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한·중·일 동북아 인재 허브 만들자

지식국가 건설을 위한 제언

  • 글: 이각범 한국정보통신대학교 교수·정보사회학

    입력2004-02-27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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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재를 자국에 붙들어매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두뇌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재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 교류를 추진할 때만 인재 유치에 성공할 수 있다.
    • 오늘날 세계의 强小國들은 모두 ‘인재의 역류’에 성공한 나라다.
    한·중·일 동북아 인재 허브 만들자

    세계 각국은 지식정보사회에 맞는 인재육성을 위해 교육혁신에 나서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입시위주교육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세계 지식질서가 세계 경제질서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의 ‘질서(order)’란 세계 각국이 한 줄로 늘어선 ‘서열(order)’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서열의 사다리 위에서 개별 국가들은 자국의 지위를 격상시키기 위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세계 지식서열에서 어느 한 나라의 석차는 그 나라가 보유하고 창출하는 지식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혁신 역량이 한 사회의 발전을 좌우하며, 또한 한 사회의 총혁신역량은 지식력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경제는 혁신주도형 기업이 중심이 되어야만 질적인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다. 사회적 혁신을 기획하고 전략적으로 뒷받침하는 국가가 있어야만, 기업의 혁신을 위한 투자가 사회적 변혁으로 이어진다. 사회 전체의 혁신 능력은 국가와 기업과 사회적 혁신 주체들이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지식력을 높여갈 때 극대화된다.

    지금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이러한 혁신의 선순환 과정에 있다. 중국과 같이 미래의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나라들도 국가 혁신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착수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지식정보시대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하여 주도면밀한 전략을 종합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첫째, 글로벌 인재와 창조적 인재를 육성하고, 지식정보시대에 맞게 교육 내용을 바꾸었다. 둘째, 국가혁신체제를 구축하여 전략적 영역의 확보와 창조적 과학기술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셋째, 인재의 유치와 유지 전략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 하나로 이민제도를 수술하고 인재 확보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하고 있다. 넷째, 사회적 기반을 갖추었다. 사회적 투명성, 지식에 기반한 사회적 담론, 지식에 대한 공정하고도 충분한 보상, 삶의 질을 보장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였다.

    지식정보사회는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한두 개의 변인만으로 복합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변화는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변화는 한두 가지 부문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적으로 일어난다. 변화의 속도 또한 엄청나다. 교육은 한 사회가 메가트렌드적 변화를 따라가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세계의 교육시계와 시차가 없는 교육을 할 때 그 사회는 세계적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주요국들의 전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교육을 통하여 한 사회 안의 지식정보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의 질적 개선과 연구 능력의 고도화가 포함된다. 다른 하나는 세계 교육네트워크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질과 속도로 경쟁하는 환경에서는 대량생산 방식이 아닌 차별화 전략이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교육은 근대적 프로젝트인 평균인을 만드는 보편화 기능도 수행해야 하지만, 창의적 혁신역량을 갖춘 지식정보 선도그룹을 만드는 특수화 기능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식정보사회냐 無識사회냐】

    한국경제에 대한 컨설팅을 맡은 외국의 저명한 회사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최근 크게 위축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교육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학은 비효율적이다. 또 교수와 교사의 정년제가 교육 의욕을 떨어뜨리고, 교과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낙후되어 있다고 한다. 세계는 교육을 통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교육체계는 변화하는 지식이 아닌 정체된 지식의 전달에 치중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의 시계와는 무관하게 국내의 사회적 정치적 논리에 의하여 꺾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주체들은 변화하는 첨단지식을 세계적 범위에서 수용하는 것은 뒷전의 일이고, 근대적 프로젝트인 보편화에 머무는 것을 교육정의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3000만개 가 넘는 웹사이트가 매일 엄청난 수준과 방대한 양의 정보를 생산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러한 흐름과도 무관하다. 오직 세계적 네트워크로부터 국내교육시장을 지키기 위하여 교육쇄국을 하고 있다. 구질서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주입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창의성과 개성을 억압하고 있다. 다양한 교육기회의 보장과 교육제도의 자율성 확대는 평준화라는 교육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교육수준은 매년 질적으로 하향하는 추세에 있다. 학부모들의 열성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수준에 비하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식정보사회와 정반대의 방향에 있는 ‘무식(無識)사회’에 한층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세계적 지식인이나, 세계적 대학을 만드는 노력은 엘리트 집단의 권력향유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위하여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개방과 개혁은 보편화라는 이름의 현상동결 정책으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이제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명분 아래 도입되어 유지되고 있는 교육 평준화 정책의 참담한 결과와 학력저하, 국가경쟁력 저하 현상에 대하여 진지한 반성을 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식정보사회는 과학기술 혁신이 주도하는 사회다. 지식국가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시야에서 국가혁신체계를 구성하여야 하며, 그 핵심에서 과학기술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과학기술 혁신모델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지난 세기 중반의 제1세대 연구개발(R&D) 패러다임에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 응용부문에서도 성과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과학적 발견을 위해 제한을 두지 않는 연구 방식을 채택했다.

