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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르포

강간·매춘에 병들고 수치심에 떠는 여성 홈리스들의 밑바닥 인생

“20만원만 구해줘요. 애를 떼야 하는데 돈이 없네”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강간·매춘에 병들고 수치심에 떠는 여성 홈리스들의 밑바닥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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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영등포역에서만 15명의 홈리스 여성을 만났다. 가출한 10대 소녀부터 잡다한 물건을 파는 70대 할머니, 만삭의 임산부,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정신질환증세의 여성까지 연령과 성향이 다양했다.

‘노다지’ 거리지원팀의 이범승씨는 “서울역에 비해 거친 남성들이 없고 비교적 여성이 많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홈리스 여성들이 영등포역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 가운데 젊은 여성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할머니들은 자식들로부터 버림받고 오랜 노숙생활 끝에 심각한 육체적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밤이 깊어지자 여기저기서 노숙인들이 영등포역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는 근처 쪽방촌에 머물고 있었다. 쪽방이란 성인 한 사람이 잠만 잘 수 있는 0.5∼1평의 비좁은 공간으로, 하루 5000∼8000원 또는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20만원을 내고 사는 주거공간을 말한다. 영등포, 남대문, 종로, 용산, 동대문 등 노숙인이 많은 지역에는 으레 쪽방촌이 형성돼 있다.

보통 노숙인들은 쪽방과 거리생활을 반복한다. 일당을 번 날은 쪽방에서, 공친 날은 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 서울의 경우 대략 2500명이 쪽방촌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친김에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으로 향했다. 쭉 늘어선 목조건물 안에는 성인 남성이 다리를 뻗고 눕기도 힘들 만큼 비좁은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남성들 사이로 간간이 화장을 짙게 한 중년여성과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들도 보였다.

“여성들은 거리에서 자는 것에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에 푼돈이라도 생기면 꼭 쪽방에 들어오려고 해요. 쪽방비를 내주는 남성 노숙인과 함께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요. 영등포 쪽방촌에서 사는 사람이 480여명인데, 그중 90명 정도가 여성입니다. 모두가 홈리스 여성인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쪽방에서 나가면 곧바로 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극빈층입니다. 펨프(호객꾼)나 40∼50대 ‘늙은’ 윤락녀, 자식에게 버림받은 할머니, 장애여성 등이 주를 이룹니다.” 영등포 쪽방상담소 김형옥 간사의 이야기다.



다음날 찾아간 서울역의 풍경도 영등포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벽 1시경 서울역 광장에는 노숙인 10여명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성도 2∼3명 함께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앞니가 모두 빠진 40대 초반 김금순(가명)씨는 서울역에서 생활한 지 만 2년이 넘었다고 한다.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고아원에서 자랐어. 철이 들면서 고아원을 탈출해 무조건 서울로 왔지. 그런데 나쁜 친구들을 사귀게 됐거든. 어쩌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람들 물건에 손을 대고 있더라고. 돈을 많이 번 날에는 술을 엄청 마셨어. 거의 알코올 중독이나 다름없었다니까. 잡히기도 잡혔지. ‘큰집’도 여러 번 드나들었어. 2년 전 풀려난 후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는데, 전과자 여성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더라고. 쉼터도 여러 번 들어갔었는데 갑갑하기도 하고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랑 문제를 일으켜서 다시 나왔어.”

김씨 역시 처음에는 서울역 근처 쪽방이나 만화방 등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주거지가 일정치 않아 국가기초생활보호 혜택도 받지 못하는 그가 돈을 벌 길은 전혀 없었다. 서울역 지하도 신세를 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신의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그냥 쪽방비 내주고 밥을 사주거나 2000∼3000원 용돈만 줘도 같이 자. 그래서 요즘은 쪽방에서 자는 날이 훨씬 많아졌어. 여의치 않은 날에만 거리로 나오고.”

몸뚱이가 유일한 돈벌이

실제로 서울역에서 만난 한 남성 노숙인은 “이곳에서 여성은 공유물”이라고 귀띔했다. 홈리스 여성 쉼터인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소장은 “노숙하는 홈리스 여성은 성폭력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20대 등 제가 산부인과에 인계한 여성만도 3명입니다. 이렇게 낳은 아이는 100% 입양되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홈리스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면 대개 매매춘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이곳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처럼 취급해요. 아웃리치(야간 거리상담) 상담원들이 홈리스 여성을 쉼터로 보내려 하면 남성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못 가게 막기도 하죠. 그렇다고 남성이 여성의 생활을 완전히 책임지는 것도 아니에요. 임신이라도 하면 곧바로 버리죠. 여성 혼자 뒷감당을 해야 해요.”

이렇듯 물리적, 심리적 폭력과 성폭력 등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거리로 여성들이 내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위정희 사무국장은 “가정해체, 교육기회 박탈, 가정폭력 등 불우한 가정환경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1년 노숙인쉼터에 입소해 있는 홈리스 여성들을 심층면접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홈리스 여성의 현황과 개인 특성에 관한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95% 이상이 부모 사망 또는 이혼, 아동학대, 극빈가정, 부모의 정신질환 등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고 무학(無學)이 9.9%나 되는 등 대체로 학력이 낮아 일찌감치 유흥업소 등에 뛰어든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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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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