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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⑫

온 밥상에 쑥 천지, 춘분 전에 감자 심고 춘분 지나 홍화 심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온 밥상에 쑥 천지, 춘분 전에 감자 심고 춘분 지나 홍화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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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집안에 가만 있어도 돈이 재깍재깍 나가는 기분이었다. 관리비, 할부금, 화장실 한번 다녀와도 물값, 입에 뭐 하나 들어가도 다 돈이었으니…. 시골서는 돈에서 벗어나 살고자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다. 내가 아는 분은 전기, 전화 없이 산다. 산에 옹달샘 받아먹고, 먹을거리는 자기가 농사한 거 먹고, 땔감 해다가 불 지핀다. 돈에서 자유로운 조건이 아닌가. 이렇게 살아주는 이가 있다는 건 우리에게 큰 힘이 된다. 그렇게까지 살지 못하더라도 가능성은 있으니까.

시골서 돈 벌어, 도시 수준으로 쓰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병원비, 아이들 학비, 백화점 쇼핑…. 시골과 도시는 아예 화폐가치가 한 자리쯤은 다른 세계다. 그렇지만 병원에 안 가고, 아이들 학비 안 들면, 소소한 생활비로 살아갈 수 있다. 물론 얼마 안 되는 이 돈 마련이 그리 쉽지 않은 것도 농촌 현실이다. 그러나 이 돈이 없어 못 살고 떠나지는 않는다.

귀농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다르다. ‘귀농’이라는 한마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농사를 크게 벌여 일년 소득을 거뜬히 몇 천씩 하는 귀농이 있다면, 텃밭 정도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귀농도 있다. 일년 내내 땅에 코 박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일에 파묻혀 밭에 풀이 자라는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다 자기 형편대로 자기 모습대로 살아간다.

돈도 그렇다. 사람마다 한달 생활비가 다 다르다. 일년에 몇십만 원만 있으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일년에 몇천만 원이 있어야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자녀를 도시로 내보내 공부시키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겠나. 귀농자금도 그렇다. 우리 이웃에는 시골 빈집 빌려 살고, 논밭도 빌려서 농사하는 집이 있다. 산골 빈집은 거저 살지. 농사를 열심히 한다면, 그래서 먹을거리 자급자족한다면 도시 한두 달 생활비로 일년을 산다. 한 집은 맨손으로 시작해 땅도 사고 번듯한 집도 지었다. 유기농산물을 생산해 세상에 좋은 일을 한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리 부부는 삼십대 후반인 1996년에 시골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큰애 책가방, 작은애 기저귀가방 들고 몸만 내려왔지만, 얼마 뒤 서울 생활을 정리해 목돈을 마련해서 우리가 자리잡고 살 터를 찾았다. 남편은 평당 만원대 땅을 찾았고, 시골로 내려온 지 이 년 만에, 이곳에 마련했다. 논 천평, 밭 천평. 그리고 남는 돈으로 집을 지었다. 자려고 누워서 생각해본다. 없는 게 없는 부자가 바로 나구나. 시골로 오면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우리 집에는 아이들까지 일꾼이 넷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 있으니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돈은 별로 없다. 작은애가 용돈을 달라기에 얼마를 바라느냐고 물으니, 한달에 천원을 달란다. 인사는 우리 농산물로 한다. 조카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고추장을 담그고, 형부 육순에 황톳물 들인 베개를 만들어 드렸다. 가을에 오리 잡아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보약 해 드리고, 식구 생일에는 정성껏 음식 만들어 잔치를 한다. 소소하게 들어가는 생활비는 그때 형편에 따라 마련해왔다. 쌀과 고추 농사해서 마련하기도 하고, 지난해는 원고료 덕에 지냈다.

앞으로는? 앞날은 앞질러 생각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 그때는 나름대로 길이 있겠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만족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자기 물음이다. 돌이켜보면 도시서 살 때는 의지로 살았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어떻게든 밀어붙이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렇게. 자연에서는 그렇게 한다고 되나. 머리만 앞서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날 눈떠 그날 날씨에 맞춰 하루 일을 정하듯, ‘지금 여기에’ 살려 한다.

내 안에 숨어 있던 가능성이……

‘지금 여기에’ 사는 이야기를 해보자. 이 이야기는 아이들 교육과 이어진다. 시골로 내려오고 학교를 그만두니, 우리 아이들은 우리 부부만의 아이들이 아니다. 많은 분이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신다. 때로는 자기 아이보다 더.

처음에는 우리도 아이들 교육으로 조마조마했다. 큰애가 전교생 여섯 명인 분교를 다닐 때. 그때는 그때대로. 나중에 면소재지 초등학교로 옮겨왔을 때는 또 그대로. 너무 외롭지 않을까. 아이한테 환경변화가 너무 큰 게 아닐까. 학교를 차례차례 그만둘 때도 마음이 뒤집어지곤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도 한동안 학과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냈지.

그렇게 한 발 한 발 걸어오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이 자기대로 우뚝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아이들은 함께 밥 먹는 식구, 나와 대등한 인격이다. 내가 뭐를 해줘야 할 것도 없고, 아이들도 내게 바라는 것은 함께 살아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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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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