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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vs 노동당, 프락치 역공작 그리고 송두율

베를린의 남북첩보전쟁 4반세기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안기부 vs 노동당, 프락치 역공작 그리고 송두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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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vs 노동당, 프락치 역공작 그리고 송두율

지난 9월30일 친북활동 여부를 조사받기 위해 국정원으로 향하는 송두율 교수 부부.

반면 영사관의 안기부 요원들은 주로 한국에서의 인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동단체에 접근했다. 고향이나 출신학교 등 지연과 학연을 통해 운동권 인사들을 접촉해 활동상황이나 정보를 캐내는 ‘가장 한국적인 방식’이었던 셈이다. 물론 운동단체 입장에서 안기부의 이러한 활동방식은 곧 ‘프락치 심기’였다.

한편 1980년대 초반부터 안기부 요원들은 ‘조선노동당 구주위원회 위원장 김철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1982년 귀순한 김정일 위원장의 처조카 이한영씨가 “조선노동당 구라파위원회가 있는데 위원장은 김철수고 부위원장은 윤이상이라는 말을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한 바에 따른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재유럽 운동권 인사들 몇몇을 주시하던 안기부 요원들이 ‘○○○가 김철수인 것 같다’는 보고서를 심심찮게 보내오곤 했지만, 번번이 잘못된 정보로 확인되곤 했다고 전직 안기부 관계자들은 전한다.

국정원측 자료에 따르면 이후 귀순자들의 추가 증언에 따라 ‘조선노동당 구주위원회는 1970년대 후반에 재독 운동단체 회원들 중 친북인물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는 정보가 파악되었고, 이에 따라 베를린 주재 영사관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구체적인 활동내용은 전혀 확인하지 못해 ‘김철수 미스터리’는 십수 년간 안기부의 주요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었다.

훔볼트대 교수임용 방해공작

한편 베를린 영사관의 안기부 요원들은, 송교수의 서울대 사회학과 초빙교수 임용이 좌절된 이듬해인 1992년 송교수의 훔볼트대 정교수 초빙 심사과정에 개입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옛 동베를린에 위치해 있던 훔볼트대 한국학과의 당시 교수진은 북한과 가까운 독일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일 통일 이후 이러한 교수들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훔볼트 대학과 베를린 주정부 교육부는 한국 출신 인사들을 주 초빙대상으로 검토했고, 그 중 한 사람이 송두율 교수였다.



관련자들에 따르면 송교수는 대학당국의 1차 심사를 통과해 베를린 주정부의 2차 심사에 올랐다. 그러나 이 사실이 곧 베를린 안기부 요원들에게 알려졌고, 이들은 심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을 상대로 강력한 로비를 펼쳤다. 이때는 안기부가 귀순한 오길남씨를 통해 “송교수가 나에게 입북을 권유했으며, 평양 체류시 그가 비밀당원으로 대남공작망의 거물임을 확인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송두율이 김철수가 아닐까’고 추측하던 시점이었다.

“송두율이 훔볼트대 정교수가 되면 한국학과는 친북 세력의 온상이 된다”는 안기부 요원들의 집요한 설득은 성공을 거뒀고, ‘한국 출신의 친한인사’를 원했던 베를린 주정부는 결국 송교수를 탈락시켰다. 눈여겨볼 것은 이 과정에서 안기부 요원들이 초빙 심사에 영향력을 갖고 있던 인물들에게 제공한 정보. 일련의 상황에 직접 개입했던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안기부 요원들이 전달한 문서자료는 대개 송교수의 그간 활동내역, 논문 등 주로 그의 ‘친북 시각’을 문제삼는 공개 정보였다. 그러나 구두로 전달된 내용에는 이와는 사뭇 다른 구체적인 팩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민감했던 것은 송교수가 1989년 베를린을 거쳐 평양에 들어간 임수경씨의 북한행 과정에 개입했다는 이야기였다. 임씨의 입북 과정을 안내한 북한 이익대표부와 임수경씨의 연결고리가 송교수였고, 임씨가 독일에 오기 전의 준비작업에도 상당부분 관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기부의 정보는 사실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임수경씨의 방북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던 한 인사는 “임수경씨의 입북은 통일운동단체에서 활동하던 20~30대 젊은 유학생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며 송교수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당시 사건수사에 간여했던 안기부 대공수사국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임씨가 베를린을 통해 입북했으므로 당연히 송두율 교수도 수사대상에 올랐지만 확인한 혐의는 없었다는 것. 백색요원으로 유럽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안기부 관계자 또한 “송교수가 임수경 방북에 관여했다는 얘기는 그의 활동범위를 제약하기 위한 작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범민련 간부 C씨는 프락치였나

3년 뒤인 1995년 베를린 북한 이익대표부에는 대민업무담당으로 위장한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 한 명이 새로 부임한다. 바로 김경필 2등서기관이었다. 1997년 황장엽 전 비서의 망명 직후 송교수가 “내가 김철수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상의했다는 그 공작원이다. 김경필 서기관은 송교수 등의 친북인사들이 평양에 의사를 전달하는 창구이자, 범민련·범청학련 구성원들이 제반 문제를 협의하는 상대자 역할을 맡았다.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베를린의 범민련 유럽본부 활동에 참가한 인물이 C씨였다. 한국에서 지방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국내에서 진보단체 간부를 역임하기도 했었다. 1994년 독일에 건너온 C씨는 범민련에서 활동하겠다고 자원했고, 한국에서의 활동과 명성 덕분에 곧 범민련 유럽본부 사무국장에 임명되어 김경필 서기관과의 연락업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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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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