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튼튼하고 안전한 차.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볼보차의 트레이드 마크다. 안전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볼보차는 환경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의 명차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볼보차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스웨덴 예테보리의 볼보차 공장을 찾아 그 힘의 근원을 알아보았다.
① 금년 3월 제네바 모토쇼에 출품해 좋은 반응을 얻은 컨셉트카. ② 볼보차의 첨단기술을 집약해 제작한 S80. ③ 세계적으로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출시된 이후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는 XC90. ④ 날렵한 외관이 일품인 P121. 1958년 출시되었다.
이처럼 외관상으로는 한산해 보이지만 볼보자동차의 최근 성장세는 눈부시다. 2003년의 경우 매출이 10% 늘었으며, 금년 상반기에는 23만여대가 팔려 11%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볼보차의 대약진 비결은 무엇일까. 철저한 품질 관리,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안전하고 편안한 차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첫손 꼽을 수 있다.
‘스웨덴의 자존심’
볼보차는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1924년 경제학자 아서 가브리엘손과 베어링 회사 엔지니어 구스타프 라르손이 의기투합해 만든 볼보차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메이커 중에서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볼보차의 첫 모델은 일명 야곱으로 불린 OV4로 창립 3년 만인 1927년 출시되었다. 야곱은 4기통 엔진으로 정상주행속도가 시속 60km. 요즘의 자동차와 비교하면 ‘장난감’ 수준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속도였다. 1929년에는 6기통 PV651을 개발해 처음으로 해외수출을 했으며, 1935년에는 요즈음 차량처럼 사면이 막히고 짐칸이 장착된 유선형의 PV36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볼보차는 군용차량 생산에 주력하는 한편 ‘스웨덴의 미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디자인이 아름다운 소형차 PV444를 개발하여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
볼보차가 명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안전성이다. 안전을 주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온 데다 각종 테스트에서도 볼보차의 안전성이 여실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볼보차는 창립 초기부터 안전을 핵심적인 기업 이념으로 설정해왔는데 이는 스웨덴의 기후조건과 무관치 않다. 스웨덴은 북반구에 속하는 나라여서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눈이 내린다. 폭설은 다반사다. 날씨가 추워 도로가 얼어붙기 일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차의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볼보차 광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차량을 7대 겹쳐 쌓아놓은 광고다. 차 6대가 내리누르고 있음에도 맨 아래에 있는 차는 끄떡없다. 그만큼 강한 차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렇듯 볼보차는 안전성을 내세워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볼보가 포드 만들기 원치 않아”
볼보차의 효시 V4. 일명 야곱으로 불리는 이 차는 창립 3년 만인 1927년 제작되었다.
잘 나가던 볼보차도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 볼보차는 1990년 합병을 목적으로 프랑스의 르노와 제휴했다. 그러나 3년 만인 1993년 합병은 물거품이 됐다.
독자 생존을 모색하던 볼보차는 마침내 1999년 3월 포드에 인수되었다. 승용차를 비롯해 트럭, 건설기계 등을 생산하던 볼보그룹이 볼보차만을 떼어내 포드에 매각키로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볼보차의 발전을 위해서였다.
당시 볼보차는 흑자 경영을 했고 스웨덴 내에서도 매각 반대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연간 생산능력이 40여만대 수준이어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규모를 키워야 생존할텐데 당시 볼보그룹으로서는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볼보그룹은 승용차 부문을 매각하는 대신 나머지 부문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1998년에는 삼성중공업에서 건설장비부문을 사들였고, 2001년에는 미국의 맥트럭과 프랑스의 르노트럭을 인수했다. 그 결과 볼보그룹의 트럭 부문은 세계 3위로 뛰어올랐다. 볼보차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빅 브라더’인 포드의 그늘 밑에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볼보차를 포드에 매각함으로써 그룹도 살고 볼보차도 사는 ‘윈-윈 전략’을 선택한 볼보그룹의 계산은 아직까진 적중하고 있는 셈이다.
포드에 인수당했지만 볼보차는 거의 완벽하게 독립경영을 한다. 포드사 경영진은 볼보차에 단 한 명도 없다. 포드는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 있는 볼보차 투슐란다 공장.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장으로 평가받는다.
