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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기획|수도이전 논란, 나라가 찢긴다

수도이전 찬성 對 반대로 맞선 ‘40년 우정’

김안제 “70년대 못이룬 꿈 이루자”, 최상철 “수도이전 취지 변질됐다”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수도이전 찬성 對 반대로 맞선 ‘40년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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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수도이전 프로젝트에 관여한 것은 누가 먼저일까.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의 수도이전에 반대해 헌법소원까지 낸 최상철 교수가 먼저다. 최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던 지난 1976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통해 청와대의 ‘밀명’을 받고 임시 행정수도 입지 선정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최 교수의 회고담이다.

“1976년 현충일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의를 하고 있는데 교무과 직원이 강의실 문 밖에서 기다리면서 당시 윤천주 총장이 ‘총장실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는 거예요.”

윤천주 당시 서울대 총장은 고려대 출신이었다. 고려대 학장을 지낸 직후 공화당 사무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거치고 나서, 고려대를 떠난 뒤 12년 만에 서울대 총장을 맡아 학계로 다시 돌아왔으니 학교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공화당 실세 등 실력자들과 ‘핫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윤 총장이 맡았던 일은 박정희 대통령의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뒷받침해줄 학자를 물색해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윤 총장을 포함해 공과대의 주모 교수와 함께 차를 타고 출발하길래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나도 모른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도착해 보니까 김종필씨의 청구동 자택이었습니다.”

당시는 김종필씨가 국무총리직을 막 그만두었을 무렵이었다. 거실에 마주앉은 김 전 총리가 최 교수 앞에 꼬깃꼬깃 접힌 한 장의 지도를 내놓았다. 가장자리가 너덜거릴 정도로 접었다폈다 한 흔적이 있고 여기저기 뭔가를 구상하며 설계한 듯한 연필자국이 있는 낡은 지도였다. 지도에 표시된 위치는 북으로는 천안, 남으로는 대전, 그리고 동서로는 충주와 논산을 경계로 하는 충남권 일원이었다. 김 전 총리는 최 교수에게 “이 중에서 임시 행정수도가 될 만한 지역을 한군데 찍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워낙 급작스런 주문이어서 도시계획 전문가인 최 교수에게도 임시수도 건설의 ‘그림’이 쉽게 와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최 교수가 김 전 총리에게 배경 설명을 부탁했다. 당시 JP가 전한 박 대통령의 구상은 ‘지상포 화기의 사거리 내에 1000만의 인구를 둔다는 것은 안보전략상 문제가 있으므로 통일이 될 때까지 임시로 행정부 기능만 옮길 곳을 물색하겠다’는 것이었다.

청구동 거실에서 밀명을 받다

최 교수는 임시 행정수도 구상 그 자체보다 지도가 너덜너덜해질 만큼 박 대통령이 임시 행정수도 건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는 데 놀랐다고 한다.

JP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포병장교 출신 아니냐, 포병장교는 독도(讀圖)법을 가장 먼저 공부한다. 때문에 박 대통령 역시 지도를 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 교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달이 채 안 되는 것이었다. 임시 행정수도 프로젝트의 발주자인 박정희 대통령측으로부터 ‘광복절 이전까지’라는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JP가 마련해준 남산 타워호텔 내 ‘안가(安家)’에서 40여일간의 강행군이 시작됐다. JP가 내밀었던 지도에 연필로 그어진 지역들을 샅샅이 현장답사하고 장단점을 분석해 18쪽짜리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 보고서를 JP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난 뒤 최 교수는 한동안 그 일을 잊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임시 행정수도 건설 구상을 밝힌 것은 이듬해인 1977년초 서울시 연두순시 과정에서였다. 최 교수의 기억에 따르면 서울시 순시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훗날 중앙정보부장이 된 김재규 당시 건설부 장관에게 문건 하나를 건네며 “이 안에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며 임시 행정수도 건설 작업을 지시했다. 수도 이전 문제가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순간이다. 그때 박 대통령이 김재규 장관에게 건넨 문건이 바로 최상철 교수가 타워호텔 ‘안가’에서 만든 18쪽짜리 보고서였다.

70년대는 최상철 먼저 참여

김안제 위원장이 박정희 시대의 임시 행정수도 건설 작업에 참여한 것은 이보다 몇 달 뒤였다.

박 대통령의 지시 이후 임시 행정수도 건설 작업은 청와대 직속기구로 만들어진 중화학공업기획단에서 추진하게 된다. 기획단장은 오원철 경제 제2수석, 부단장은 훗날 동력자원부 장관을 지낸 박봉환씨였다. 당시 중화학공업기획단은 각종 장치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국책 프로젝트는 물론 자주국력을 갖추기 위한 율곡사업 등을 비밀리에 추진하던 곳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행정수도 이전이 안보 차원에서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기획단에 정책 전문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주로 박봉환 부단장이 맡았다. 김안제 위원장 역시 박봉환씨의 요청에 따라 임시 행정수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연구실무반장 자격으로 1977~79년에 주로 임시수도 건설 비용 및 투자계획 등에 대한 추계 작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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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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