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술 마신 자 임금이 직접 목을 베니…

술문화와 금주령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술 마신 자 임금이 직접 목을 베니…

3/9
단순히 금주령만으로 술을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을 의식화시키는 방법도 고안되었다. 금연 캠페인이 벌어지듯 음주의 해악을 지적한 책이 제작되고 보급되었다. 세종 15년의 일이다. 세종은 ‘계주윤음(戒酒綸音)’이란 책을 주자소에서 인쇄하여 반포했다(‘세종실록’ 15년 10월28일). 술의 부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 논리를 잠시 따라가보자. “술은 곡식을 썩히고 재물을 허비한다.” 이 대목은 설명이 필요 없다. “술은 안으로 마음과 의지를 손상시키고 겉으로는 위의(威儀)를 잃게 한다.” 술을 마시면 평소 지키던 몸가짐을 잃는다는 얘기다. 유교가 국교이던 시기여서 예의 문제도 금주 캠페인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술 때문에 부모의 봉양을 버린다.”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한다는 뜻이다.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한다.” “해독이 클 경우 나라를 잃고 집을 패망(敗亡)하게 만든다.” “해독이 작으면 성품을 파괴시키고 생명을 상실하게 한다.” 지나친 음주가 정신건강과 육체적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얘기를 조선시대 세종 때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 이 책을 서울과 지방의 관청에 보급하여, 족자로 만들어 관청의 벽에 걸어두고 늘 술을 조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술 최대 소비층은 양반

조선은 강력한 통제 사회였지만 금주령은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조선 전기는 ‘음주의 시대’라 불릴 만큼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7년 전인 1585년 지평 한응인(韓應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요즈음 여항(閭巷)에서는 대소귀천(大小貴賤)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연회에 절도가 없어 주육(酒肉)이 낭자하고 음악이 시끄러운 것이 태평하여 근심이 없을 때와 같으니, 매우 한심합니다. 술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일절 금단하소서(‘선조실록’ 18년 4월29일).” 그야말로 로마의 평화가 아닌 조선의 평화였다. ‘대소귀천’ 모두가 술에 빠져 있었다.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실록은 대소귀천 운운하지만 술의 최대 소비자가 지배계층인 양반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술은 곧 곡식이었으니 궁핍한 백성들이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는 없었다. 근대 사회 들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값싼 술이 등장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가난한 사람들도 알코올에 중독될 수가 있었던 것이지 오로지 곡식에만 의존해 살았던 중세의 보통 백성들에게 알코올은 너무나 값비싼 기호식품이었다.

각 관청에는 주고(酒庫, 술창고)란 시설물이 있었는데, 특히 서울 각 관청은 고위 인사의 영접 전송 때 모두 술을 사용했다. ‘중종실록’ 36년 11월13일조에 따르면 서울의 품계가 높은 아문과 육조 소속 각 관청에서는 자체 내에서 술을 빚어 술을 물처럼 마셨다. 이 때문에 원래 술 판매에 종사하던 각 관아의 노복(奴僕)들이 생업을 잃기도 했다. 또 서울 시내 각 시장에는 누룩을 파는 곳이 7, 8곳이고 거기서 하루 거래되는 술은 쌀 천여 석에 달했다. 약간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흉년을 핑계로 관청의 주고를 혁파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의 소비량이 줄어들었던 것은 아니다.



양반계급의 술 소비엔 당시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양반관료 중심사회였다. 양반들은 성리학 이념에 투철한 도덕적 존재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면일 뿐 양반은 지배계급으로서 사회적 특권과 쾌락을 누리는 데도 열중했다. 음주 역시 그 특권적 쾌락의 일단이었다. 요즘 골프를 치는 것이 상류층-중산층의 상징이듯 조선시대에 소주 마시는 것은 양반계급의 상징이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전까지 거의 200년간 평화를 누렸다. 크고 작은 정변과 외교적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장구한 평화는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었다. 긴 평화는 양반들의 음주벽을 진작시켰다.

3/9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목록 닫기

술 마신 자 임금이 직접 목을 베니…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