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미혼남녀 물먹이는 결혼정보업체들

가입할 땐 신데렐라, 맞선 파트너는‘가짜 왕자’, 환불받을 땐 천덕꾸러기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7-29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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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주겠다’던 결혼정보업체들이 가입비만 챙겨 달아나고, 가짜 회원을 내보내고, 개인정보를 도용한다. 금세라도 ‘인생의 짝꿍’을 만날 것 같은 들뜬 마음에 결혼정보업체를 찾았다가 돈 잃고 상처받은 미혼 남녀들의 원성이 뜨겁다.
    미혼남녀 물먹이는 결혼정보업체들
    “가입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맞선 한번 주선하지 않았어요. 재촉할 때마다 기다리라고만 하더군요. 그러다 갑자기 회사가 사라졌습니다. 커플매니저는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버렸고. 이거 사기 맞죠?” (30대 미혼남성 홍모씨)

    “결혼정보회사가 부산의 명문 A대학 출신이라며 소개해준 여성과 교제했어요. 그런데 제 친구 중에 A대 출신이 몇 있거든요. 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 그 여성이 A대 출신이 아니란 사실이 들통났어요. 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도 거짓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창피했을지 상상이 되세요?” (대기업 임원 정모씨)

    “커플매니저가 전화를 해서 ‘명문가 여식’ 운운하며 회원가입을 권유하더군요. 이미 결혼했다고 하니까 대뜸 ‘한 여자와 평생 사실 거예요?’라고 합디다. 그게 커플매니저란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5급 공무원 김모씨)

    “아는 사람이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면서 제 사진을 한 장 달래요. 자기 회사 홈페이지에 초혼 회원으로 올려놓고 싶다고요. 그러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회원을 유치하려면 저 같은 인기 직종 남성 회원이 필요할 테니까요.”(피부과 전문의 주모씨)

    “의사 사위요? 150만원입니다”



    요즘 20∼30대의 미혼 남녀, 혹은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한번쯤 결혼정보업체로부터 회원가입 권유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정으로, 직장으로, 휴대전화로, 혹은 이메일 사서함으로 ‘당신처럼 멋진 분이 아직 혼자라는 게 안타깝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회사의 참한 회원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분홍빛 속삭임이 간질간질 스며든다. 20대 중반의 딸을 둔 유모(52)씨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집으로 전화하는 커플매니저가 있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에 있는 회사래요. 전화를 걸어서는 대뜸 ‘의사 사위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더라고요. ‘귀댁 따님 정도면 의사나 사법연수원생을 소개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니까 귀가 솔깃하죠. 150만원만 내면 해준다는데…. 딸이 싫다고 해서 계속 거절하는 데도 잊을 만하면 전화를 해 사람 마음을 흔들어놓네요.”

    미혼 남녀의 부모를 상대로 영업을 벌이던 소위 ‘마담뚜’ 형태의 맞선 주선업종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결혼정보업체라는, 좀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름으로 변모했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면 오죽 좋으랴마는,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고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법. 그래서 미혼 남녀들은 ‘스스로 머리를 깎겠다’는 진지한 각오로 결혼정보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영화배우 신은경이 열연한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감독 모지은·2002)의 여주인공 김효진. 그녀는 회원들의 고민을 성의껏 들어주고, 데이트할 때 주의할 점도 일러주고, 미리 맞선자리에 나가 남녀 회원들이 잘 만나고 있는지 확인하는 등 세심하면서도 부지런한 커플매니저이다. 그렇다면 신문광고란이나 지하철광고판에서 자주 접하는 결혼정보업체도 영화와 같을까?

    ‘아니다’라는 게 결혼정보업체를 경험한 이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각종 소비자 관련기관에는 ‘맞선 상대자의 직업을 속였다’ ‘가입만 시켜놓고 연락을 끊었다’ ‘업체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환불을 안 해주고 버틴다’ 등의 원성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에는 결혼정보업체 회원 출신(?)들이 ‘차라리 우리끼리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맺어보자’며 개설한 커뮤니티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당장 좋은 사람 만나게 해줄 것처럼 꼬드겨 신용카드를 긁게 해놓곤 연락이 없거나 엉뚱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불만을 표시하면 눈이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못 생겼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환불해달라고 하면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둘러댄다”고.

    “신데렐라가 팥쥐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100일이면 충분하죠.”

    가입 3개월 만에 환불금도 포기한 채 탈퇴했다는 28세 미혼여성의 자조 섞인 말이다.

    일단 가입비부터 챙긴다

    결혼정보업체의 이 같은 부실 서비스와 그로 인한 회원들의 피해는 무리한 회원유치 경쟁에서 비롯된다. 이들 업체의 회원유치 방식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마케팅 자료로 활용되는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것이다. 미혼 여성 김모(26)씨는 H사에서 가입상담을 받은 경험을 들려줬다.

    “자리에 앉자마자 회원가입신청서를 쓰게 해요. 신청서엔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부모 직업, 재산, 원하는 이상형 등을 쓰는 란이 있죠. 그 다음엔 ‘예쁘다’ ‘남자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내 마음에 쏙 든다’고 추켜세우면서 가입을 권유하죠. ‘회원님 정도라면 의사나 사법연수원생, 공무원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면서 여러 남자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여줍니다. ‘이 의사선생님이랑 회원님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부추기기도 하고….”

