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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리포트

한국 1세대 애널리스트 김경신의 ‘25년 현장 투자론’

  • 글: 김경신 브릿지증권 상무 kski@bridgefn.com

한국 1세대 애널리스트 김경신의 ‘25년 현장 투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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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년 주기로 ‘큰場’온다
  • ●수급·재료보다 경기가 우선
  • ●손절매 달인이 진짜 고수
  • ●투자자금과 실물자금을 구분하라
  • ●고양이 줄 생선은 남겨놓고 발라먹자
  • 주가는 언제 오르고 언제 내렸을까. 왜 오르고 왜 내렸을까.
  • 어떤 테마가 어떤 상황에서 빛을 발했을까. 종합주가지수 1000 돌파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날은 언제 다시 올 것인가.
  • 대한민국 1세대 애널리스트 김경신이 25년 현장 체험을 통해 분석한 우리 증시의 흐름과 가슴에 새겨야 할 투자 10계명.
한국 1세대 애널리스트 김경신의  ‘25년 현장 투자론’

수많은 투자자의 환호와 한숨이 어린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돌이켜보면 유난히도 승부 걸기를 좋아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화투면 화투, 카드면 카드, 신물이 날 정도로 몰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어 계면쩍은 웃음만 나온다. 아마도 정상적인 틀 안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조금은 비정상적인 ‘초과 수익’에 대한 기대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듯하다. 피천득의 ‘수필’에 나오는 청자연적의 파격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변화무쌍한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던 차에 대한증권업협회에 입사한 게 1978년 4월이었으니 증권계에 종사한 지 벌써 만 25년이 지난 셈이다. 증권업협회 조사부에 근무한 지 10년 만인 1988년 초에 대유증권(현 브릿지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그후 15년 동안 리서치 업무를 담당했으니 싫증도 날 만한데, 해도 해도 모자란 듯해서 그런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내겐 보잘것없다 해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TV와 라디오에서 방송도 하고, 신문에 기고도 하면서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남해안의 작은 섬에 산다는 어부로부터 휴전선 근처에서 병역의무를 치르고 있다는 사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로부터 증권투자와 관련한 문의를 받곤 했다.

필자는 지난 25년간 증권 제도 연구와 기업 분석, 그리고 차트를 통한 투자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주관과 방법론을 갖고 투자자들 앞에 서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래도 늘 미흡한 느낌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넘치는 자금, 건설로! 건설로!

1978년 봄, 증권업협회에 입사할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해외 건설경기 활황으로 건설주 열기가 뜨거웠다.

1973년 10월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1배럴당 3∼4달러 하던 국제 유가가 11∼12달러까지 폭등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 기업들은 치명타를 맞았다(제1차 오일 쇼크).

하지만 그후 국내 건설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중동 건설시장에 뛰어들어 ‘오일 달러’를 벌어들였고, 이로 인해 1970년대 중반부터 시중 유동성이 높아진 데다 건설주 붐이 일면서 주식시장도 상승세를 타게 된 것이다. 1975∼76년에 건설주는 연평균 200%를 넘는 상승률을 보였고, 1977년에는 135%, 1978년 들어서도 상반기 중에만 99%라는 기록적인 주가 상승률을 실현하는 등 과열 장세가 이어졌다.

이처럼 1978년에는 넘쳐나는 시중 자금이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을 넘나들었는데, 부동산시장에 대한 규제가 체계화한 것도 이때부터인 듯하다.

당시 들리는 얘기로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지어놓고 한동안 분양이 잘 안 돼 고전하던 한보종합건설이 ‘한 방에’ 분양을 끝냈을 정도였다. 그 무렵 잘나가던 건설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번듯한 사옥을 마련했는데, 한보건설은 은마아파트가 사운(社運)을 일으키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보고 아파트 단지내 상가에 둔 본사를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주식시장의 열기도 대단했다. 특히 건설주들은 한동안 ‘팔자’ 물량이 없어 시세판이 온통 기세 상한가(전일 종가보다 높은 상한가로 ‘사자’ 주문이 나왔지만, ‘팔자’ 주문이 없어 거래가 체결되지 않을 경우의 상한가 ‘사자’ 주문)로 표시되는 바람에 ‘사자’ 쪽에 붉은 삼각형이 쭉 연결되기도 했다. 회사 이름에 ‘건설’자만 들어 있어도 건설회사인 줄 알고 페인트 제조회사인 ‘건설화학’에까지 ‘묻지마’ 매수 주문을 냈다는 사연도 있었다.

1977년에는 건설주 가격이 급등을 거듭하자 급기야 일부 건설주의 경우 매수 주문을 내기 전에 매수 대금의 100%를 미리 내도록 했고, 전날 종가보다 높은 가격의 매수 주문을 인정하지 않는 ‘주가동결조치’ 등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의 증권주나 1990년대 말의 벤처기업 주식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만큼 건설주의 인기는 그야말로 ‘짱’이었다.

당시 증권회사 객장에는 지금의 전광판 대신 상장회사 이름이 빼곡이 쓰여 진 커다란 칠판이 있었는데,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주문시세와 체결시세를 받아적느라고 분주히 뛰어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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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경신 브릿지증권 상무 kski@bridge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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