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스포츠 안테나

‘국민타자’ 이승엽과 야구전문기자의 6년 교유기

‘홈런 무효’ 화풀이에 찌그러진 캐비닛

  • 글: 김상수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ssoo@donga.com

‘국민타자’ 이승엽과 야구전문기자의 6년 교유기

2/4
기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승엽의 첫 이미지는 1998년초 삼성의 경산연습장에서의 모습이다. 물론 전에도 본 적은 많지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첫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경상도 사투리가 살짝 섞인 특유의 말투 있지 않은가. 나중에 개그맨들이 성대모사를 하곤 했던 바로 그 말투 말이다.

“(비음이 약간 섞인 높은 톤으로) 안녕하십니까, 이승엽입니다.”

그와는 따로 밥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워낙 기자들에게 잘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야구선수는 딱 두 가지 종류로 나뉠 뿐이다. ‘인터뷰를 잘 해주는 자’와 ‘인터뷰를 잘 해주지 않는 자’. 뜨기 전엔 기자들에게 잘하지만 스타로 뜨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나오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승엽은 달랐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언론과의 관계가 원만했다. 어찌나 잘했는지 이제까지 그를 욕하는 기자를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 많은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텐데도 그는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한다.

덕분에 그와 친해지는 것도 크게 어렵진 않았다. 당시만 해도 다른 기자들보다 어린 축이었던 기자와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승엽은 허물없이 지내는 기자에게 종종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

“서울인데요. 밥 사주세요. 여자친구하고 같이 있어요. 서울 오면 밥 사준다고 약속했잖아요.”

회사 앞으로 나갔더니 여자친구하고 ‘뻘쭘히’ 서 있는 이승엽이 보였다.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다 선택한 곳은 레스토랑이었다. 여자친구가 있으니 분위기 좀 잡아줘야겠다는 심산이었다.

당시 이승엽의 여자친구는 모 대학교를 수석 졸업한 S모양(이승엽의 아내 이송정씨가 이 기사를 보면 어떻게 할 것이냐며 기자에게 눈을 흘기고 있을 팬들은 진정하시라. 이씨도 남편이 한때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S양은 밝고 명랑한 성격에 똘망똘망한 눈망울, 찰랑거리는 생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첫눈에 미인이라는 느낌이 들 만큼 예뻤다. 미국 여배우 피비 케이츠가 기자의 머릿속을 스쳐갈 만큼(영화 ‘그렘린’ ‘파라다이스’ 등에 출연했던 이 80년대 청춘스타는 기자의 어린 시절 우상이기도 했다).

당시 총각이었던 기자는 속으로 ‘자식, 복도 많네’라며 이승엽을 부러워했었다. 나중에 얘길 들으니 OB 포수였던 박현영(현 경기고 코치)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았다고 했다. 일부 신문엔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기자 역시 잘 됐으면 하고 바랐지만 결혼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헤어짐의 아픔이 치유될 무렵 이승엽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아내 이송정씨다. 이승엽은 1999년 겨울 축구선수 안정환 등과 함께 앙드레 김 패션쇼에 출연했다가 모델로 활동중이었던 이씨를 만났다. 당시 이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으니…. 그 다음은 알아서들 생각하시라.

친구야 친구

이승엽을 얘기하려면 두산의 투수 박명환을 빼놓을 수 없다. 둘은 프로야구계에 잘 알려진 ‘실과 바늘’이다. 이승엽을 찾고 싶으면 박명환에게 전화하면 된다. 박명환이 간혹 “이승엽 매니저라고 불러달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이승엽이 한 살 위지만 두 사람은 때로 친구처럼, 때로 형제처럼 서로를 끔찍이 아낀다.

둘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겨울. 한 선배의 소개로 식사를 같이하면서부터 친해졌다고 한다. 이후로 이승엽은 서울에 올라오기만 하면 박명환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서울에서 잠자리를 해결할 만한 곳이 없었다”는 게 이승엽의 고백이다.

두 사람이 만나면 주로 당구장을 찾는다. 이승엽이 당구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둘 다 150점 수준으로 아주 잘 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 한번은 둘이서 밤새 당구를 친 적도 있단다. 박명환이 내기에서 거푸 이겨 8만원을 땄는데 승부욕 강한 이승엽이 박명환을 붙잡고 집에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것. 박명환은 “하여간 승엽이 형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둘의 우정이 깨질 뻔했던 위기도 있었다. 2000년초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 사태가 발생했을 때였다. 당시 이승엽은 구단 분위기 때문에 가입하지 못했다. 이에 분노한 박명환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36번(이승엽의 전화번호 저장번지)을 지우며 “다신 안 본다”고 절교선언을 했던 것. 이승엽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비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 사건 이후 서로의 오해가 풀리자 둘의 우정은 더욱 두터워졌다.

이승엽은 박명환 외에도 투수 이혜천, 포수 홍성흔 등 주로 두산 선수들과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다. 연예인으로는 결혼식 축가를 불러준 윤도현, 듀엣 유리상자와 친하고, 대구 구장 장내 아나운서 출신인 개그맨 김제동과는 요즘도 하루에 한번 통화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앞서 박명환이 밝힌 것처럼 이승엽의 유별난 승부욕은 동료들 사이에서 소문난 상태. 남에게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게 야구가 됐건 게임이 됐건 상관없다. 그는 “인터넷 고스톱으로 날밤 새는 일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3000만원으로 시작한 인터넷 고스톱상에서의 사이버머니가 지금은 7억원으로 불어났다고 하니 그가 매사에 얼마나 승부욕이 강한지 짐작할 만 하다.

2/4
글: 김상수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ssoo@donga.com
목록 닫기

‘국민타자’ 이승엽과 야구전문기자의 6년 교유기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