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이 알려지고 불과 몇 시간 뒤 청와대는 서둘러 ‘파병입장 불변’을 발표했다. 선뜻
- 이해되지 않는 이 조치의 배경에는 주한미군 관련 논의를 둘러싸고 청와대 내부와 한미 양국 사이에서 빚어진 마찰, 3차 6자회담에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다급함이 숨어 있었다.
- 5월말부터 7월초까지 외교안보라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외교부 본부와 NSC 상황실에는 비상이 걸렸고, 잠자리에서 뛰쳐나온 외교부 관계자들은 최영진 차관이 소집한 긴급대책회의를 통해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국방부도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관련 지휘관들을 소집하고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동이 틀 무렵 NSC는 관련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어 오전 8시에는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가 열렸다.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 보좌관들이 참석한 상임위원회의 결론은 간결했다. “김선일씨의 무사 귀환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으며, 평화와 재건을 위한 이라크 파병 정신과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이어 국방부는 NSC 상임위의 결정을 바탕으로 예정대로 파병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노무현 대통령 또한 이날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파병을 해도 아랍권이나 이라크에 적대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재건지원에 진력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이날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파병방침을 번복한다는 것은 테러세력에 굴복한다는 것이며 파병에 대한 국가적 의지와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입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추가테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피랍사건이 파병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부 입장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알려진 지 10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굳이 ‘파병입장 불변’을 강조한 까닭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공식발표문 내용은 재건지원이라는 파병의 정신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었으며 이는 ‘파병취소 요구에 굴하지 않겠다’는 식의 공세적인 표현 대신 최대한 우회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선택된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납치단체가 ‘외교적 수사’에 담긴 뉘앙스를 적극적으로 배려할 리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납치단체가 24시간의 시한을 정해놓은 상황을 감안해, 최소한의 상황진전이 있을 때까지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거나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해 공란으로 비워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보다 간접적인 표현은 불가능했을까 하는 물음도 이어진다. 과연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것일까.
“대미 외교라인의 친미주의적 외교활동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숭미주의적 외교부내 기득권 세력인 북미국 간부들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 올해 초 이른바 ‘부적절한 발언’ 파문으로 외교부가 폭풍에 휘말렸을 무렵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한 말이다. 그 사이 당의 수장이 된 신기남 의장은 7월초 워싱턴을 방문해 이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한다. “한국이 동맹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라크 파병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국민 다수의 진심은 추가파병하라는 것이다.”
불과 반년 사이에 달라진 신 의장의 ‘변신’에 대해 언론의 지적이 이어졌고, 신 의원의 홈페이지는 항의하는 네티즌의 글로 떠들썩했다. 열린우리당측은 “그러한 발언은 다분히 ‘미국용’”이며 “파병결정에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의문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신 의장의 이러한 발언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또 불과 6개월 사이에 신 의장의 ‘미국관련 발언’ 내용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공론화 연기 제안했나
청와대와 여권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사뭇 먼 길을 가야 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지난 6월14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주한미군 감축공개 한미공방 3대쟁점’ 기사다. 5월 중순 쟁점으로 떠오른 ‘주한미군 감축방안’에 대해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양국 사이에 논의가 있었는데, 이 방안의 공개를 연기하자고 제안한 측이 어디인가를 두고 한미 당국자들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보도였다.
기사에 따르면 5월28일 ‘한국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기자들에게 “미국이 난색을 표해 공론화가 미뤄졌다”고 설명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 행정부 관계자가 직접 ‘동아일보’에 전화를 걸어 “사실과 다르다”며 “오히려 한국측이 여러 경로를 통해 주한미군 감축협의 및 공론화를 2004년 4월 총선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브리핑을 진행한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비공식 브리핑 내용은 사실 그대로이며 당시 합의내용을 문서로 교환해 비망록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5월28일의 비공식 브리핑은 5월17일 백악관 NSC의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의 미 2사단 일부 이라크 차출 통보로 촉발된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둘러싸고 “참여정부의 반미성향이 미군철수를 부른다”는 한나라당측의 공격이 거세지던 시점에 이뤄졌다.
