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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인 발자취를 찾아서 ①

남북 수십 리, 동서 사오 리… 비옥한 토지에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50만 고려인 역사의 첫 장 연 지신허(地新墟) 마을

  • 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남북 수십 리, 동서 사오 리… 비옥한 토지에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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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가져간 현대 러시아 지도에는 비노그라드나야강 옆 지점에 ‘비노그라드노예(Vinogradnoe)’라 표시돼 있는데, ‘비거주지역’으로 돼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시디코프씨 집에서 서쪽으로 중국과의 국경 부근까지 한인마을이 분포해 있었고, 시디코프씨가 소장하고 있던 옛 지도에는 지신허(Tizinkhe)로 표시돼 있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1937년 강제이주로 폐허가 됐던 지신허 일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농민들의 국영농장 마을이 들어섰다가 이제는 시디코프씨의 목축업을 위한 목초지로 변한 것이다.

시디코프씨는 “과거 한인들이 러시아와 조선 국경지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정착한 것은 자기나라 정부(조선 정부)의 추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나름대로 매우 흥미로운 시각이었다.

시디코프씨는 자신도 한인관련 서적들을 읽어봤지만, 한인들이 홍후즈(紅? 賊 : 붉은 수염을 한 마적이라는 뜻)나 강도였다는 내용을 보지 못했다며 홍후즈는 대부분 중국인들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한 한인들이 이 지역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러시아 군대에 식량을 제공한 사실을 강조했다. 시디코프씨는 집 주변의 연자매 맷돌과 집터를 보여주면서 한인들이 쓰던 가위, 질그릇 파편, 쟁기의 쇠날을 선물로 주었다.

최초의 한인이주에 관한 기록들

현재 한국과 러시아 학계에서는 무산(茂山)의 최운보(崔運寶)와 경흥(慶興)의 양응범(梁應範), 두 사람이 이끄는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1863년 월경(越境)을 엄금했던 국법을 어기고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지신허에 정착한 것을 최초의 한인이주로 간주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연해주지역이 청나라 영토에 속해 있었을 때는 물론, 1860년 베이징조약(北京條約)으로 연해주가 러시아 영토가 된 이후에도 조선농민들이 두만강을 건너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사냥이나 채취 또는 여름에 파종하고 가을에 추수해 돌아오는 이른바 계절형 이주에 불과했을 뿐, 영구거주와 정착을 위한 이민은 아니었다. 이 점에서 1863년의 지신허 마을 개척은 현재 구소련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50만 고려인들의 첫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지신허는 원래 중국식 명칭으로 계심하(鷄心河, 발음은 ‘지신허’)라고 표기했던 강의 이름이다. 한자 뜻 그대로 해석하면 ‘닭의 심장부분에 해당하는 강’인데 어원이 분명치 않은 이 강 이름을 따 최초의 한인마을 이름을 지신허라 했고, 이후 한인들이 우리식 한자발음을 빌려서 ‘地信墟’ ‘地新墟’ ‘池新河’로 표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신허강은 현재 비노그라드나야강(Rechka Vinogradnaia)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강은 탐험대만(Bykhata Ekspiditsii:과거 노보고로드만)으로 들어가는 그라드코이강(Rechka Gladkoi)의 지류로 북쪽 중국 국경지대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 그라드코이강으로 이어진다. 지신허 마을은 러시아수비대 초소가 위치해 있던 탐험대만으로부터 19km 정도 떨어져 있고, 북쪽으로 중국령인 훈춘과는 14km 정도 거리에 있었다.

최초의 한인이주에 관한 기록들은 이주시기는 물론, 이주한 가구와 인원수에서도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먼저 러시아 쪽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1867~69년에 동시베리아 총독의 파견으로 남부 연해주지역을 답사한 프르제발스키(N. M. Przheval’skii, 1839~88)는 1869년에 쓴 글에서 “1864~65년 겨울에 한인 10가구가 조선정부의 금지를 무릅쓰고 우리에게 이주해왔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자료들을 참조해 보강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저서 ‘우수리스크 크라이 여행(Puteshestvie v Ussuriskom krae), 1867~69’에서는 한인들이 “이미 1863년 12가구가 이주해왔다”고 수정했다. 시기가 1년여 앞당겨졌을 뿐만 아니라 가구수도 10가구에서 12가구로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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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반병률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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