 거울 속에서 삐죽삐죽 준치 까시 같이 돋은 은바늘 턱자락을 보먼, 거시기 혀부립니다. 한겨울 미나리깡 연초록 잎들을 보먼 코가 시큰허니 거시기 혀부립니다.

날씨가 꾸무럭혀서 그런가요? 나이 탓인가요? 몸이 껄쩍지근~허고, 심드렁~허고, 녹작지근~ 헌 것이 참 지랄 같습니다. 찌뿌등등~ 헌 것이 작대기로 여나무대 얻어맞은 것 같습니다. 저~, 거시기 머시냐~, 역시 나이는, 삼말사초가 질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하먼요, 삼십대 말에서 사십대 초 때야 머 무서운 게 없었응게라.

술 머그먼 머리 속이 몽롱허니 허부적댈 때 진즉 알아보아야 혔습니다. 글자가 물범벅이 되어 희끄무레 보일 때 거시기 혔어야 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먼 손발이 저릿저릿, 허리가 시큰시큰, 모가지가 뻐근녹작헐 때 거시기를 히써야 혔습니다.

시상 일도 그렇습니다. 한창때는 기먼 기고, 아니먼 아니고, 니기미 작것, 뚜부라도 단칼에 동강내버렸는디, 인자는 머시 진짜이고, 머시 짝퉁인지 잘 모르겄습니다. 머시 옳은 거시고, 머시 그른 거신지 알다가도 모르겄습니다. 이거시 저것 같고, 저거시 이것 같고, 거시기가 저시기이고, 저시기가 그 거시기이고….

사람 속은 또 얼매나 헷갈립니까? 한 사람을 알았다 싶으먼, 금시 모르겄고, 모르겄다 싶으면, 어느 날 문득 쬐께 알거 같기도 허고. 참말로 폭폭헙니다. ‘연못에는 빠져도 사람한티는 푹 빠지지 말라’고 혔는디, 그 말뜻을 인자사 알거 같습니다. 물에 빠지먼 깨구락지 히엄이라도 쳐서 나올 수 있겄지요. 그런디 사람헌티 한번 폭 빠지먼 죽어도 못 빠져 나당게요. 정말 거시기 머시기 혀부립니다.

탤런트 김성환(1950~)의 별명은 ‘거시기’입니다. 나같이 아래 사람덜은 그를 이무롭게 ‘거시기 성님’으로 부릅니다. 한자로는 클 ‘거(巨)’자에 심을 ‘식(植)’자 ‘김거식(金巨植)’입니다.

거시기 성님이 밸 이름도 없이 방거충이 맨치로 방송국에 허청허청 댕기던 80년대, 긍게, 저~ 거시기…, 무슨 드라마더라? 하여튼 그 머시기 TV연속극에 ‘거시기’라는 뜨내기장사꾼으로 등장헌 적이 있었는디, 그때 겁나게 떠부렀지라. 그때부터 ‘거시기’가 별명이 돼부렀습니다.

거시기 성님은 입이 걸쭉헙니다. 말도 능청시럽고 능글 징글맞습니다. 남덜이 배꼽을 잡고 뒹굴어도, 자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조 으시딱딱허게 썰을 풀어갑니다. 노래도 가수 뺨치게 잘해부럽니다. 해마다 어버이날이나 연말연시가 되먼 디너 숀가 먼가를 삐까번쩍헌 호텔으서 멋들어지게 해부립니다. 아니 연기허는 사람이 먼 넘의 노래를 그렇게 징허게 잘허는 지…원. 거시기 성님이 디너쇼에서 빠지지 않고 허는 구라가 있습니다. 바로 ‘거시기 구라’입니다.

거시기 성님의 거시기 구라

나 고향은 전라북도 군산인디, 제 옆집에 아덜 삼형제를 둔 농부아자씨가 살고 있었구만이라. 근디 이 양반이 얼매나 부지런헌지 시복부터 깜깜헐 때까정, 기양 논에서 살다시피 혔지라우. 이 양반이 어느 날 시복에 논에서 돌아와 정신없이 끼대자고 있는 아들덜을 깨우는디, 그게 참말로 요상시럽다~ 이겁니다요.

“옴메, 요런 싸가지 없는 것들 보소, 해가 똥구녁 우그까지 번허게 떴는디 시상 모르고 끼대 자빠져 자고 있네 그랴. 야, 거시가? 얼릉 일어나 나 잠 봐라 이잉? 이것떨이 귀를 쳐 먹었나. 거시가? 안 일어날래! 이 썩을 오살헐 넘아! ”

거시기가 누군가? 나는 고개를 자우뚱 혔습니다. 나가 아는 3명 아덜은 모다 번듯헌 이름이 있었는디, 기양 ‘거시기’라고 부르면 어느 자식이 일어날지 나가 생각혀도 쬐께 깝깝혔습니다. 근디 누군가 “예, 아부지 시방 일어나는 구먼이라~”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아덜이었습니다. 히야, 큰아덜이 거시기로구나! 근디 그 아자씨 다음 말이 더 걸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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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동아일보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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