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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⑦|늘재에서 문경새재까지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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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대야산을 내려오는 길목에선 조심하라고 왜 그토록 일렀는지 나중에야 실감할 수 있었다. 급한 내리막길에 나뭇가지마저 여의치 않아 미끄럼을 타야 했고, 밧줄로 오르내리는 길에서도 머리칼이 쭈뼛 서는 순간을 수차례 맞았다. 특이한 것은 맨 몸으로 올라서기도 힘겨운 자리에 줄줄이 늘어서 있는 무덤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묻었고, 또 무슨 이유로 무덤이 닳고 닳아 등산로와 높이가 같아지도록 방치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일단 촛대봉을 넘어서면 한숨을 돌릴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불란치재를 지나 옛날 곰들이 넘어 다녔다는 곰넘이봉을 통과하면 버리미기재가 나온다. 이곳은 충북 괴산과 경북 가은을 연결하는 913번 도로가 지난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가은쪽으로 3km쯤 걸어가니 대형 주차장이 나오고, 그 밑으로는 경북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산비탈밭농사지대가 펼쳐진다. 필자가 이곳을 지날 즈음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각양각색의 허수아비가 늘어서기 시작했는데, 특히 녹색 치마에 검은 머리까지 늘어뜨린 여인허수아비가 압권이었다.

완장리 마을까지 내려와 오른편 벌바위 쪽으로 10분쯤 올라가면 유명한 식당이 하나 나온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에게 잘 알려진 돌마당식당이다. 식당주인 심만섭씨는 20년 전 우연히 대야산을 등반했다가 산세에 반해 전 재산을 털어 대야산 밑에 정착했다. 그는 수석과 조경에도 조예가 깊어 식당 구석구석을 다채롭게 꾸며놓았다. 필자는 식당 입구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바로 대야산 정상에서 아쉽게 헤어졌던 아저씨들이었다. 그들은 연배가 한참 낮은 필자를 기꺼이 술자리에 끼어주었다. 산벚꽃 향내 짙은 야외에서 동동주에 취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백두대간의 사리’

18일 새벽. 서둘러 대간에 붙으려 하는데 식당 주인은 “여기까지 와서 선유동을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며 자신의 차로 필자를 안내했다. 선유동은 흔히 대야산 서쪽, 그러니까 충북 괴산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문경사람들은 대야산 동쪽을 선유동이라고 부른다. 과연 선유동은 고금의 풍류객들이 감탄할 만한 곳이었다. 시간이 없어 입구만 둘러봤는 데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히 계곡의 바위와 연분홍빛 산벚꽃의 궁합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문경 선유동에는 곳곳에 음각한 글씨들이 보이는데, 지역주민들은 이것이 고운 최치원의 작품이라고 믿고 있다.



버리미기재에서 식당 주인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장성봉(915.3m) 쪽으로 올라섰다. 긴 오르막이지만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다. 장성봉부터는 고만고만한 능선이 이어졌다. 왼편으로 막장봉(887m)을 보내고 조금 더 가니 쉬어갈 만한 바위마당이 나왔다. 그냥 달릴 수도 있는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한 이유는 절벽의 묘한 풍경 때문이었다. 말라죽은 나무는 대부분 흉물이 되기 십상인데, 이 물건은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바위산장에서부터는 빠르게 내칠 수 있는 구간이다.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를 서너 개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악휘봉(845m)이 보이고 왼편 아래쪽으로는 은티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부터 희양산 자락이다. 희양산은 유명세에 비해 직접 오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방이 바위로 둘러싸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불교계에서 접근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양산에는 한국불교 조계종 총무원의 특별수도원인 봉암사가 있는데, 석가탄신일에도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도량이다.

신라 헌강왕 5년(879) 지증도헌국사가 창건한 9산 선문 중의 하나인 봉암사는 한국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불교는 조선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안팎으로 큰 상처를 입는데, 1947년 성철스님 주도로 청담, 자운, 월산, 혜암, 법전스님 등이 봉암사에 모여 “부처님 법답게 살자”며 쇄신의 깃발을 치켜들었다. 한국불교의 역사를 바꾼 봉암사 결의가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이런 까닭에 백두대간을 순례하며 한국불교의 발자취를 더듬은 윤제학 선생은 봉암사를 가리켜 ‘백두대간의 사리’라고까지 칭했다.

희양산과 은티마을이 갈라지는 곳에는 재미있는 낙서가 하나 있다. ‘소인은 못갑니다. 산꾼만 가십시오.’ 이 말을 이해하려면 희양산 품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스님들은 봉암사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고대전투에서나 볼 수 있던 목책을 둘러쳤다. 또한 희양산 정상으로 가는 중턱에는 온종일 스님들이 당번을 서고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희양산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님들도 백두대간 종주대에게는 예외적으로 통행을 허용해 왔고, 산꾼들도 스님들께 누를 끼치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혹시라도 희양산 도량에서 스님들을 만난다면 이렇게 예를 갖추길 바란다. “스님,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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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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