이 브리핑을 진행한 ‘한국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NSC의 이종석 사무차장. 이 차장은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는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11월 피터 페이스 당시 미 국방차관이 이준 당시 국방장관을 방문했을 때 처음 거론된 것으로, 참여정부의 출범과는 무관하다.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라는 테이블이 마련됐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2003년 6월 FOTA에서 1만2000명 수준의 감축계획이 ‘개념수준’에서 언급됐다”고 밝혔다.
이 차장은 이어서 “당시 한국측은 이에 대해 일단 2003년 10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까지 준비 기간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곧 이어 9월말 대미협의단이 출국해 10월 중 공론화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측이 완강하게 난색을 표했다”고 전했다. 협의는 중단되었고 올해 들어 이라크 상황이 악화되자 4월에야 재조정 문제를 협의하자는 의사를 전해왔다는 설명이었다.
한미 양국 사이에 벌어진 이 ‘진실게임’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정부의 상당수 관계자들은 “사실상 미국측 주장이 맞다”거나 “최소한 미국측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2003년 9월 이후 공론화 일정을 두고 미국 또한 일시적인 연기를 요청해온 일이 있었고 이후 양측의 밀고당기는 과정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를 주도적으로 관철한 것은 한국측이었다는 것이다. 우선은 이라크 파병을 조건으로 주한미군 재편을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고, 용산기지 이전문제 등 쏟아지는 현안 속에서 공개를 부담스러워한 측면이 있었다는 추론이다.
이 무렵은 2003년 6월 FOTA에서 미국이 제시한 ‘비교적 구체적인 감축방안’을 접한 노무현 대통령이, NSC 등 관계부처에 “주한미군 재배치의 불가피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급히 공론화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한 뒤였다. 그러나 NSC는 대통령에게 “미국측이 공론화 연기를 요청해 어쩔 수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게임’의 이유
이에 대해 NSC측은 초기에 우리 쪽에서 연기를 요청한 것은 ‘공론화’가 아니라 ‘협의’ 자체였고, 그나마 단기적이고 기술적인 요청에 불과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이후 우리측의 공론화 제안에 미국측이 ‘난색’을 표명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 그러나 이러한 ‘난색’이 딱 부러지는 ‘거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이와 관련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구두와 문서를 오가며 의견을 교환하는 동안 미 국방부 실무자들이 이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단서는 남았다.
그렇다면 NSC측에서 말하는 ‘비망록’ 혹은 ‘합의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외교가에서는 NSC측과 이 비망록 혹은 합의문을 최종 문서화한 것은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는 FOTA 대표단 구성원이 아니라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라고 전한다. 지난해 10월초 NSC측이 주한미군 관련 논의사항(구체적으로는 공론화 시기문제)을 허바드 대사로부터 구두 확인받아 작성했다는 것이다. 미 대사관측은 “허바드 대사가 비망록에 개입한 바 있느냐”는 ‘신동아’의 확인요청에 부인하지 않은 채 “공식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언급할만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만 답했다.
비망록을 맺은 주체가 허바드 대사라는 것은 언뜻 보면 별다른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형식적으로 보면 국가원수를 대신해 전권을 위임받은 대사와의 합의사항은 곧 국가간의 약속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우선 주한미군 감축문제는 미 국방부 소관사항이며 이를 논의하는 테이블인 FOTA의 수석대표 또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다. 국무부 소속인 주한 미 대사와 이 문제에 대해 합의문을 맺는 것은, 직제상 타당하지 못할 뿐더러 미 국방부 입장에서보면 월권에 가까운 행동이다.