    제2세대 혁신 패러다임은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사업의 효율성을 지향했다. 그후 이를 대체한 제3세대 모델에서는 기존 고객의 필요(needs)에 주목하면서 기업의 전사적 전략경영(SEM)과 맞물린 기술의 선택적 개발론으로 바뀐다. 최근 기술·산업간 융합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분야별로 이루어지던 혁신전략 자체가 혁신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른바 제4세대 패러다임에서는 시장지식과 기술지식의 합성으로 잠재된 필요를 발견하고 기존 지식의 융합적 혁신을 통한 가치창출형 기술개발이 강조되고 있다.

    지금 경쟁은 세계화하고 기술은 융·복합화하고 있다. 동시에 R&D의 수단 역시 융·복합화하고 있다. 바야흐로 연구개발에 대하여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종래 연구개발 작업은 특정 기술을 따라잡는 데 주력했으나 이제는 기술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필요로 한다. 특정 분야의 선진 기술을 따라잡는 데 총력을 기울인 지금까지의 방식은 한계에 부딪쳤다. 성숙기의 기술에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중국 등 후발국들의 비교우위가 두드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큰 틀에서 몇 가지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자동차와 같은 대량생산 제품마저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므로 시장 지배적인, ‘실제(de facto)’ 표준으로서의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국제적 범위의 기술협력과 국내 산·학·정 협력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조직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정보통신 강국으로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한 CDMA 기술개발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이 점은 명백해진다. 이 사업은 시작 때부터 국제적인 공동연구를 통하여 원천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민간기업의 역할 분담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차세대 기술개발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세계적 범위에서 공동 연구개발체제를 만들고, 기술표준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가 되었다.

    【세계 초일류 연구중심대학 키워라】

    셋째, 공공재의 기능을 갖는 핵심기술 개발이 관건이다. 예컨대 SoC (시스템 온 칩) 기술개발의 경우 정부의 의욕과 달리 이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는 기반은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주문형 반도체(ASIC)의 기반 기술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SoC 분야 시장 점유율도 2%에 그치는 등 열세에 놓여 있다. 각국의 기술개발 경쟁도 뜨거운 분야이므로, 소프트웨어 기술, 나노 기술의 개발 등을 통해 첨단 설계 및 제조기술의 확보전략을 세워야 한다.

    미래를 내다본 핵심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엔 5~10년을 내다본 기술변화 예측이 선행돼야 한다. 동시에 사회문화적 변동을 고려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산업화의 전반기에 ‘선진기술의 도입과 개량’ 전술로 섬유·가전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과 자동차·철강·조선 같은 자본집약적 산업을 일으켰다. 산업화의 후반기에는 ‘생산기반-기술혁신’ 전술을 통하여 메모리 반도체, CDMA, TFT-LCD, DVD 등의 첨단 전자·정보산업에서 세계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자동차·철강·조선 등 산업에서도 같은 전술로 기술 고도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세계 선진국은 과학기술의 역량과 기반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본격적인 과학기술 혁신정책이 필요하다. 지식정보사회의 경쟁은 ‘이기는 자가 모든 것을 갖는(Winner Takes All)’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진국과의 역량 차이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부분에서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부분을 선택하고, 선택한 부분에 국민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전략적 영역을 선택하여 핵심 역량을 반드시 확보하여야 한다. 우리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아키텍처 디자인 능력이 갖추어진 일류상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창의적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려면 세계 초일류 연구중심대학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혁신체계는 과학기술 분야의 혁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계혁신 네트워크, 지역혁신체계, 기업과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작동한다. 모든 사회체계(social system)는 환경(environment)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국가혁신능력은 국내외 거시경제와 교육제도, 정보통신 기반 그리고 시장을 환경으로 갖고 있다.

