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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⑥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조영남 만나 인생 끝냈기에 배우로 부활할 수 있었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1970년대 ‘충무로 누벨 바그’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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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상하게도 한밤중 냉장고 속에서 아기의 시체를 발견한 김 사장은 명자의 변명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냉정히 아내의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에 명자는 면도날로 김 사장을 살해하고 자신 또한 자살을 기도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그 뒤 형사들과 신문기자에 휩싸여 현장을 재연하던 명자는 냉장고 속에 있던 아기가 다시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김 사장 부인의 운전수 박씨는 이 모든 일이 그녀를 위해 자신이 계획한 일이었음을 밝히며 자신과 결혼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거절하는 그녀를 향해 운전수 박씨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움직인다(이 시놉시스는 ‘김기영 시나리오 선집 1’(김기영/집문당/1996) 중 ‘충녀’ 시나리오를 기초로 하여 작성한 것임).

“재연 장면이 끝나면 현실세계인 정신병원에서 남궁원씨는 환자고 나는 간호사예요. 그러니 그 반전이 얼마나 충격적이었겠어요. 내가 특이한 웃음을 지으면서 남궁원씨를 바라보는 게 마지막 장면이었을 거에요. 내가 지금 기억하는 건 그래요.”

‘윤여정이 부잣집 딸이라더라’

-‘화녀’하고 ‘충녀’를 비교하면 어떠세요, 분위기라든가 본인 연기라든가.

“연기는 ‘충녀’ 때가 나았겠죠. 김기영 감독하고 의사소통도 잘 됐고. 그런데도 관객들에게는 ‘화녀’가 더 기억에 남는 모양이에요. 그 영화가 더 충격적이었으니까요. 사실 ‘화녀’를 찍으면서 다시는 영화를 안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약값이 없는 상황이면 몰라도,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여기저기서 제의가 와도 안 하겠다고 하니까 충무로에 ‘윤여정은 굉장한 부잣집 딸이라더라’는 소문이 났었대요.



그런 상황에서 한진영화사에서 영화 제의가 들어왔어요. ‘여대생 또순이’라는 거였죠. 제작자가 한갑수씨였는데 감독하고 둘이 저희 집까지 쳐들어와서 설득을 하는 거에요. 귀찮은 마음에 내가 출연료 100만원을 불렀어요. 당시 내노라하는 윤정희, 신성일씨가 50만원을 받을 때니까 어마어마한 돈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10만원짜리 수표 열 장을 내놓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자동차가 없어서 못한다고 핑계를 댔죠. 감독이 자기 피아트를 집 앞에 갖다놓더라고요. 무슨 핑계를 대도 안 통하니 결국에는 찍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시작한 영화니까 촬영에 들어가서는 후회가 많았죠. 참 한심하더라고요. 김기영 감독하고 작업한 게 있어서 그랬는지 다른 방식은 눈에 안 차는 거에요. 촬영을 나가면 여배우가 감독을 불러서 뭐라고 해요. 좀 있으면 또 남자주연이 부르죠. 그러면 콘티를 다 바꾸는 건가 봐요. 처음에는 나는 이미 돈 받았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더빙할 때 보니까 엔딩이 바뀌어 있더라고요. 원래 시나리오에는 분명 내가 엔딩이었는데 다른 배우로 바뀌었던 거죠.

어린 마음에도 이건 뭐 영화도 아니구나 싶었죠. 김기영 감독은 누가 와서 콘티를 보자고 하면 그래도 ‘볼 것 없어’ 그러고 치워버리거든요. 그래서 더빙작업에는 참여를 안 하겠다고 했죠. ‘충녀’도 아마 김기영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안 했을 거예요.

김 감독님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다음에 참 많이 죄송했어요. 내가 이혼하고 나서도 전화를 많이 주셨거든요. 좀 정상적으로 대화를 하면 좋은데 김 감독님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다른 사람 같으면 ‘왜 그렇게 됐어? 어떻게 좀 잘 참아보지’ 그럴 텐데, 김 감독님은 딱 전화해서는 대뜸 ‘손해야, 손해. 그놈을 왜 놔줘, 그걸. 도장을 찍어주지 말지’ 그러는 거예요. 옳건 그르건 그 상황에서는 그런 말이 너무 싫잖아요. 어쩌다가 연극이라도 할라치면 꼭 객석에 와 앉아 있어요. 끝나고 나면 또 골지르는 말만 하는 거에요. ‘좀 잘하지 그걸 연기라고 했어?’ 몇 년에 한번씩 꼭 그러니까 나도 신경질이 나잖아요.”

‘한 넝쿨에 호박’

-윤여정씨는 영화도 영화지만 TV 드라마에서 더 눈부신 활약을 했죠. 그 가운데 가장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 ‘장희빈’이었고요. 이전 드라마의 발랄한 이미지와는 달리 표독스런 면이 강하게 부각된 드라마였습니다.

“머리를 위로 빗어 넘겨서 나온 이마가 강조되니까 이미지가 굉장했었죠. 그야말로 공전의 히트였어요. 아마 MBC가 제대로 시청률을 올린 첫 프로였을 걸요. 당시만 해도 TBC의 위세가 참 대단했어요. MBC는 후발업체였고. 그때 제가 동아제약의 오란씨 첫 모델이었는데 1년 하다 잘렸잖아요. 사람들이 포스터만 보면 ‘나쁜 X’이라며 눈을 찔러놨거든요.

그렇지만 그 모든 게 지금 생각해보면 잠깐이었어요. 어쩌다가 이름만 반짝 난 거였지. 이혼하고 돌아와서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연기가 참 안 되더라고요. 내가 왜 이렇게 연기를 못하나 곰곰이 따져보니까 결혼 전에 연기를 워낙 짧게 했어요. 1967년에 데뷔해서 1972년에 미국에 갔으니 5년밖에 안 한 거잖아요. 당연히 고생을 할 수밖에요. 배우들, 이름 나는 거 하나도 좋아할 거 없어요. 그 허망한 이름값을 꼭 해야 하거든요. 이름은 높은데 연기가 안 되면 본인만 괴로운 거예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했던 결혼이 깨진 뒤에는 꽤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혼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나요?

“솔직히 나는 재혼한 사람은 참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흔히들 결혼상대는 꼭 자기랑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잖아요.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다시 남자를 골라도 비슷한 남자를 만날 것 같더라고요. ‘한 넝쿨에 호박’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외모는 어떨지 몰라도 두 번째 만나는 남자도 속은 같은 남자겠거니 싶었죠. 나는 자신 없어요. 또 만나면 큰일이지. 한번은 누가 묻길래 내가 그랬어요. ‘내 안목이 조영남을 고른 안목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이 안목을 믿고 재혼상대를 고르겠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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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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