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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②

글라이스틴의 고뇌와 한 선교사의 현장기록

“광주엔 무자비한 진압만 있었을 뿐 어떠한 폭동도 없었다”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글라이스틴의 고뇌와 한 선교사의 현장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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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가 광주 특파원 헨리 스캇 스토우크스의 기사를 게재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음. 광주 현지의 학생 지도부가 스토우크스 기자에게 요청하기를 미 정부가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협상 중재역을 맡도록 해달라고 했다는 내용의 기사임. 서울 주재 ‘뉴욕 타임스’ 기자인 헨리 캄은 이 문제를 당 대사관 정보담당관에게 알려왔으며, 정보담당관은 캄에게 대사관은 그런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통보했음.』

글라이스틴은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이때의 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할 수는 없었다’고 썼다. 미국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한국 내부문제인 광주사태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미국은 광주에 관한 한 끝까지 제3자의 입장이기를 바랐고 그런 원칙이 행동반경을 결정지었다.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된 병력 이동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대응에서도 이런 원칙은 끝까지 지켜졌으며, 5월27일 이후 전개된 전두환 정권 등장이라는 한국 정치에서도 미국의 원칙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개입하지 않을 것”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광주사태를 전후로 전개된 한국 상황은 예측하기 힘들고 변화의 방향을 종잡기 힘든 일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가 한국에서의 사태 전개에 얼마나 곤혹스러워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두 건의 문건을 소개한다.



하나는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으로 사태가 막을 내린 5월29일 자신이 직접 작성해 머스키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문이다.

『1980년 5월29일 12:15

제목 : 〈한국 초점〉 최근 상황에 대한 한국인의 대응

전두환 및 그 그룹이 실제로 정권을 장악한 것과 관련해 한국인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를 워싱턴의 고위정책검토반이 궁금해하고 있으며 곧 주요한 고위정책 검토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점을 본인도 알고 있음.

본인이 이전 참고사항 보고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한국인의 반응이 아주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임. 만약 대부분의 한국 국민이 새롭게 부상한 권력 구조에 편안하게 적응해 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도 그 상황에 따라갈 수가 있음. 그러나 만약 한국민 대다수가 새로운 지도부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새로운 권력과 대결 구도로 가게 된다면 우리의 입장에 변화가 있든지 아니면 우리는 개입하지 않을 것임.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는 한국 국민의 여론 향배에 대해 어떠한 신뢰할 만한 판단도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님. 우리는 이 여론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하고 있으며, 다음 주중에 이에 대한 보고가 있을 것임.

많은 미국인은 한국 국민들 사이에 (새로 부상한 권력층에 대해 : 옮긴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으나, 여러 증거를 종합해 볼 때 상황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님.

더 자세한 정보를 전하지 못해 유감이며, 우리 보고서가 제때 시간을 맞추지 못해 워싱턴이 당혹스러워한다는 점도 알고 있음. 그렇긴 하지만 우리의 정책은 미국의 예측이 아닌 현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보며, 한국민이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고 봄.』

이 문건에서 알 수 있듯이 5월27일 계엄군이 광주에 재진입해 사태가 마무리된 이틀 후에 워싱턴과 주한 미 대사관의 관심은 이미 광주가 아니었다. 광주 유혈참극의 발단이 된 초기 공수특전단의 시위대 가혹 진압 때 글라이스틴 자신의 표현대로 미국이 ‘서울 문제에 몰두’하고 있었듯이 광주사태가 유혈 마무리된 후 미국은 다시 전두환 정권 등장이라는 정치게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전두환의 언론플레이와 여론조작

광주사태 마지막 날인 5월27일 미 대사관이 작성한 ‘1980년 5월27일 오후 10시 현재 한국 상황’이라는 제목의 보고문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광주는 조용한 것 같음. 서울의 라디오 방송은 오후 3시 진압군의 광주 재진입으로 발생한 사상자 수를 수정 발표했음. 17명의 폭도가 사살당했고 295명이 체포되었다는 보도임. 군인도 두 명 사망했음. 사상자 수가 훨씬 많으며 진압군이 질서 회복을 위해 강경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서울에 퍼지고 있으나,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가택수사 같은 일은 군 병력이 아닌 경찰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

5월27일 계엄사령부를 통해 광주 현지의 팀 워런버그, 주디스 체임벌린, 데이빗 도링거 등 미국인 평화봉사단원 3명의 안전이 확인되었다고 보건사회부 장관이 통보해 주었음.

광주 현지가 상대적으로 조용해졌다고 판단, 당 대사관의 대기관찰(standby watch) 업무는 5월27일 오후 11시를 기해 종료함.』

이 짤막한 마지막 보고문은 광주사태를 보는 미 대사관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한국 정부 당국이 발표하는 현지 정보에 의존하면서 광주 현지의 질서 회복이라는 피상적인 사태 파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질서 회복이라는 이름 아래 사살된 광주 ‘폭도’의 숫자는, 실명이 거론된 평화봉사단원 같은 자국민 보호에 대한 미 정부의 열정적인 의지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

글라이스틴은 위 전문을 타전한 같은 날(5월29일) 새로 등장한 상대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는다. 새로운 정치 게임의 시작이다. 광주사태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서울 게임’을 시작하려면 12·12 사건 이후 누적되어 온 전두환 그룹과의 불편한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일방적인 언론 플레이와 미국의 입장에 대한 여론 조작을 꼬투리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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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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