    그러므로 시장과 과학기술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시장의 신호를 과학기술의 발전에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초일류 대학을 만드는 것과 학력철폐운동, 수월한 교육체계를 만드는 것과 평준화, 선택과 집중의 당위성과 균등발전의 당위성이 부딪쳐 야기하는 사회·문화적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과학기술 중심의 국가혁신체계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근육’은 NO, ‘두뇌’는 OK】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지식정보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지식노동력의 확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하나로 노동력의 질적 분포와 지식의 수요를 계산하여 선별적 이민정책을 추진하여 왔다. ‘근육의 유입’은 억제하는 대신 ‘두뇌의 유입’은 활발하게 추진했다. 여기서 ‘두뇌’라고 함은 필요한 부문에서 필요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의미할 정도로 선진국들은 지식노동시장의 요구에 유연하고도 체계적으로 대처해 온 것이다.

    인재의 유치와 유지전략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의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인재의 흡수에 가장 앞선 부문은 기업이며,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이 이에 대한 충분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이민제도는 미국의 지식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만한 인력의 유입에 대하여 매우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다.

    유럽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인재의 유치와 유지전략을 채택하게 된 것도 미국의 압도적 선점효과로 생긴 공백 때문일 것이다. 유럽은 오랫동안 누려왔던 지식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본격적인 인재유치 전쟁에 뛰어들었다. 먼저 세계의 인재들이 유럽의 교육기관과 연구기관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브뤼셀에는 유럽공동연구소를 세워 유럽의 연구개발(R&D) 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경제권에 공동 교육 및 연구단지를 조성하는 구상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민제도 대수술 필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재를 자국에 붙들어매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두뇌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재 네트워크의 적극적 활용을 통하여 활발한 인재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인재의 유치와 유지에 성공할 수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강국들은 기업의 R&D 기능과 생산기능을 미국에 이전하여 연구 성과와 인재의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지향적인 직접투자는 시장접근을 위한 투자와는 분명히 구별된다. 장기적인 지식과 인재의 획득이 우선 목표인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강소국(强小國)들은 인재의 역류에 성공함으로써 작지만 강한 나라를 실현할 수 있었다. 행정개혁을 통하여 ‘능률적인 국가’를 만든 뉴질랜드는 인재 확보를 위한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온 결론은 △뉴질랜드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수월성(Excellence)을 추구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취하는 외에 △혁신과 창의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주도적 전략 △기술변화를 수용하고, 성취지향적인 교육개혁 △기술 수월성을 추구하는 R&D 센터의 건립 △뉴질랜드형 산업 클러스터의 개발 △해외 뉴질랜드인들의 네트워크 구축 등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결론은 지식정보사회를 향한 일반적 전략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뉴질랜드 고급지식인의 뉴질랜드로의 귀환에 역점을 둔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또 하나의 강소국 아일랜드는 개방정책으로 전환하여 열린 경쟁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나라의 면모를 일신할 수 있었다. 선진국의 고임금 하이테크 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한 결과 ‘두뇌 유출’을 ‘두뇌 유입’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는 두뇌 유입이 기술발전전략의 수립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였다.

    한·중·일 동북아 인재 허브 만들자

    행정개혁을 통해 능률성을 높인 뉴질랜드는 해외 뉴질랜드인의 네트워크 구축에 역점을 두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 되고자 한다. 지식의 확보는 이를 위해 필수적이다. 중국은 이미 외국국적의 고급 관리자와 과학기술자, 대형 투자자에게 영주권을 발급하는 등 이민의 질적 관리에 들어갔다. 싱가포르가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 유수대학의 분교를 유치하여 아시아의 인재들이 중국에 모여들게 하려는 교육개방정책을 추진중이다. 그리고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비롯하여 세계 유수한 연구기관과 기업에서 활동중인 과학기술자, 경영자 등을 엮는 세계중국지식네트워크를 가동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중국인이 귀국하는 비율은 한국에 비하여 훨씬 낮다. 그만큼 중국의 젊은이들이 해외 현지에서 취업하여 활동중임을 의미한다. 중국은 이들을 잠재적인 인재의 풀로 간주하고 있다. 앞으로 고급지식 인력의 수요가 생길 때마다 공급받을 수 있는 충분한 원천을 해외에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인재가 모이게 하려면 두터운 인재층(critical mass)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가 모이는 곳에는 계속 모이기 마련이고, 흩어지는 곳에선 계속 흩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식정보사회를 이끌어가기 위하여 효과적인 숫자(critical mass)의 인재층을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보다 훨씬 앞선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선진 과학기술능력과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의 거대한 잠재력에 힘입어 동북아시아의 인재 허브를 형성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통합된 유럽은 이미 이런 전략을 세워 실행에 나서고 있다. 통합까지는 요원하지만 동북아시아, 그 중에서도 거대한 해외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중국과 협력한다면 동북아시아 공동연구센터를 부문별로 만드는 작업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보발신력을 높여라】

