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이명박 시장이 불교계 성토 받던 날 박근혜 대표가 직지사로 간 까닭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07-28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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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차기 주자의 대권 레이스가 후끈 달아오른 느낌이다. 요즘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사석에서 당 소속 특정 주자의 언행을 두고 직설적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차기 대권 주자들의 언행은 그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재단되기 마련이다.
    이명박 시장이 불교계 성토 받던 날 박근혜 대표가 직지사로 간 까닭

    ▲조계종 회원들이 7월 초 이명박 서울시장의 ‘봉헌’ 발언과 관련, 서울시청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br>▶지난 3월 조계사에서 108배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2004년 7월3일 토요일 오후 발표된 일기예보다. “3일 오후부터 태풍 ‘민들레’의 영향으로 5일까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400mm가 넘는 폭우가 올 것으로 예상. 경남북에 태풍주의보 예비특보. 태풍 중심기압은 985hPa(헥토파스칼), 최대풍속은 초속 25m, 남부지방으로 주말여행이나 산행시에는 기상예보에 각별히 귀기울여야….”

    악천후가 예견되었으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7월4일 서울 자택을 떠나 경북 김천시 대항면 황악산 중턱에 위치한 ‘직지사’로 향했다. 일기예보대로 많은 비가 내렸다. 절로 향하는 길에 놓인 도피안교 부근 폭포의 물도 크게 불어나 있었다.

    박 대표는 이 절 주지인 녹원 큰스님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 것이었다. 이날 직지사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추도하는 행사가 열렸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사찰로 조계종 계열인 직지사는 박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크게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원 큰스님은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절 안에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위패를 모시고 지난 25년 동안 매년 재를 올려왔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최근 알게 된 박근혜 대표가 추도재가 열리는 날에 맞춰 절을 찾은 것이다.

    비 내리는 산사에서 재를 올리며 박 대표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에 젖었다고 한다. 녹원 큰스님은 박 대표에게 “앞으로 좋은 운이 이어질 것이다. 세상을 크게 보라”고 덕담했고 박 대표는 20여 년 동안 부모에게 예를 갖춰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밝혔다. 녹원 큰스님은 태풍이 오는데도 달려온 박 대표를 대견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박 대표가 대권주자의 한 사람이기에 그의 직지사행을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직지사는 경남 양산 통도사, 부산 범어사, 대구 동화사와 함께 신도 수가 많고 영향력이 큰 영남지역 4대 사찰 중 하나. 20여년에 걸친 박 전 대통령, 직지사, 박 대표의 인연은 기독교를 믿는 박 대표를 불교계로 한 발짝 다가서게 했다는 평이다.

    이날 박 대표와 녹원 큰스님의 만남을 적극 주선한 김천 출신 임인배 의원은 의원 40여 명이 가입한 ‘한민족통일연구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 모임은 7, 8, 12월 남북한에서 행사가 예고되는 등 활동이 활발한 편인데, 임 의원은 기자에게 “2007년 대선에서 특정 주자를 선택해 힘을 모아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시장에 대해 “불교계를 향해 오기를 부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임 의원 말대로, 박 대표가 직지사를 방문하던 날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으로 불교계의 비난을 샀다. 조계종 주지 237명은 “이명박 시장의 발언은 국민을 기만한 행위이며 종교간 화합과 평화를 위해 노력해온 종교인과 국민의 염원을 저버렸다”며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7월4일 하루, 박 대표와 이 시장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미묘한 대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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