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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2003 노벨문학상 수상작) : 사유의 무게를 최소한의 언어로 응축

  • 글: 왕은철 전북대 교수·영문학 cwang@mail.chonbuk.ac.kr

추락(2003 노벨문학상 수상작) : 사유의 무게를 최소한의 언어로 응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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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2003 노벨문학상 수상작) : 사유의 무게를 최소한의 언어로 응축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동아일보사. 296쪽/ 7500원

10월2일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존 쿳시(John Maxwell Coetzee)가 선정됐음을 알리면서, 여러 후보 중에서 18명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그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전세계 학자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선택’이었다며 갈채를 보내고 있다. 오랜 기간 그의 팬이었으며 그의 소설 중 일부를 번역했고 그에 관한 논문을 써온 나도 이견이 있을 리 없다.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이 왜 ‘훌륭한 선택’이었는지 짚어보기 전에, 그의 이름에 관한 혼란부터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국내 언론과 학자들은 그의 성을 코에츠, 쿠에츠, 쿠체, 쿠치에, 쿳시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고, 때로는 그의 이름이 요한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나는 1998년 4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쿳시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첫 질문이 이름이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정확한 발음은 쿳시이(kut-SEE)입니다. 두 번째 음절에 강세를 주면서 ‘시이’라고 길게 발음하고, 첫 음절은 풋(put)과 운이 맞는 쿳시(kut)로 하면 됩니다.” 이후 그의 이름을 ‘쿳시이’로 표기했고, 번역서를 내는 과정에서 장모음과 단모음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 ‘쿳시’가 됐다. 현지의 발음은 쿳시아(kut-see-uh), 쿳시어 등으로 우리말로 정확하게 표시한다는 게 힘들지만, 저자가 쿳시로 불리길 원한다는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쿳시는 1940년 케이프타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우스터(Worcester) 에서 태어나 수학, 언어학, 컴퓨터, 문학 등을 전공했다. 가장 뛰어난 쿳시 전문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애트웰(David Attwell)에 따르면 쿳시는 “지적인 힘과 균형적 스타일, 역사적 비전과 윤리적 통찰력을 독특한 방식으로 통합”시킨 독창적인 작가다. 한 작가에 대한 평가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이는 윤리성, 역사성, 정치성, 문학성 등 작가라면 누구나 도달해보고 싶은 최고의 경지다.

쿳시가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들은 얼마 전 출판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Elizabeth Costello)’를 포함한다 해도 8권에 불과하다. 또 그의 소설들은 분량 면에서 보통 장편소설의 절반 정도로 짧은 편이다. 작품의 수가 많고 적고, 내용이 길고 짧고의 문제가 작가를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겠지만, 쿳시의 경우는 좀 유별나다. 그럼에도 세계는 그를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가라고 평가한다. 그 이유가 뭘까. 답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바로 발표한 소설의 수가 적고 그 길이가 짧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한없이 회의적인 작가

그는 소설에서 리얼리즘이 아니라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온 작가다(그러나 소설과 달리, 그의 산문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가 ‘뉴욕타임스’나 ‘뉴욕북리뷰’ 등에 쓴 글을 보면 그처럼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야만인을 기다리며’ ‘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추락’과 같은 미니멀리즘 소설을 썼는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세상의 리얼리티를 재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스토리 전개에 치중하는 리얼리즘 작가와 달리, 쿳시는 최대한의 것을 최소한의 언어로 응축하고자 한다. 그러니 소설이 마냥 늘어질 수 없는 것이다. 늘어지는 것을 배격하고자 하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속성인 까닭이다.

따라서 쿳시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폭발적인 힘은, 사유의 무게를 최소한의 언어로 담아내는 쿳시의 천재성에 기인한다. 결국 그의 소설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 베케트에게서 심오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한오라기의 감상도 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그 사유의 폭과 깊이를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이 말한 바와 같이, 그는 한없이 회의적인 작가(doubter)이다. 그는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이런저런 형태로 존재해온 제국주의, 식민주의, 권력, 성, 인종 등의 문제를 소설 속에서 사유하며 차원 높은 경지로, 거의 종교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작가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소설을 ‘사유의 한 방식’이라 생각하는 그의 독창적인 소설미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남아프리카의 참담한 비극적 식민사가 잊혀진다 해도, 그의 소설이 갖는 보편성과 사유의 깊이는 그대로 남아 그것을 읽고 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고두고 편치 않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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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왕은철 전북대 교수·영문학 cwang@mail.chon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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