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을 잘 넘기면 성공한 지도자가 된다. 어려움은 장애물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아직 임기가 남아 있고,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지지율이 하락한다면, 그에 대한 대책을 정공법으로 마련하는 것이 정치인의 보편적인 상식이며 도리다. 허심탄회하게 여론을 경청하고, 각계 전문가의 의견과 조언을 받아들이며, 적재적소에 인재를 활용하고, 사심 없이 환부에 칼을 들이댐으로써 어려운 상황을 역전시킨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얼마 전 영화 ‘터미네이터’의 근육질 배우 아널드 슈와제네거를 새로운 주지사로 선택한 캘리포니아주는 여기에 세 번째 경우의 수를 추가한다. 즉 국민소환제 같은 외부의 힘이나 국회를 통한 제도적 장치에 의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을 견제할 정당성을 지닌 또 다른 기구가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리는 것은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국민이 뽑아 주었으니, 국민이 내려가라고도 할 수 있다. 국민의 힘은 대단한 것이어서, 자신들이 뽑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기가 내는 세금과 병역으로 유지되는 체제의 지도자라면 독재자라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고뇌에 찬 결단으로 ‘국민에게 묻는 방식’을 택했다. 이제 국민은 그를 평가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민을 향해 평가를 내리라고 한다. 피고도 원고도 없는 법정에서 국민들은 증거를 스스로 조달하느라 분주하고, 벌써부터 각양각색의 증거와 논리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내가 잘못했습니까? 답변하십시오”의 수사학에는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메타 메시지(meta message)가 담겨 있다. “물러날까요?”라고 물을 때에는 “물러나고 싶지 않다”는 의지도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잘못했다면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되면 “물러나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대관절) 내가 (뭘) 잘못했는지 평가해주시오”라며 혼자 뚜벅뚜벅 법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에게 제아무리 솔로몬이라도 무슨 판결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판관이 되어야 할 국민이 변호사와 검사로 갈려 증거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고, 그 와중에 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혼자 고뇌중이다. 그의 고뇌는 크겠지만, 자기가 뽑은 대통령을 8개월이 지난 지금 다시 뽑거나 제자리를 지키게 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떠안은 국민만큼이야 할까.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려면 구체적인 혐의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 최측근의 11억원 수수 혐의는 대통령의 직을 걸어 국민투표에 부칠 사안 치고는 어딘지 걸맞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받은 것도 아니고, 그다지 놀랄 만한 액수도 아니다.
부하 직원의 비리에 온몸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대통령은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일이 없다. 사과한 적도 없다. 오히려 실정의 원인을 야당과 언론에서 찾으면서, 우리 정치권에 만연한 “도덕적 마비증상”을 치유하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할 때라고 판단”해 국민투표를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더 큰 정치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가, 무슨 잘못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는데, 국민한테 선택을 하라고 한다. 대통령이 차라리 원고측 변호인을 자임해 증거제시의 부담을 안고 야당과 언론(의 죄)을 평가해달라고 국민에게 묻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뻔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제안에는 또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다. 선택을 위한 설득과 토론에는 메시지의 방향성이 생명이다. 현상유지(status quo)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이거나 투표를 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서 언급한 세 번째 경우, 즉 외부적인 압력을 견디는 방법으로 국민에게 묻는 방식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열치열, 국민의 힘은 국민의 힘으로 막는 법.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당하지 않기 위해, ‘국민에게 먼저 물어보는’ 선택은 탁월하다.
주인 대접 받는 게 편치않아
정치인이 여론에 민감한 것은 미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론에 유난히 귀기울이는 정치인이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단일화 때도 그랬고, 대통령이 된 후 이라크 파병 문제를 결정할 때에도 노대통령은 계속 ‘국민이 하라면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참여정부 슬로건이 이를 웅변한다.
그런데 막상 주인 대접을 받는 국민들 마음이 편치 않다. 사사건건 국민에게 물어보고, 국민이 하라면 하겠다는 지도자를 바라봐야 하는 마음이 불안한 것이다. 그런 지도자는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지도자는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조금 더 밝은 눈으로, 조금 더 현명하게 국민을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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