    지식정보시대 한국의 전략은 종래의 ‘캐치 업(catch-up)’을 포기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신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기반의 구축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조건을 따져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지식을 존중하고 지식에 대해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지식정보사회의 가치는 주로 지식을 통하여 창조된다. 지식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만, 고급 인력들이 지식작업에 매진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어느 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은 당장의 경제적 소득보다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적 차원에서도 지적소유권의 확립은 첨단화에 꼭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야지만 고수익, 고위험 부담 부분에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 사회의 정보발신력을 높여야 한다. 사카야 전 일본경제기획청 장관이 일본을 두고 아쉬워했던 ‘정보발신력의 빈곤’은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생성된 정보가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그 원천정보의 획득에 세계인들이 경쟁할 일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아이디어, 우리나라에서 나온 새로운 디자인, 우리나라가 만든 선진적 제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첨단 제품,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영화 등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스포츠 스타들에 대한 정보는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발신된다. 국산 영화나 드라마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반지의 제왕’ 하나로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의 관광객을 유치한 뉴질랜드의 경우에 비교하면 미약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북한 핵 문제가 그나마 정보의 원산지로서 한국을 세계에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중국이 점점 더 원천 정보발신지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우리의 정보발신력을 높여가는 것은 사회의 압도적인 부문이 세계화될 때 가능한 것이다.

    셋째로,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담론이 사회적 논의의 주조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지식정보사회의 민주주의는 다분히 정보통신 기반 위에 존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성격을 띤다. 선진국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숙의(토론)를 통하여 문제의 해결에 사회적 지혜를 모으는 숙의민주주의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정보화를 이룩했다지만 발달한 정보통신 기반 위를 소통하는 지식과 정보의 수준은 지식집약형 토론이라기 보다는 익명성 뒤에 숨은 정서적 토로의 경향이 짙다. 인터넷 접속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만 인터넷 토론 문화는 정착되지 못한 것이다. 토론을 생산적으로 이끌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다 이미 정한 입장에 서서 상대편을 강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열한 언사의 나열은 폭력적이다. 숙의민주주의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의 직접민주주의는 권위주의적 폐해만큼 심각할 수 있다.

    넷째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지금은 지식정보사회로 가는 엄청난 격동기다. 노동시장구조가 바뀌고 있고, 구조조정이 지속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그만큼 산업수명과 기술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많은 위험과 도전이 기다린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나아질 것이며, 도전한 만큼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과감한 투자와 창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 장래 비전이 모호한 청년인력들이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직종보다는 전통적 안정적 직종을 선호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에는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므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혁신의 폭발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19세기 조선시대 변화의 화두는 개화(開化)였다. 20세기 독립한 대한민국의 화두는 산업화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화두는 일류지식정보국가의 건설이다. 지식정보사회로 가는 길은 사회의 여러 부문이 밀접하게 관련성을 가지면서 혁신적으로 변모할 때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우선 경제적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첨단 산업이 존재하고, 충분한 연구의 기반과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인력이 모인다. 아울러 사회적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발달한 교육제도가 있어야 하고, 열린 사회여야 하며 숙의민주주의의 바탕 위에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담론이 사회를 지배하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볼 때 국가는 네트워크 국가로서 한국과 세계를 연결짓고 스스로 지식국가의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19세기의 세계화에서 우리는 실패했다. 21세기의 세계화는 세계지식질서에서 국가적 위치를 결정짓는다. 기업혁신, 국가혁신, 사회혁신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총 지식역량을 키움으로써 21세기 세계 지식서열에서 일류의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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