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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늦게 갈 수도 있지만 바른 길을 택하라

  • 글: 안강민 변호사·전 서울지검장

늦게 갈 수도 있지만 바른 길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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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죄를 미워하되 인간은 절대로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약한 자들은 덕과 정으로 대하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검사생활 동안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때로는 감정에 치우쳐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사형’을 구형했던 피의자들과 지금까지도 교분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그리 야박한 인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중 한 사람이 지금 지방의 개척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C목사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70년 육군본부 검찰관으로 있던 시절. C는 강간살인, 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채포돼왔다. 휴가를 나갔던 그는 누나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 가정부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강간하고 살해하였던 것이다.

나는 사건을 조사한 뒤 ‘사형’을 구형했다. 그 후 나는 그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만 안 채 군복무를 마쳤고 검사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렇게 17년이 지난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됐다. 1987년 서울북부지청의 부장검사로 있을 때였다.

그 남자는 이름을 밝혔지만 나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군 복무 시절의 이야기를 들춰가며 자신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형선고를 받았던 C였던 것이다.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말에 혹시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가 생각했으나 사무실로 들르라고 했다.

다음날 그가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나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가 무슨 해코지를 하려고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경계심으로 그를 대했는데 그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하고 온화하였기 때문이었다. 스무 살의 청년은 어느새 마흔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당시에는 사형이 확정되었으나 어느 날 관할관이 갑작스런 감형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사형을 면하고 형집행정지를 받아 출소하였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다시 태어난 것으로 믿고 그 모두가 하느님의 뜻이라 여기며 목사 수업을 받고 있다. 여러 곳에서 간증을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경찰서 유치장에서도 간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찾아온 이유를 따로 밝혔다. 당시 내가 밤늦도록 그를 조사하다가 사병을 시켜 통닭 한 마리를 사오게 하였는데, 반을 쪼개서 자기에게도 나눠준 것이 그때로서는 그렇게 고마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C와 다시 인연을 맺었는데, 그는 지금 전라도 어느 지방에서 가정을 꾸리고 목사생활을 하며 가끔씩 ‘토산품’을 보내주고 있다.

성실 강조한 실수 없는 애주가

아버지께서는 또한 성실한 직업인이 될 것과 충실한 직장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셨다. 나는 검찰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은 술을 마셨지만 아버지의 당부 때문인지 출근 후 목욕탕에 가서 1~2시간 쉰 적은 서너 번 있어도 30년여의 직장생활에서 술로 인해 지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주가들에게는 대개 술과 관련된 일화가 있게 마련인데, 나에게도 사건수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대구지검에 근무하던 때 나는 경찰에서 강도미수로 구속 송치한 사건을 맡게 되었다. 그 사건 피의자는 한밤중에 복면을 하고 조그마한 주상복합 아파트 3층에 있는 남의 집 안방으로 침입해 들어가려다 주인 여자가 고함을 지르자 도망을 쳐 상가 공중변소에 숨어 있다가 경비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처음부터 범행을 부인하면서 술 핑계를 대는 것이었다. 술에 취해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갔고 복면한 사실도 없었으며 ‘도둑이야’란 소리에 놀라 달아났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의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특별히 현장검증을 나가보니 그 아파트는 1층이 상가인 5층 건물이었고 그의 주장대로 그의 집은 그 아파트에 있었다. 그 건물의 층계는 중앙부분과 양쪽 측면의 세 군데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침입했던 집은 중앙층계로 올라가 3층 오른쪽의 첫 번째 집이었고 그가 살고 있던 집은 좌측층계로 올라가서 4층의 우측 첫 번째 집이었다.

그렇게 현장을 보고 나자 술에 취하면 계단과 층수를 잘못 알고 실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그 집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집주인인 여자는 방에 5촉짜리 전등이 켜 있긴 했으나 어두워서 그가 복면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해 무혐의로 석방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이 사람처럼 술로 인한 큰 실수는 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대주가셨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체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께서는 칠순을 넘긴 연세에도 양주 반 병을 거뜬히 즐기는 대주가셨다. 그렇게도 술을 좋아하셨지만, 술로 인해 실수를 하거나 늦게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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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강민 변호사·전 서울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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