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미동맹 50주년, 흔들리는 한미 관계]

이제 미국은 없다?
崇美에서 反美까지… 한국인의 복잡한 심리 분석
반미, 학생운동의 주요 이슈

1982년 3월 문부식씨가 주동이 돼 일으킨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현장 검증 장면
당시 친미의식은 이런 현실적인 근거만 갖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인 조건 못지않게 이념과 사상에서도 미국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동의어였으며, 우리가 뒤쫓아야 할 이념적, 정치적 모범으로 생각됐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우리 현대사에서 중대 사건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가졌던 위상이다.

예를 들어 1960년 4월 혁명에서 미국의 태도는 혁명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혁명 초기 시위에 침묵을 지킨 미국이 4·19 직후 이승만 대통령에게 부정선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관련자 제거, 선거법과 국가보안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무엇보다 군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함으로써 혁명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1970년대 초반까지 긴밀하게 유지돼 온 한미 관계는 이른바 1976년 ‘박동선 사건’으로 촉발된 ‘코리아 게이트’를 기점으로 불편한 관계로 바뀌었다. 이 불편한 관계는 ‘인권 외교’를 표방한 카터 행정부 당시 절정에 달했는데,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포함해 한미 관계의 긴장이 고조됐다.

이런 긴장을 낳은 주요 원인으로 유신체제라는 독재정권에 대한 카터 정부의 거부감을 먼저 지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동북아시아의 역학 구도에서 냉전시대의 한미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여하튼 이 긴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과 카터의 재선 실패로 곧 수그러들었다.

주목할 것은 상황이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음에도 친미의식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이다. 1981년 ‘동아일보’가 전국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미국은 60.6%로 여전히 수위를 차지했다. 미국 다음으로는 스위스(9.4%), 이스라엘(7.7%), 영국(4.3%), 프랑스(2.4%) 등이 꼽혔지만, 그 선호도는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편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북한(59.4%), 일본(21.9%), 소련(9.9%) 등의 순으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런 친미의식은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1981년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로 손꼽혔던 미국은 2002년 갤럽이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는 선호도 13.2%에 머물렀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호주(14.2%), 미국, 캐나다(8.5%), 스위스(7.6%), 중국(6.6%), 일본(6.2%) 등의 순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단순한 항목이기는 하지만, 이런 비율의 변화는 우리 국민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던 친화적인 이미지가 빠른 속도로 감소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반미의식은 언제 본격화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아래서 학생운동은 크게 NL(민족해방)계와 PD(민중민주주의)계로 분화되면서 발전해 왔는데, 이 가운데 NL계는 분단의 책임을 미국에 귀속시키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미의식을 유포시켰다. 또한 이들은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는 데 미국이 방조했으며,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진압부대가 미국의 승인 없이 동원될 수 없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반미운동을 전개했다.

학생운동이 주도한 이런 반미운동은 해방 이후의 한미 관계를 돌아볼 때 일대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2년 3월에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났으며, 1983년 9월에는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사건이, 1985년 5월에는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으며, 대학가에 반미의식이 학생운동의 주요 이데올로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1980년대 수입된 종속이론과 주변부 자본주의론은 반미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 이론은 미국이 제국주의의 중심부 국가로서 한국 경제의 파트너가 아니라 지배자 내지 착취자이며, 따라서 미국 자본주의와 단절하는 것이 자립경제를 위한 일차적인 과제임을 강조했다. 사회주의와 밀접히 관련된 이 이론들은 강의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지만 강의실 밖에서는 이른바 서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토론됨으로써 학생들의 대미의식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1985년 서울대생을 상대로 이뤄진 ‘미국에 대한 인식 조사’는 당시 학생들의 대미의식의 일단을 보여준다. 그 결과를 보면, 한미 관계에 대해 ‘대단히 불만’을 가진 학생의 비율이 47.2%에 달했으며, ‘다소 불만’의 비율은 33.7%를 기록했다. 반면 한미 관계에 대해 ‘다소 만족’한 학생은 4.4%였으며, ‘매우 좋다’는 학생은 0.6%에 불과했다.

학생들의 미국에 대한 불만은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됐다. 정치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미국 이익 우선’이라는 견해가 55.0%, ‘대체로 미국 이익 우선’이라는 견해가 40.0%를 차지했다. 경제관계에 대해서는 ‘미국 이익 우선’이라는 견해가 91.2%를 차지했다. 문화의 경우에는 ‘미국이 한국 문화를 거의 지배하고 있다’는 견해가 56.7%인 것으로 조사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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