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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고발

파멸의 지름길, 불법 ‘깡’판친다

현물깡, 휴대폰깡, 옥션깡은 인생 ‘꽝’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파멸의 지름길, 불법 ‘깡’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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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인터넷 대출광고 클릭해서 카드를 맡기고 돈을 받을 때까지. 하지만 그 순간 나의 개인정보는 수많은 불법 카드깡 업자들에게 열람되고, 평생 ‘신용불량’의 족쇄가 채워질 수도 있다.
파멸의 지름길, 불법 ‘깡’판친다
포털사이트 전면에 뜬 대출광고를 클릭하고 ‘상담신청서’를 작성한 지 딱 10분 만에 상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물건을 사기만 하면 됩니다. 고객님이 직접 대형마트에 가서 사도 되고 저희가 대신 사드릴 수도 있어요. 요즘은 가전제품을 주로 사요. 고가인 데다 되팔 곳도 많거든요. 파는 것도 저희가 알아서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수수료는 25%입니다. 00카드라고 하셨죠? 그럼 24개월 동안 나눠서 갚을 수 있으니 큰 부담이 안 되겠네요. 지금 신청하시면 오늘 저녁에는 필요한 돈을 입금해드립니다.”

상담원은 거리낌 없이 ‘카드깡’을 하라고 했다. 사무실이 너무 멀어서 당장은 찾아갈 수 없다고 하자 택배(퀵서비스)로 카드를 보내주면 자신들이 알아서 물건을 산 다음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자가 머뭇거리며 “카드 연체가 많다”고 하자 상담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물건을 사기 전에 먼저 돈을 드려요. 이 돈으로 카드 값을 갚으면 카드가 정상이 되잖아요. 그러면 저희에게 빌린 만큼 카드로 물건을 살 수 있죠. 카드연체가 있으나 없으나 원리는 똑같아요.”

그러나 이렇게 카드깡으로 돌려 막기를 시작하면 끝은 뻔하다.



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해 되팔거나 위장가맹점을 통해 구입한 것처럼 꾸며 현금을 융통하는 행위, 즉 카드할인(소위 카드깡)이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사업자등록, 대부업등록까지 마친 합법적인 대출중개업체에서 불법 카드깡을 종용한다는 것. 이런 업체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어 평범한 주부, 학생들까지 쉽게 ‘카드깡’에 빠져들고 있다.

“카드소지자 신용대출, 카드연체자금대출 등 말은 거창한데 실은 모두 카드깡이에요. 홈페이지도 은행처럼 멋지게 꾸며놓았더군요. 아내가 저 몰래 장인어른에게 돈을 빌려드리려고 이 사이트에서 16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았어요. 그런데 아내는 그게 불법 카드깡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그냥 중소형 은행인줄 알았다는 거죠. 저도 처음에는 카드담보 대출인 줄 알았습니다.”

부인 정모씨가 카드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장모씨는 바로 카드분실 신고를 했고 대부업체에 전화해서 빌린 돈을 갚겠다고 했다. 대부업체 담당자는 부인의 카드 한도만큼 대출해준 후 카드정보를 이용해 위장가맹점에서 분재를 구입한 것처럼 꾸며 대납금을 회수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직 카드깡을 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장씨는 곧 원금 1600만원을 갚았지만 대부업체에서는 원금 외에 200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내라고 요구했다.

“아직 카드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러면 100만원만 내라는 거예요. 그래서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없던 일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알았다. 하지만 부인 정씨는 나중에 은행 대출을 받으려다 그때의 실수가 평생 자신을 쫓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대부업체와 거래를 했다는 기록이 정씨의 신용정보에 남아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전제품은 현물깡 인기 품목

최근 카드깡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국세청은 2000년부터 2003년 상반기까지 총 1만3228개의 신용카드 위장가맹점을 적발했는데, 그 수가 매해 증가하고 있다(2000년 3631개, 2001년 3033개, 2002년 4356개, 2003년 상반기 2208개). 또 경찰청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특별기획수사를 실시해 카드깡 혐의자 7210명을 검거했는데 2001년 879명, 2002년 1199명, 2003년 5132명으로 특히 2003년은 전년에 비해 거의 4배 이상 증가했다. 2003년에는 ‘대부업자 불법행위 특별단속’도 함께 진행했는데, 카드깡이 총 검거건수의 57%를 차지해 대부업자 상당수가 카드깡을 병행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증가세는 카드사들이 회원의 현금서비스 한도를 축소한 데다, 인터넷에 난립한 대출중개사이트들이 카드깡을 유도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법행위를 유도하는 중개사이트들이 실제로는 합법적인 대부업체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동업하는 곳인 경우가 많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연합회 김명일 사무총장은 대부업체에서 카드를 대신 소지하지만 않는다면 “카드 연체금을 대납하거나 카드를 담보로 대출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합법적인 대부업체들은 이런 테두리 안에서 대출을 해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부 업체들이 카드깡을 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가장 많이 나타나는 카드깡 형태는 가전제품을 이용한 ‘현물깡’이다. 기자가 연락을 취한 대다수 업체에서도 ‘가전제품을 사라’고 종용했다. 가전제품의 경우 고가인 데다 거의 원가대로 되팔 수 있기 때문. 현물깡은 직접 물품이 거래되기 때문에 ‘카드깡’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 현물거래가 없는 카드깡의 경우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현물깡은 카드깡 업자와 공모했음이 드러나지 않는 한 처벌할 근거가 없다.

전통적 카드깡이 인터넷 중개사이트를 통해 증가했다면 신종 ‘깡’들은 인터넷 공간을 이용해 급증하고 있다. “돈 되는 것은 전부 다 깡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온라인쇼핑몰깡, 휴대폰깡, 옥션깡, 소액결제깡, 게임아이템깡 등 온갖 기상천외한 깡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난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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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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