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여유로워 역동적인 바닷마을 거제도·통영

천혜의 閑麗물길 따라 펼치는 징검다리 섬들의 푸른 群舞

  • 글: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사진: 김성남 기자 photo7@donga.com

    입력2004-03-03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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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으로 남으로 여섯 시간을 내달려 거제와 통영에 닿았다.
    • 제법 쌀쌀한, 그러나 속 맑은 새벽 공기를 온몸에 듬뿍 담으며 오른 거제도 망산. 붉은 해가 둥실 떠오르자 짙푸른 바다 위를 점령한 셀 수도 없이 많은 섬들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려수도다.
    여유로워 역동적인 바닷마을 거제도·통영

    거제도 계룡산에서 내려다본 한려수도 전경.

    지난 1월의 끝자락, 남쪽으로 차를 내달렸다. 설 연휴를 꽁꽁 얼어붙게 한 심술궂은 동장군(冬將軍)의 기세가 한풀 꺾인 덕분일까.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사롭다. 입춘을 열흘이나 앞뒀고, 맵게 겪어야 할 꽃샘추위도 아직 멀었건만 벌써 봄을 맞은 듯한 기분이다.

    대전과 진주를 지나 달리기를 여섯 시간쯤. 할머니의 새하얀 머리칼 같은 굴양식장의 부표가 표표히 떠 있는 짙푸른 바다, 누군가 육지에 있는 산을 뚝 떼어다가 바다에 흩뿌려놓은 듯한 크고 작은 푸른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려수도(閑麗水道)의 땅 통영, 그리고 거제다.

    거제대교를 사이에 두고 지척으로 붙어있는 통영과 거제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전남 여수시에서 경남 통영까지 무려 480여㎢에 달하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널리 알려진 해양 관광지. 멋스러운 굴곡을 자랑하는 해안, 징검다리처럼 놓인 가지각색의 섬들, 한가로이 서 있는 등대, 그리고 가까이 다가간 사람에게만 제 속을 보여주는 맑고 짙푸른 바다. 그 앞에서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이가 몇이나 될까.

    거제도는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거제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기에 섬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700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서울보다 조금 더 큰 거제도를 감싸고 있는데, 명승지마다 쉬엄쉬엄 들러가며 한 바퀴 도는 데 서너 시간이 걸린다.

    한낮의 따사로운 날씨 때문일까. 두터운 겨울 외투를 벗고 간편한 차림을 한 어촌 사람들이 바닷가로 나와 저마다의 일을 하느라 부산하다. 지난해 여름 태풍 ‘매미’에 부서진 낡은 배에 정성스레 페인트를 칠하던 초로의 사내는 “태풍이 어찌나 거세던지 산 중턱까지 날아간 배를 끌고 내려왔다”며 너스레를 떤다. 바닷가 곳곳에 수북이 쌓인 굴 껍데기를 손질하는 일은 굴의 속살처럼 하얗게 머리가 센 노인들의 몫이다. “굴을 떼어낸 빈 껍데기는 버리는 게 아니요. 손질을 좀 해서 굴 양식장에 다시 가져가 쓰지.” 소일 삼아 쉬엄쉬엄 일한다는 노부부의 손목은 갈대처럼 가늘지만 호미 끝으로 굴 껍데기를 찍어내는 솜씨는 야물다.



    여유로워 역동적인 바닷마을 거제도·통영

    ① 겨울철에 제 맛을 자랑하는 감성돔 회.<br>② 구이굴은 날것보다 더욱 고소한 맛을 낸다.



    여유로워 역동적인 바닷마을 거제도·통영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 그 이름처럼 절경을 이루는 바위섬 사이로 지나가는 고깃배가 여유로워 보인다.

    통영과 거제 사람들은 굴양식을 많이 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도 청정해역으로 인정한 통영 앞바다에서 길러낸 굴은 검역 없이 미국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드문드문 ‘굴구이’ 식당이 있다. 저녁 어스름 거제굴구이(055-632-4200) 식당을 찾았는데, 꽤 널찍한 식당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커다란 번철에 껍데기째 한가득 담긴 굴을 구워 면장갑을 낀 왼손으로 집어들고 오른손에 쥔 작은 칼로 잘 익은 굴을 떼어내 한 점 맛본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금세 입안 가득 퍼진다. 1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최명인(40)씨는 “굴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생굴보다 구이를 즐겨 찾는다”고 했다.

    바닷마을에 내려왔으니 싱싱한 회도 놓칠 수 없는 일. 거제시청 앞 청회횟집(055-637-3340)을 찾았다. 겨울이 제철이라는 감성돔 회는 요즘 최고의 인기 메뉴. 낚시로 잡아올릴 때 힘깨나 써야 할 만큼 탄탄한 물고기답게 그 살도 야물고 쫄깃쫄깃하다. 사장 옥경석(50)씨는 “좀더 싸고 푸짐하게 생선회를 즐기려면 자릿세가 비싼 바닷가보다는 시내 쪽이 좋다”고 귀띔한다. 갖은 야채와 간장으로 버무린 달착지근한 생선 장조림도 일품.

    높은 곳에 올라 망망대해에 펼쳐진 수많은 섬들이 이뤄내는 장관도 빠뜨려선 안 될 구경거리다. 거제와 통영의 사방이 언덕이라 어디로든 발길 닿는 대로 가서 오르기만 하면 된다. 거제도 계룡산과 무신의 난 때 고려 의종이 피신해왔다는 폐총, 통영의 달아공원 등은 자동차로 한달음에 올라설 수 있는 곳이다. 등산의 상쾌함까지 즐기고 싶다면 거제도 남쪽 끝의 망산을 권한다. 해발 397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최근 등산로가 개척되었다. 거친 바위들을 헤치며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여유로워 역동적인 바닷마을 거제도·통영

    기암괴석의 신선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아침해가 떠오르기 전, 차가운 새벽 공기를 들이쉬며 망산 정상에 올랐다. 붉은 해의 기운이 짙어질수록 푸른 융단 같은 바다 위에 흩뿌려진 섬들의 자태가 하나씩 드러난다. 대병대도와 소병대도, 매물도 등 한려수도의 대표주자들이 한눈에 잡힌다. 맑은 날에는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거제도의 장승포, 와현, 구조라, 학동, 해금강 등지의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해금강과 공원으로 정성스레 꾸며진 외도 등을 돌아볼 수도 있다. 유람선은 평일 오후에도 연인과 가족 행락객들로 가득 찬다. 해금강의 십자바위로 유람선이 쑥 들어갈 때는 탄성이 터져나오고, 외도의 예쁘장한 경관 앞에서는 카메라 셔터가 연신 경쾌한 기계음을 낸다.

    통영을 대표하는 먹을거리 중 하나는 충무김밥. 여객선터미널 앞 항구에는 고깃배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길가에는 저마다 ‘원조’를 자처하는 충무김밥 식당이 늘어섰다. 주꾸미와 갑오징어 무침, 무김치를 김밥과 곁들여 뚝딱 먹어치우고 서둘러 제 갈 길로 향하는 사람들에게서 항구마을 특유의 역동적인 분주함이 묻어난다.

    날이 갈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여느 지방도시와 달리, 거제도는 활발한 선박사업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게다가 청정해역 덕분에 맛 좋은 수산물을 잡아 올릴 수 있고, 각양각색의 섬들이 서로 어울려 절경을 빚어내니 이래저래 복 받은 땅이라 하겠다. 외지인에겐 좀 놀랍기까지 한 생동감은 바로 이러한 여유로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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