NSC측 인사들은 이에 대해 롤리스 부차관보 또한 FOTA 기간 중 문제의 합의문에 반영된 논의내용에 상당부분 동의했다고 주장한다. FOTA 회의가 끝나고 롤리스 부차관보가 귀국한 이후 근거자료를 남기기 위해 허바드 대사의 확인을 받았을 뿐이라는 것. 영문으로 된 이 반 페이지짜리 문서에 양측이 공식 서명한 것은 아니지만, NSC 입장에서는 허바드 대사가 미 국방부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확인해준 것이라 생각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6월14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나타난 한미 양국의 ‘진실게임’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는 대략 답이 나온다. NSC 입장에서는 한국이 미국(허바드 대사)과 주한미군 감축 공론화 연기문제를 합의했지만,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미 국방부 실무자들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은 한국(NSC)에게 유사한 약속을 문서로 해준 적이 없고, 5월28일 비공식 브리핑에서 ‘미국측이 난색을 표해 공론화를 미뤘다’고 한 표현도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면 자신들과 상의해야 할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대사와 논의한 NSC에 대한 ‘못마땅함’으로 이어진다.
롤리스의 분노
반면 미 대사관측의 분위기도 썩 긍정적이지 못하다. 미 대사관 관계자들이 가장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부분은 6월14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해명과정에서 NSC측이 “미국과 맺은 합의문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 점이다. 상황이 어찌 됐건 비공개로 맺은 합의서의 존재를 공개함으로써 국방부가 허바드 대사를 공격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서운함이다. 외교가에서는 이 문제로 인해 허바드 대사가 본국의 질책을 받았다는 설도 떠돌았다.
미 국방부의 이러한 ‘못마땅함’에는 용산기지 이전문제에 관한 협상과정도 한몫했다는 것이 외교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용산기지 이전문제 또한 지난해 이래 롤리스 부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FOTA를 통해 논의된 ‘국방부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초 한미 양국 관계자들이 상당부분 합의에 근접했다고 발표해왔던 논의사항은 이후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부실함이 지적되어 논의가 지연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정부 내에서 빚어진 이견과 대립은 이른바 ‘외교부 파문’의 도화선이 되어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낙마하는 등 파장이 심각했다.
당초 대부분의 사안에서 미국측 입장을 수용하기로 했던 한국 국방부와 외교부, NSC 관계자들은 11월 이 문제로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는 등 상황이 복잡해지자 새로운 논점을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이에 미 국방부측은 “왜 지난번에 합의한 사항과 다르냐”며 반발했다는 것.
여기에 덧붙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즉 주한미군이 대북억제뿐 아니라 지역내 다른 분쟁에도 개입할 수 있도록 성격을 바꾸는 문제와 관련해 한국측의 태도에 미 국방부 당국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부와 미 대사관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지역적 역할과 관련해 그간 FOTA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했고 이를 문서화하기 위한 작업까지 추진했음에도, 올해 5월 이후 이 문제가 첨예한 이슈로 떠오르자 한국정부 핵심 관계자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이제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라거나 “그 동안에는 논의가 진행된 바 없다”고 언급한 것이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야기다.
한미간의 이러한 불편한 관계, 정확히 말하면 미 국방부 실무자들과 한국 NSC의 불편한 관계는 지난 6월초 열린 9차 FOTA에서 정점에 달했다. 한국측이 “주한미군 감축이 가시화되었으므로 그에 따라 새 기지의 면적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공식입장을 전달하자, 롤리스 부차관보를 비롯한 미국측 협상대표들이 “왜 이미 충분히 논의한 사안에서 말을 뒤집고 미국측에 그 책임을 전가하느냐”며 분노했다는 것이 협상과정에 관여한 양국 인사들의 전언이다.
미국측의 ‘분노’는 몇 가지 행동으로 뚜렷하게 드러났다. 9차 FOTA 마지막 날이었던 6월8일 협상이 결렬되자 이에 격렬히 항의한 롤리스 부차관보는, 예정돼 있던 공식만찬을 취소하고 대신 그 시간에 청와대와 가장 대립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매체인 ‘조선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이 인터뷰에서 롤리스 부차관보는 “사소한 문제가 정치적인 쟁점이 된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겠지만 적절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한국 국민”이라며 우리측 협상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상적인 외교관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응이었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미 행정부 관계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취재가 시작됐다’는 앞서 ‘동아일보’ 6월14일 보도 또한 미국측의 불편한 심기가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인사는 “주한미군 감축 공론화가 미국 요구로 미뤄졌다는 한국정부의 브리핑 내용이 알려진 뒤 워싱턴 행정부 인사 상당수가 분개했다”며 “한국측이 그 같은 주장을 계속할 경우 언론에 ‘사실’을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한국 실무진에 전했다”고 밝혔다.