포드의 기대에 부응하듯 볼보차의 신장세는 두드러진다. 작년의 경우 41만 5000대를 판매했으며, 올해는 45만대를 목표로 잡고 있다. 볼보차의 최종 목표는 60만대. 그중 30만대는 유럽, 20만대는 미국, 나머지 10만대는 아시아 시장에 팔 계획이다.
하지만 60만대는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세계의 톱 클래스 자동차메이커들은 수백만 대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볼보차는 왜 목표를 더 높여 잡지 않는 것일까. 구스타프손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차를 많이 만들다보면 고객에게 소홀해지기 쉽다. 따라서 생산량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고객과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60만대가 가장 적절하다”
포드 인수 후 순항을 계속하는 볼보차의 순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그 수치를 묻자 구스타프손씨는 포드가 여러 자회사의 실적을 합산해 발표하므로 회사별 순익은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포드의 자회사 중 볼보차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거라고 말한다.
실용적인 아름다움 추구
현재 볼보차는 스웨덴 내에 투슐란다, 우데발라 등 2개의 공장을, 벨기에 겐트에 1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중 투슐란다 공장이 규모가 가장 크다. 그외에 말레이시아, 태국, 남아공에는 조립생산 라인이 있다.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엔진은 전량 스웨덴에서 제작한다.
요즘은 차의 성능 못지않게 외관도 무척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세련된 스타일의 차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과거 볼보차는 우직해 보이는 박스형이 주종을 이루었다.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 760 모델과 뒤이어 나온 940, 960이 모두 그렇다. 박스형 디자인은 볼보가 강조하는 안전과 관계가 깊다. 세련미는 다소 부족하지만 든든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볼보차는 디자인에 유선형 라인을 도입하는 등 소비자의 변화한 기호에 맞추기 위해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볼보차가 시류에 영합하는 것만은 아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다’는 볼보차 특유의 디자인 철학은 엄격히 유지하면서 자동차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볼보차의 디자인센터는 스웨덴, 스페인, 미국 등 3개국에 산재해 있다. 스웨덴에서만 디자인을 할 경우 소비자 취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볼보차는 직원 채용에서도 다양성을 강조한다. 직원들의 인종과 성비(性比)가 다양해야 고객의 성향을 정확히 반영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볼보차에는 70여개 국적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으며, 투슐란다 공장의 경우 4500여명의 근로자 중 여성의 비율이 25%나 된다. 여성 근로자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조립라인에서 중장비를 들고 일한다. 자동차 공장과 여성 근로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여성 근로자의 생산성이 높은 부문도 적지 않다고 공장 관계자는 말한다.
볼보차의 여성 인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컨셉트카 개발에서도 나타났다. 볼보차는 올해 3월 제네바 모토쇼에 출품한 컨셉트카 개발팀 20여명 대부분을 여성으로 구성했다. 여성이 차를 만들면 과연 어떤 차가 될 것인가라는 소박한 의문에서 비롯된 컨셉트카는 평소 여성 운전자들이 불편해했던 점을 대폭 고치고 미비했던 점을 보완함으로써 제네바 모터쇼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개발팀의 카릴라씨는 말한다.
여성 운전자들은 쪽찐머리로 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헤드레스트에 머리가 닿으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컨셉트카의 헤드레스트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쪽찐머리가 그 안에 쏙 파묻힘으로써 운전중 머리 때문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컨셉트카 개발팀을 여성 위주로 짜면서 볼보는 자동차 구매에서 여성의 주도권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 그동안 자동차메이커들은 주로 성능과 디자인에 신경을 써왔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부분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는 소홀했다. 볼보차는 바로 여기에 착안했다. 인테리어, 수납공간, 주차와 승하차시의 편리함 등에서 한 발 앞선 차를 만들기로 했는데 그러려면 여성의 시각에서 무엇이 잘못되거나 부족한지 알아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 한마디로 여성의 ‘가려운 곳’을 긁어줌으로써 매출 신장을 이루겠다는 전략이었다.
① 투슐란다 공장 근로자 중 여성은 25%를 차지한다. ② 여러대의 로봇이 차를 조립하고 있다. ③ 안전센터 내의 충돌실험 장면. 볼보차는 안전센터 건설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 ④ 충돌실험에 사용할 더미를 만들고 있다.
