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부리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커피를 드실 때도 커피잔에 딱 7부나 8부 정도의 양을 담아 드시기를 즐겼다. 그런데 아버지를 하늘같이 섬겨온 어머니의 철학은 좀 달랐다. 당신이 사랑하는 남편에게 뭐든지 많이 드시게 하고 싶은 속셈이 있었다. 그것이 비록 몸에 안 좋은 커피라고 해도 말이다. 아버지가 “여보! 커피나 한잔 합시다” 하시면 어머니는 득달같이 부엌으로 달려나가 커피를 준비해 오신다. 어머니는 언제나 커피를 잔에 찰랑찰랑 넘치게 담기 때문에 쏟을까 조심조심 걸어 들어와야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늘 “여보! 커피를 멋으로 마시지 배 부르라고 먹소?” 하며 핀잔을 주셨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끄떡도 안 하시고 열 번이면 열 번 모두 그렇게 넘치는 커피잔을 내놓으셨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두 분이 그렇게 성격차가 컸지만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는 점이다.
“커피를 멋으로 마시지 배 부르라고 먹소?”
우리가 사는 읍에서 아버지는 꽤 멋쟁이에 속했다. 우선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는 매일 펜대를 놀리는 직장으로 출근을 하시니 늘 양복차림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그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지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바지주름을 칼같이 세워서 입으셨고 넥타이도 색을 맞추어 매셨다. 흰색에 가까운 밝은 베이지색 양복을 차려입으신 채 모자를 쓰고 백구두까지 신으면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아버지는 여간 멋쟁이가 아니었다.
당시 아버지는 연식정구를 치셨는데 그때도 반드시 흰 운동복에 흰 모자를 쓰고 흰 운동화를 갖추어 신고 나가셨다. 이런 아버지를 닮은 것일까. 나도 옷색깔을 맞춰 입는 편이다.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매일 색상을 맞춰 옷을 바꾸어 입는다. 오늘은 빨간색, 내일은 하늘색, 그 다음날은 노란색…. 나는 비교적 원색의 옷을 많이 입는 편이다. 일하는 여성으로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강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는다. 이런 나의 색감이나 동생이 연극을 하는 것, 언니와 여동생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래저래 아버지를 닮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도호국단장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교장선생님께 학생들의 뜻을 전달할 일이 있어 교장실을 방문했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 그때 무슨 이유로 교장실을 찾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장선생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따르지 않고 다른 입장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 그게 아니라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이렇게 내 주장에 대해 전후 사정을 설명하려는데 갑자기 교장선생님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아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것을 보았나. 교장한테 말대꾸를 하다니. 너는 아버지도 없냐?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교장선생님이라고 해도 학생의 얘기를 다 들어보시려고도 하지 않다니.
“제 말씀을 다 듣고 나신 후에 말씀을 하셔야지요.”
“아니! 이놈이 그래도 계속 말대꾸를…”
우리에게 설득당하던 아버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시니 말 잘하기로 소문난(?) 손봉숙이도 별수없었다. 무조건 권위로 내리누르려는 교장선생님께 내 의견을 꺼내볼 수조차 없는 것이 너무도 억울했고 더구나 아버지까지 들먹이는 것이 너무 분했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결국 나는 교장실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 전체로 퍼졌다. 내가 교장선생님과 싸웠다는 식으로.
아버지는 교장선생님처럼 권위로 자식들을 누르는 법이 없었다. 우리들이 뭔가를 해달라고 조르면 아버지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그래? 왜 그게 필요한지 나를 한번 설득해봐라.”
나는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아버지를 설득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설득을 당해주셨다. 내가 왜 친구 집에서 늦을 수밖에 없었는지, 내가 왜 이 달에는 용돈이 더 필요한지, 그리고 왜 새로운 참고서가 필요한지 등등. 이유가 뭐든 상관없었다. 다만 내가 논리적으로 아버지를 설득할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이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내가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니까 누구든지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설득을 당해주시는 거라고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해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아버지의 이런 훈련은 지금까지도 내 스스로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표현력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도 말로 싸우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있어하니 말이다.
“말로 당신을 어떻게 당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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