국정상황실의 보고서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열린우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렇듯 상황이 엉켜가고 주한미군 재편문제와 관련해 NSC의 부실한 대응이 도마에 오르자 청와대에서는 이 무렵 국정상황실을 주축으로 일련의 상황을 추적하는 보고서가 작성되었다고 한다. 보고서의 핵심논점은 ‘주한미군 감축논의 연기를 제안한 주체는 과연 어디이며 그 과정은 적절했는지, 만약 결론적으로 한국측이 제안한 것이었다면 대통령에게 이를 달리 보고한 까닭은 무엇인지’로 모아졌다는 것이 여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청와대 일각에서 ‘이종석 문책론’이 대두되는 등 상황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동안 NSC측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졌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6월 초순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던 NSC 개편안, 즉 NSC 사무처를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보좌관에서 분리해 이종석 차장을 처장으로 승진시켜 전담시키기로 하는 방안이, 이 무렵 청와대 일각에서 법적인 문제점을 들어 반대하고 나섬에 따라 보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두된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감축문제 공론화를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확대하지 않기로 결론이 내려졌다는 설명이다. 6월23일로 예정된 6자회담이 임박한 상황에서 섣불리 쟁점을 키울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NSC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논의를 확대시키면 내부갈등으로 비칠 수 있어 자제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문제를 두고 여당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의문’과 NSC측의 ‘설명’이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는 셈이다.
사실 이 문제의 근간에는 NSC의 ‘북핵 올인’ 성향이 깔려있다는 것이 NSC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 NSC 자문위원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무부와 백악관 NSC에 있는 미 행정부 내 비둘기파들에게 청와대 NSC가 전력투구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국방부 매파 및 네오콘 인사들에 대한 접근에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 특히 지난해 12월 리비아가 핵포기를 선언하면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비둘기파의 입지가 강화되자 이를 통해 실마리를 풀어나가려는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올인’ 성향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분명한 것은 이 과정에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미 국방부 당국자들의 대한(對韓)인식이 크게 악화되었고, 이에 따라 양국간 군사분야의 핵심 대화채널이 한동안 삐걱거렸다는 사실이다.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5~6월 무렵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미 국방부와의 대화채널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왜 서명을 안 하는 거야”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파병문제에 관한 미국과의 현안 논의는 눈에 띄게 느슨해졌다고 국방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당초 키르쿠크로 예정돼 있던 파병지가 변경되면서 현지에 파견되어 민사심리작전을 펼치던 국정원 요원들이 대부분 철수하는 등 ‘사전정지작업’이 느슨해졌지만 NSC는 이에 대해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았다.
NSC는 4월초 한국인 7명이 억류되었다가 석방된 직후 ‘재외국민 관련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준비에 나섰고 이를 통해 상당수 교민을 철수키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파병지 변경 등 상황이 바뀐 뒤에는 별다른 추가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계속되는 지연과 변경으로 피로감이 누적되고 임박한 6자회담 준비에 몰두하다 보니 이라크 문제에 깊이 신경을 쓰지 못한 측면이 있다. 우리로서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시기 NSC는 6월23일로 예정된 베이징 6자회담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해 미국 NSC 관계자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었다. 6월2일 워싱턴을 방문한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향후 이 문제를 양국 NSC 차원에서 비공식협의를 통해 풀어나가기로 합의한다. 곧바로 개시된 양국 NSC간 협의는 6월 중순 미국이 기존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 용어를 포기하고 한국측 해법안을 상당부분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새로운 보상책 6개항’을 담은 문건이 작성되기에 이른다. 기대 이상의 상황 진전이었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진 후에도 백악관의 최종승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6자회담이 불과 닷새 앞으로 다가온 6월18일, 속이 탄 정부는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자이툰부대의 이라크 파병일정 및 파병지역을 최종 확정해 발표한다. 8월 중 선발대 및 1차 본대 2000명을 쿠르드족 자치지역인 아르빌과 인근 니나와에 파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세부 계획안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여전히 청와대가 목이 빠지도록 ‘기대했던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김선일씨의 피랍소식이 전해진 6월21일 무렵, 한국 정부의 입장은 이처럼 급박한 상태였다. 그날 새벽 긴급 소집된 NSC 상임위원회는 기사 머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의 이라크 파병 입장과 정신에는 변화 없다”는 결정사항을 발표한다. 이튿날 김선일씨의 참수소식이 전해지자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추가파병 방침에 변화가 없으리라 강력하게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간 전해지지 않았던 또 한 가지 사실은 문제의 6월21일 밤 부시 대통령이 마침내 ‘새로운 보상책 6개항 문건’에 서명했다는 점이다. 6자회담을 이틀 남겨둔 상황이었다.