메이저 자동차업체들의 공장이 대부분 그렇듯 볼보차 조립라인에도 사람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자동화율이 99%에 이른다니 모든 걸 기계가 알아서 하는 셈이다. 하지만 기계를 작동시키고 제어하는 것은 역시 사람의 몫이므로 인력의 질이 곧 품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력을 채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인력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볼보차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재교육을 실시한다. 팀원들끼리 상의해 필요한 교육을 회사에 요청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받아들여진다.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려면 근로 분위기도 중요하다. 공장 내 20여군데에 스낵바를 마련해 근로자들이 휴식시간에 마음껏 피로를 풀 수 있도록 했다. 공장에는 항상 음악을 틀어 삭막한 분위기를 완화시켜준다. 용접공의 헬멧에는 산소 공급기를 부착해 항상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주며 무선 음향시설도 부착해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기자가 방문하던 날 용접라인에서는 여러 명의 근로자가 노래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네 공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공장을 안내한 글렌 에반스씨는 근로자가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반박한다.
볼보차 1대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4일.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더 단축할 계획이 없다. 볼보차는 품질을 중요시하므로 생산성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품질이 좋아진다면 당연히 후자에 비중을 둘 것이라고 에반스씨는 말한다.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로 근로자의 파워가 센 편이다. 스웨덴 기업들도 한때는 대립적 노사관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오랜 대화와 대결을 통해 지금은 대부분의 기업이 상생(相生)의 노사관계를 이루고 있다. 기업은 경영상태를 낱낱이 공개해 근로자에게 주인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그들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볼보차도 마찬가지다. ‘열린 경영’을 통해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회사와 근로자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볼보차에는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회장은 매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회사의 현황을 알려준다. 또한 노조위원장은 경영진의 일원으로 참여해 경영상태를 파악하고 근로자들의 요구를 전달한다. 그런 덕분인지 볼보차에선 스트라이크가 벌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볼보차 대변인 구스타프손씨는 볼보차 노사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 당장 분배하고 나면 내일은 가질 게 없다는 것과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사실을 근로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노사갈등은 없다. 노조의 관심거리는 임금이나 복지만이 아니다. 회사의 성장이나 발전전략에 대해서도 노조는 관심을 기울이고 토론한다. 노조가 회사와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다. 서로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 경영에서 노사관계의 안정성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성숙한 노사관계 정립이 시급한데 볼보차의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안전·품질·환경
볼보차는 안전·품질·환경을 3대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게 없으나 그 중에서도 안전은 오늘날의 볼보차를 이룩한 핵심 가치다.
투슐란다 공장에는 지난해 3월 완공된 안전센터가 있다. 이곳은 볼보차의 자랑거리로 개원식 때 스웨덴 국왕이 직접 참석해 테이프커팅을 하기도 했다.
볼보차는 안전에 관한 한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 자동차 충돌 테스트 등 각국의 안전실험에서 볼보가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줄기차게 노력해온 덕분이다. 볼보차가 안전에 관해 좋은 평가를 받는 비결은 여러 가지지만 무엇보다도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와 엔지니어들의 축적된 경험에 있다. 구스타프손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소재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나 구입해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펜이나 컴퓨터는 누구나 갖고 있다. 그걸 사용해 어떤 글을 쓰느냐는 본인의 실력에 달려 있다. 자동차의 안전도 마찬가지다. 노하우가 없으면 절대로 안전한 차를 만들 수 없다”
볼보차의 경우 정면 충돌 시 엔진이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와 탑승자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는 것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다고 한다. 그 결과 엔진룸의 각종 부품에 강도가 각기 다른 철판을 사용함으로써 충격을 고루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하면 충돌 시 앞쪽에 있는 모든 부품이 예정된 위치에 모여 찌그러진다는 것.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연구실의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설계 방식을 적용한 이후 피해가 크게 줄었다고 안전센터의 토마스 브로버그 부원장은 설명한다.
