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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살인을 추억하다 시대를 조롱하다

‘살인의 추억’과 화성 어섬비행장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살인을 추억하다 시대를 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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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간 10명의 여성이 살해당한 이 기막힌 미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봉준호는 역설적으로 빼어난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가 그리려 한 건 사실 살인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는 시대의 혼란상이 그의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살인을 추억하다 시대를 조롱하다
연쇄살인을 추억하기 위해 특정 장소를 일부러 가기란,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포토그래퍼 김성룡과 짧은 시간 논쟁을 벌인 것은 그 때문이다.

“아니 뭐,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맥베스’의 살인 장면이 아무리 뛰어났다 한들 그걸 연상시키려고 그의 아내가 찰스 맨슨에게 살해당한 뉴욕 아파트 주변을 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러자 김성룡이 말했다.

“누가 그 장소 그대로를 가자고 합니까. 그냥 화성엘 가자고요, 화성! 화성에 갈 만한 곳이 있어요! 살인을 추억할 만한 곳이 있다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화성으로 향했다.

“이 새끼, 무조건 잡아야 해”


살인을 추억하다 시대를 조롱하다
경기도 화성. 연쇄살인으로 악명 높은 곳. 2003년 봉준호가 만든 ‘살인의 추억’ 속 형사 서태윤(김상경)은 범인을 쫓다 몸과 마음이 풀처럼 되고 만다. 풀. 들판의 풀이 아니고 종이를 붙이는 끈적끈적하고 흐물흐물한 풀. 그는 경찰대학을 나온 엘리트이자 과학수사를 믿는 인물이다. 반면 화성 토박이 박두만(송강호) 형사는 범인은 본능과 직관으로 때려잡는 편이 맞다고 생각한다.

둘이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건 성장의 DNA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두 사람은 어느 날, 그날도 범인의 꼬리조차 잡지 못하고 철수했는데, 강력반 책상에 얼굴을 마주 대고 엎드려 대화를 나눈다. 봉준호의 카메라는 그런 두 사람을 책상 위에서 부감(俯瞰) 숏으로 잡는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에 대해 절박한 증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영화 속 형사 둘에게 자기 동일화를 강하게 형성시킨다.

죽기에 딱 좋은 날씨


서태윤이 말한다. “과학수사고 뭐고 이 새끼를 무조건 잡아야 해. 무조건.” 그러자 박두만이 감탄하듯, 자조하듯 그러면서 오히려 걱정하듯 답한다. “너 참 많이 변했다.” 그리고 둘은 뭔가가 생각난 듯 다시 단서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화성으로 가는 길, 정확하게는 포토그래퍼에게 이끌려 어섬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마음이 착잡했다. 아무리 농담처럼 우리는 남자고, 게다가 빨간 옷을 안 입었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달리는 차 밖으로 가뜩이나 흐린 날은 한바탕 비를 쏟아낼 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인이 벌어진 날은 꼭 비가 오고 있었다지…. 영화를 생각하며 스마트폰 뮤직앱으로 유재하의 노래를 튼 것은 다소 오버였다. ‘우울한 편지’가 차 안에 흘렀다.

생뚱맞은 대사가 포토그래퍼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영화 ‘신세계’에서 패밀리 2인자 이중구(박성웅)가 죽기 전에 한 말이다.

“거, 죽기에 딱 좋은 날씨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 말을 끝으로 우리 둘은 차 안에서 입을 다물었다. 날씨처럼, 세상처럼, 그리고 화성 연쇄살인범의 마음처럼, 그를 끈질기게 쫓던 형사들의 마음처럼 우리의 마음도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어섬비행장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에 있다. 여기에 도착하면 이곳을 왜 오자고 했는지, 여기가 왜 ‘살인의 추억’ 현장 같은 느낌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일단 평일에는 인적이 아예 없다. 괴기스러운 숲과 황량한 벌판, 누군가 숨어 있을 성싶은 갈대밭이 이어진다. 아마도 역설적으로 세상 끝에 숨고 싶은 연인이라면 어두워지기 전 둘만의 공간을 위해 이곳을 찾겠구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없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 사람이다. “원래는 경비행장 활주로로 쓰던 곳이에요. 요즘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화보 촬영하는 데 쓰곤 해요. 일몰이 죽이거든요.” 김성룡이 셔터를 누르면서 띄엄띄엄 말을 이어간다.

살인을 추억하다 시대를 조롱하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들은 죽어라 연쇄살인범을 쫓지만 결국 잡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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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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