1시간 반 동안의 대화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파병방침에 관한 언급을 회피하거나 이에 대해 엠바고를 요청하는 대신 직접적으로 ‘파병입장 불변’을 밝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답이 떠오른다. 그렇게 되면 우선 부시 대통령의 6개항 문건에 대한 최종승인이 좌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미 불편해질 대로 불편해진 미 국방부 실무자들과의 관계 또한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다.
다행히 이후 6자회담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고 한미 양국은 물론 북한으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7월8일 방한한 라이스 보좌관은 노대통령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6자회담 준비과정에서 NSC가 보여준 공로를 치하했다. 예정시간을 넘겨 무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례적인 대화였다. 7월12일자 ‘중앙일보’는 이 시기 NSC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기사를 1면 머리와 5면에 걸쳐 상세히 실었다.
파병방침 재확인 이후 소원했던 미 국방부와의 관계도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국방부 관계자들은 평가했다. 7월초, 용산기지와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를 협의할 10차 FOTA를 7월22일경 워싱턴에서 여는 것이 확정되면서 실무협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7월14일에는 사전준비를 위한 실무팀이 워싱턴으로 출발했다.
6월 하순 청와대 관계자들과 협의를 가진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은 기사 머리에서 설명한 것처럼 워싱턴을 방문해 고위관계자들과 면담하며 ‘미국용’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 의장은 협의과정에서 주한미군 감축 공론화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과 이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 3차 6자회담을 앞둔 양국 NSC간의 협의내용 등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의 ‘태도변화’가 무엇 때문인지, “공개할 수 없지만 파병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여당 인사들의 발언이 무슨 뜻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북핵 올인’에 대한 평가
감축시기 공론화 문제로 수세에 몰렸던 NSC의 입장 또한 6자회담의 성공과 함께 상당부분 회복됐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해 안보현안의 총괄조정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NSC의 무능과 이종석 차장의 책임론을 집요하게 거론하고 나섰지만, 참여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들의 비판은 청와대 안에서 오히려 NSC의 위상을 강화해주는 분위기다. 7월8일에는 법적논란으로 인해 잠시 보류됐던 NSC 개편안 및 이종석 차장의 처장 승진방안을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결정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정책결정이란 본래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결정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향후 북핵문제가 어떻게 풀려나가느냐에 따라 역사는 2004년 6월21일 아침 NSC 상임위원회의 결정을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핵 협상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협상용 카드는 이라크 파병밖에 없지 않느냐는 시각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른바 ‘리비아식 해결방안’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미 행정부 네오콘들의 생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핵개발에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던 리비아와 이미 핵개발에 성공했거나 혹은 근접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경우는 다르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것은 ‘북핵 올인’이 과연 옳았는지, 그 선택은 적절했는지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고스란히 청와대와 NSC가 감수해야 할 몫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북핵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어 공이 과보다 크기를 바랄 뿐이다. 이는 청와대를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악화일로를 치닫는 이라크로 날아가는 자이툰부대 병사들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김선일씨를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