볼보차 안전센터에서는 연간 400여회의 충돌실험을 한다. 그중 볼보차는 150여대이며 나머지는 재규어, 랜드로버 등 포드가 인수한 회사의 차이다. 타 회사 차량이 볼보차 안전센터에서 충돌실험을 하는 것은 이곳의 시설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전성을 강조한 볼보차의 광고. 7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이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볼보차는 ‘강한 차’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충돌 장면에는 사람 모형의 더미(dummy)를 사용한다. 더미는 인체와 비슷하게 만들지만 여간해서는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서 사람이 어느 정도 부상을 당하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3차원 입체영상으로 충돌실험 결과를 분석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의 피해를 측정한다.
사고조사팀 운영해 각종 데이터 수집
볼보차의 안전을 위한 노력 중 돋보이는 것은 사고조사팀 운영이다. 예테보리에서 사고가 나면 1시간 내에 조사팀이 현장으로 출동해 경찰과 합동조사를 벌인다. 사고 경위와 당시 상황, 차체의 손상 정도, 탑승자의 부상 범위를 면밀히 조사하고 운전자를 만나 자세한 정황을 듣는다. 이런 자료를 종합해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사고조사팀은 현재 3만여건의 자료를 축적해두고 있다.
사고조사팀이 이런 활동을 벌이는 이유는 차량 제작에 참고할 자료를 얻기 위해서다. 이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는 차량이 어떻게 파손되는지, 운전자가 어떤 부상을 당하는지 파악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더욱 안전한 차량을 만들 수 있다고 브로버그씨는 설명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볼보차는 많은 안전장치를 개발했다. 지난 1998년에는 후방 충돌 시 경추(頸椎)를 보호하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이는 5년 동안의 사고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에 기초한 것이다. 경추보호 시스템이 있는 차량은 부상률이 50% 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안전센터 벽에는 ‘Children are not small adults’라고 쓰인 포스터가 걸려 있다. 어린이의 신체는 어른보다 대단히 약하기 때문에 자동차 제작에서 어린이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패밀리카에 특히 강점을 보이는 볼보차는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안전장치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브로버그씨는 5세 이하의 어린이를 차에 태울 때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앉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왜 그럴까.
어린이는 성인과 달리 머리가 불균형할 정도로 크다. 그 대신 목은 상당히 약하다. 따라서 차량 충돌 시 목을 다칠 확률이 어른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어린이를 반대 방향으로 앉히면 충돌 시 목이 앞좌석의 헤드레스트나 시트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목을 다칠 확률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중연료 차량 개발에 박차
볼보차가 안전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환경이다. 볼보차는 홍보자료에서 ‘우리의 기업 목표는 판매 1위도, 최고의 매출도 아닌 환경친화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환경문제 해결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볼보차는 지난 1976년부터 환경 오염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왔다. 환경감사제를 도입하고(1989년), 석면과 수은 사용을 전면 중단했으며(1990년, 1991년), 모든 차종에 ‘환경선언’을 시작했다(1998년). 협력업체, 비즈니스 파트너, 학계 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친환경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볼보 환경상’을 제정해 환경 보호에 이바지하고 있다. 도색 과정에서 유성 페인트 대신 환경보전 효과가 높은 수성 페인트만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돋보이는 점. 이런 조치 덕분에 투슐란다 공장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공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볼보차는 최근 이중연료(Bi-Fuel) 차량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차는 청정연료인 천연가스와 바이오가스를 주원료로, 휘발유는 비상연료로 사용하므로 연료 주입구가 두 개다. 천연가스를 사용할 경우 이산화탄소를 25% 정도 줄일 수 있으며, 바이오가스를 사용할 경우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고. 그중 바이오가스는 폐수 처리과정이나 버려진 농산물을 태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양이 많지 않은 게 흠이다. 현재 볼보차는 천연가스와 바이오가스를 절반씩 섞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대체연료 개발팀의 조나손씨는 말한다.
볼보차는 업계 최초로 자동차 생산과정에서 오존층 파괴성분인 CFC를 제거했다. 최근에는 대기 중에 있는 인체에 유해한 오존을 차내로 흡입하여 최고 75%까지 청정한 산소로 전환해주는 프림에어(Prem-Air) 시스템을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볼보차가 이처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마케팅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문만이라면 환경부문에 그토록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볼보차가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보차의 한 임원은 말한다.
볼보차의 21세기 전략은 안전하면서도 운전자가 흥미를 느끼는 차를 만드는 것이다. 볼보차가 21세기에도 세계적 명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 단계 도약할 것인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