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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라크전쟁과 북핵

MBC 이진숙 특파원의 현장 리포트

불타는 바그다드 지킨 유일한 한국 기자

MBC 이진숙 특파원의 현장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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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이진숙 특파원의 현장 리포트

지난 2월23일 바그다드 남부 발전소에서 시위를 벌이는 니컬스 오키프

바그다드를 가로지르는 티그리스 강가 알 안달루스 아파트 앞은 시골 장터처럼 북적거렸다. 오전 11시 인간방패 ‘휴먼 쉴즈(Human Shields)’가 바그다드 남부 발전소로 출발하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휴먼 쉴즈는 말 그대로 ‘자신들의 몸을 이용해 미국의 공격을 막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조직한 단체. 창설자 니컬스 오키프는 인터뷰 마이크를 들이대자마자 준비라도 한 것처럼 대답했다.

“민주주의는 실패작입니다. 전세계 다수의 사람들이 이 전쟁에 반대하지만 각국 정부는 이라크전이 시작되면 석유 계약을 따내려고 뒷거래를 하고 있어요. 얼마나 한심하고 비민주적인 일입니까?”

오키프는 특이한 경력 때문에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1991년 걸프전 당시 그는 미 해병대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면서 참전했다. 특히 쿠웨이트시티와 바그다드를 잇는 고속도로를 탈환하는 전투에 참여한 것이 그에게는 가장 아픈 기억이다. 당시 이 전투는 ‘죽음의 고속도로’라는 말을 나을 만큼 수많은 이라크군 사상자를 냈다.

“내가 직접 사람을 죽인 적은 없지만 나도 그 살육 행위를 지원한 셈”이라고 말하는 오키프는 미국의 정책이 수치스러워 미국 여권을 반납하고 시민권 포기를 선언한다. 2001년 11월 네덜란드에 망명을 신청한 그는 이제 세계의 시민으로서 부당한 전쟁이 일어나려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몸으로 막는 일을 한다.

반전 운동가로 변신하기 전까지 그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해변에서 파도타기를 즐기는 보통 젊은이였을 뿐이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전쟁의 피해도 더 잘 알게 마련인 것. 오키프는 이제 반전단체의 지도자 로서 전쟁 반대 운동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전쟁에 휴머니즘이 있을 리 없고 인간 방패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을 리 만무하지만, 그들의 인간적인 저항은 볼 때마다 사람을 감동시킨다.



2월24일 월요일바그다드의 사람들

H를 만나기 위해 그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 앞마당 한 쪽에서는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기도하고 있었다. 전쟁의 위협 앞에서도 신실한 모슬렘들은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 의무를 다한다. H도 기도중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옆눈으로 관찰할 시간이 있었다. 남루한 옷에 피곤한 표정. 메카를 향해 올리는 그의 기도 내용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말했던 것처럼 이라크 사람들은 그동안 너무 오만했던 것일까. 그래서 신의 벌을 받아 20년 동안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것도 모자라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주거이전과 비밀투표의 자유조차 빼앗긴 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사무실에서 H와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양고기 두어 점을 썰어넣은 수프와 밥, 빵이 전부였다. 고깃점을 떼내어 나의 밥에 올려주는 H. “바그다드에 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자 그는 대뜸 이렇게 답했다.

“모든 게 정부 탓이에요. 국민들은 고통을 받는데 자기네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겠다는 거죠. 지금 이라크에는 두 계층만이 있어요. 국장급 이상은 바깥 세계 사람 못지않은 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짐승처럼 살지요. 겨우 3달러 월급으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공무원이었던 그는 올해 초 은퇴했다. 석 달마다 받는 연금은 2만5000디나르, 우리 돈 1만원 남짓이 전부다. 내가 다시 “이라크 국민들을 생각하면 전쟁이 날까봐 염려된다”고 이야기하자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이 나야 돼요. 전쟁이 나야 한다구요. 딴 건 몰라도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면 전쟁은 나야 해요. 우리는 다 죽어도 됩니다. 전쟁이 나면 모든 것이 끝장날 것이고, 그러면 적어도 우리 자식들은 좋은 세상에서 살겠지요. 후세인 대통령은 걸핏하면 국가의 ‘권위’를 찾지만 이제 그 말도 신물이 납니다. 국민들이 죽어나가는데 권위는 무슨 권위입니까?”

그는 후세인의 망명설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그 같은 소문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인지 물어보는 그의 얼굴에는 언뜻 희망 같은 것이 묻어났다. 어쩌면 후세인의 망명이야말로 지금 상황에서 이라크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미국의 공격을 받을 필요 없이 이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그것이었다.

함디 아부 아흐마드는 우리의 가이드를 맡은 관광부 소속 하급 관리다. 관광부에서 일하기 전 정보 계통에서 근무하다가 얼마 전에 은퇴했다고 했다. 그를 처음 봤을 때 마흔여섯이나 마흔일곱 살쯤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마흔 살이었다. 중동 사람들이 대체로 나이보다 늙어 보이기는 하지만 함디의 경우는 전쟁과 폭정에 시달려 말라죽기 전의 식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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