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물 연구

대변인보다 ‘盧心’ 에 근접한 대통령의 진짜 ‘입’

윤태영 청와대 연설담당비서관

  • 글 :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대변인보다 ‘盧心’ 에 근접한 대통령의 진짜 ‘입’

2/3
노대통령은 윤비서관에게 아예 청와대 본관으로 사무실을 옮기라는 지시도 했다. 1주일에 서너 차례 준비해야 하는 연설문 원고를 놓고 상의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윤비서관을 불러 이것저것 지시해야 하는데, 승용차로 5분 거리인 비서동(棟)과 본관을 오가면 서로가 불편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지시는 실행되지 못했다. 청와대 본관에 윤비서관이 들어앉을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연설문은 대개 연설담당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초고를 보고받고 약간의 수정, 가필이 이뤄지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나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경우는 연설문의 뼈대를 사전에 상세하게 구술해 자신의 생각을 연설문에 정확하게 반영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과거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은 탁상 위의 작업이 되기 십상이었고, 정해진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진부한 글이 나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 반면 노대통령은 아예 윤비서관을 대동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읽게 하고 연설문에 반영토록 하는 방식을 택한 셈이다. 그래서 윤비서관은 각종 공식회의는 물론 비공식 회의에도 종종 참석하고 있다.

윤비서관의 시각도 노대통령과 비슷하다. 최대한 노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문장을 다듬는 등 나머지 일은 부수적이라는 것이다. 굳이 신경을 쓰는 대목이 있다면, 불필요하게 중언부언하면서 멋을 내는 것을 피하고 한 문장을 10단어 이내로 짧게 작성하는 것 정도다.



그런 이유로 윤비서관은 노대통령의 연설문은 노대통령의 것이지, 결코 자신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노대통령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정리해주는 조력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4월2일 노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에서 한 국정연설의 경우 사실상 노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윤비서관의 설명이다. 대통령 스스로 국회에 나가 첫 연설을 한다는 데 대해 강한 책임감을 느꼈고, 틈나는 대로 윤비서관을 불러 구술을 하고 메모를 해가며 고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국정연설은 정치권 일각에서 “대통령의 연설 치고는 무게가 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핀잔도 받았지만, 구름 잡는 얘기는 하지 말자는 노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철저하게 구체성을 띤 데 따른 것이었다.

이 국정연설문이나 2월25일 대통령 취임사 등 노대통령의 굵직한 연설문들이 모두 윤비서관의 손을 거쳐 완성됐지만, 윤비서관이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연설문은 따로 있다. 바로 2002년 4월28일 노대통령이 민주당의 후보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감격에 찬 어조로 웅변했던 대통령후보 수락연설문이다. 이 연설문은 시사평론가이자 지금은 개혁국민정당을 주도하고 있는 유시민(柳時敏)씨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은 윤비서관이 작성한 것이다.

최고의 명문은 후보수락 연설문

노대통령은 후보 수락연설을 앞두고 역사에 남길 명문이어야 한다는 주문을 했고, 윤비서관은 경선 승리가 유력해진 한 달여 전부터 이 연설문에 매달려야 했다.

후보 수락연설에는 노대통령이 대선 승리 직후 제시해온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 성장과 분배의 조화, 지역대결구도 타파, 정치개혁 등과 같은 국정 운영 구상의 단초가 대부분 담겨 있다. 여기에 ‘겸손한 대통령’ ‘친구 같은 대통령’이라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가미해 장단고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연설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연설 마무리 부분의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물려줍시다”라는 대목은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연설문 후반부의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들과 소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대통령’ 부분은 나중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평소 노대통령이 자주 해왔던 얘기였지만 요즘 노대통령이 ‘소주파티 하지 말자’ ‘기자들과 소주 마시고 헛소리나 하고…’ 등 ‘소주’라는 단어를 그리 좋지 않은 뜻으로 사용하면서부터다.

이와 별개로 경선 당시 기호 2번 노무현의 캐치프레이즈였던 ‘단 한 장의 필승카드’도 윤비서관의 작품이었다.

윤비서관이 노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4년 출판된 노대통령의 자전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를 통해서였다. 윤비서관은 1993년부터 잠시 도서출판 새터의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출판사에서는 1988년 5공 청문회로 스타가 됐던 노무현 의원의 자전 에세이를 출판하면 잘 팔리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1992년 총선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곤궁한 처지에 빠져 있던 노대통령도 출판사측의 제의에 선뜻 응했다.

이때 윤비서관은 노대통령과 함께 무릎을 맞대고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출간작업을 하게 됐고, 이 일로 노대통령의 주변 인사 중에서 ‘노대통령의 과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됐다. 출판 책임을 맡은 윤비서관에게 노대통령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소상하게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2/3
글 : 김정훈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nghn@donga.com
목록 닫기

대변인보다 ‘盧心’ 에 근접한 대통령의 진짜 ‘입’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