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에는 그 자신 탁월한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기교가 모두 집약돼 있다. 특히 영화 ‘샤인’에서 묘사됐던 협주곡 3번의 경우 피아니스트가 두드려야 하는 음표만 3만개에 달할 만큼 난곡 중의 난곡. 그래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니스트들에게 ‘언젠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쇼팽의 재래(再來)’라 불리는 안 침머만은 라흐마니노프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침머만은 1975년 쇼팽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혜성처럼 나타난 피아니스트. 당시 콩쿠르 주최국인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폴란드인 우승자인 데다 외모까지 쇼팽과 닮았다고 해 큰 화제가 됐었다.
예민하고 섬세한 침머만의 개성은 이 음반에서도 십분 발휘돼 있다. 동시에 그의 연주는 젊고 싱싱하다. “라흐마니노프는 젊은 피아니스트를 위한 곡”이라는 침머만의 말처럼 그는 콩쿠르에 도전하던 청년 시절로 돌아간 듯 시종 약동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이 같은 생기발랄함이 이 음반의 인기에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아슈케나지 등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들의 묵직한 라흐마니노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침머만의 터치가 가볍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보스턴 심포니의 서포트는 깔끔하지만 총주에서 폭발적으로 휘몰아치는 정열이 실종된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