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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언제나 진지했던 아버지의 식탁 강의

  • 글: 박근혜 국회의원

언제나 진지했던 아버지의 식탁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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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는 역사를 좋아하셨다. 스크랩을 하시고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으셨다.
  • 아버지는 정리정돈을 철저히 했다. 물건도 생각도 항상 반듯이 정리해 놓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프랑스에 있던 나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동생 편에 알려주셨다.
  •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그러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 나도 정치의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언제나 진지했던 아버지의 식탁 강의

대형 지구본을 둘러보고 있는 박근혜 의원의 어릴적 가족들. 오른쪽부터 박서영·박근혜·육영수 여사·박지만·박대통령이다.

나는 부모님을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특히 정치를 시작한 후 아버지를 닮았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듣는다. 자식이 부모를 닮았다는 이야기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정치인이 된 지금은 그 말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고, 가장 큰 지혜는 삶의 모델을 보고 배워서 얻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 세 가지 만남 중 하나가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나의 부모님은 내 삶의 모델이다. 특히 정치인이 된 지금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선배이자 스승이며 나침반과도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집이 너무 가난해서 밥을 굶을 때가 많았고 이웃집에서 생선 굽는 냄새가 나면 몹시 먹고 싶었다던 얘기를 하시곤 했다. 그래서 가난이 무엇이고 배고픔이 어떤 건지를 잘 알고 계셨다. 나라가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국민들이 고생하는 것을 한으로 여기셨던 아버지는 우리 민족이 갱생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셨다. 나는 고달픈 몸을 이끌고 한밤중에 잠을 못 이루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할 수 있다’는 정신 절대 양보하지 않아

그런 아버지에게 국익은 모든 가치에 최우선하는 것이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든 국익과 관련해서는 절대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으셨다. 안으로는 국민들이 가난과 패배의식에 젖어 있고, 밖으로는 공산주의의 침략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께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주 국방을 이루고 국민들의 패배의식을 개조해서 ‘할 수 있다’는 정신을 심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것이 아버지가 생각한 국익이었다.

아버지는 시작한 일을 흐지부지 끝내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정말 대단하셔서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챙기셨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결심한 후에는 자나깨나 고속도로 생각을 하면서 길을 어느 쪽으로 내는 것이 좋을까를 결정하기 위해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몇 번이나 현장을 순시하셨다.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의 구조는 어떻게 할까 종이에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직접 그려보시기도 했다.

제주도에 농장을 지어 귤을 재배하는 일을 계획하실 때는 1년 수익이 얼마나 될까를 전문가들과 일일이 계산하셨고 나무를 어떻게 심어야 할지까지 생각하셨다. 공업단지를 지정할 때도 반드시 직접 사전답사와 현장확인을 하신 후 결정하셨다. 그렇게 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나 역시 어떤 일을 할 때는 끝까지 점검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수리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당시에는 가뭄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는 자나깨나 가뭄걱정을 하셨다. 식사할 때도 ‘오늘은 비가 와야 할텐데…’ 하며 걱정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린 나도 걱정이 돼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오늘은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가족의 간절한 바람 자체가 ‘비가 오는 것’이 되었다. 아버지의 노심초사 때문에 우리 모두가 나라 걱정을 한 것이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가뭄으로 갈라진 국토를 순례하다가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역사 관련 연재물 직접 스크랩

아버지는 역사를 좋아하셔서 역사책을 많이 읽으셨다. 신문이나 잡지에 난 역사관련 연재물을 직접 스크랩하거나 밑줄을 긋고 노트를 해가면서 열심히 보셨다. 주무시기 전에는 당시에 유명했던 역사 강의를 듣고 잠자리에 드셨는데, 나와 함께 역사 현장을 방문할 때에는 역사적인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국민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아버지는 많은 유적지를 정비하셨고 국난극복의 훌륭한 전통과 민족문화를 더욱 계승·발전시키려고 노력하셨다. 반면 우리 역사에서 사대주의와 당쟁, 게으름과 개척정신의 결여 같은 부정적 유산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셨다. 아버지는 이를 우리가 반드시 철폐해야 할 나쁜 유산이라고 강조하셨다. 이렇게 역사와 국가적인 이슈에 대해 아버지와 토론을 벌이면서 당시 민감한 나이였던 나는 아버지의 말씀과 정신을 생생히 뇌리에 박게 되었다.

아버지는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좋아하셨다. 말만 앞세우는 것을 싫어하셨다. 과학자·기술자·기능공들이 국가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려고 노력하셨다. 각종 연구소들은 그때 설립되었다.

아버지의 그러한 태도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던 나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나 고민하셨던 아버지는 전자산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이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을 짜고 계셨다. 자연 나는 아버지는 물론이고 김완희 박사를 비롯해서 여러분들로부터 전자공학의 중요성을 듣고 접할 기회가 자주 생겼다. 그래서 당시로는 아주 드물게 여성으로서 전자공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1974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나는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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