    기자는 이 업체가 김씨에게 제시한 남성 회원 중 한 명인 한의사 S씨를 만날 수 있었다. S씨는 “나는 H사 회원이 아니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만 지난해 H사 관계자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가입을 권유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는 데도 자꾸 전화를 걸어 ‘열쇠 몇 개쯤은 거뜬히 싸보낼 수 있는 집안’이라면서 맞선을 보라고 하더군요. 요즘도 가끔씩 전화가 와요. 하지만 전 제 사진을 갖다준 적이 없거든요….”

    유모(31)씨는 지난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기 수원의 P결혼정보업체 회원으로 등록된 것을 알았다. 이 업체 홈페이지에는 유씨의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 학력, 키, 몸무게까지 상세하게 공개되어 있었다.

    “친구가 전화해서 P업체에 가입했냐고 묻더라고요.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였는데, 그 회사 홈페이지에 제 사진까지 있더군요. 입사원서 낼 때 쓴 증명사진인데 그걸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어요. 회원 ID도 제가 평소 즐겨 쓰던 거였습니다.”

    어떻게든 회원을 유치해 가입비부터 챙기려는 행태는 업계에서 상위권에 드는 업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현선(가명·29)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결혼정보업체 ○○사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연말 홈쇼핑회사 경품이벤트에 응모한 적이 있는데, 이 결혼정보업체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98만원짜리 정회원권에 당첨됐다”며 200만∼300만원짜리 ‘상류층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강권한 것.

    “이 회사 상류층 회원에 가입하려면 외모, 학벌, 집안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제 얼굴도 보지 않고 가입을 권유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직원은 막무가내로 ‘조건은 충분히 만족스럽다’며 ‘회비에서 98만원을 빼줄 테니 가입하라’고 했어요. 시간이 촉박하니 오늘 내일 중으로 당장 결정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이씨는 전화를 끊은 후 경품이벤트 당첨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가 막혔다. 이씨는 “홈쇼핑회사로부터 신상 정보를 넘겨받아 출신 대학만 보고는 대충 찔러본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 회원에게 유부녀 소개

    많은 미혼 남녀가 결혼정보업체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검증된 사람’을 소개받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결혼정보업체들은 혼인여부, 학력, 직업 등 기본적인 신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맞선을 주선해 말썽을 빚고 있다.

    D사에 가입한 박모(29·여)씨는 “도무지 믿을 만한 곳이 아니어서 두 번 맞선을 보고 탈퇴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소개받은 남성은 미국 변호사. D업체는 그를 “미국에서 5위 안에 드는 명문 로스쿨을 졸업한 인재로 S그룹 계열사의 고문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 남성이 S그룹 계열사의 고문변호사는커녕 이름이 비슷한 법무법인에서 인턴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을 뿐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변호사자격증도 없었다.

    “이 남자는 ‘직업이 좋다’는 이유로 결혼정보회사에 공짜로 가입했대요. 돈 많은 집안 여자와 결혼해서 처갓집 돈으로 미국에 건너가 변호사자격증을 딸 생각이더군요. 이런 사실도 7개월이나 교제한 뒤에야 알게 됐어요.”

    한편 지난해 가을 P사에 가입한 이혼남 정모(38)씨는 유부녀를 소개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정씨는 “6개월 정도 교제한 후 청혼하자 두 달 전에 이혼했다고 하더라. 그 동안 유부녀를 소개받아 사귀어온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면 간통죄가 성립될 뻔했죠. 결혼정보회사가 호적상 기혼인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돈 내고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거잖아요.”

    결혼정보업체를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정확한 정보를 주려 하기보다는 좀더 잘나게, 좀더 폼나게 포장하려는 경향이 짙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남동생의 직업란에 ‘장사’라고 적어냈더니 ‘사업’으로 바꿔놨다” “맞선 상대의 형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고졸이더라”는 식이다.

    한 남성은 “내 취미가 ‘꽃꽂이’라고 되어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또 다른 한 여성은 “커플매니저가 ‘이 회원은 결혼 후 살 집이 마련되어 있다’고 메일을 보내와 당연히 자기 집이 있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전셋집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잦은 실수, 혹은 의도적인 ‘포장기술’이 업체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종의 ‘사기 맞선’도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결혼정보업체 본연의 서비스는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본질에서 벗어나는 영업행태를 일삼고 있는 것. 회원이 아니거나 결혼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을 소개하고, 이 과정에서 의도적인 ‘신분 속이기’도 횡행한다. 지난 6월 ‘젊은 여성이 건당 2만원을 받고 맞선에 나가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보도에서 볼 수 있듯 일부 영세한 결혼소개소들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으며 결혼정보업체 대부분이 소개해줄 회원이 없을 경우 주변 사람을 끌어모아 맞선자리에 내보낸다는 게 커플매니저들의 얘기다.

    고졸 남성 ‘만나주기’

    신모(여·29)씨는 몇 군데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제의를 받고 10여차례 ‘공짜 맞선’에 나간 경험이 있다. 2년 전 이벤트에 당첨돼 모 인터넷사이트에 미팅회원으로 등록됐는데, 이를 보고 결혼정보업체들이 연락을 해온 것.

    “물론 내가 회원이 아니라는 것을 남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죠. 가입비를 80만∼100만원이나 내고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이니까요. 내 친구들도 이런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가끔 커플매니저들이 맞선에 나가달라고 부탁하곤 해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들, 신문에 크게 광고 내는 회사들도 다들 그런 식으로 영업해요. 저야 혹시나 괜찮은 남자를 만날까 하는 마음에 나가지만 늘 ‘역시나’였어요. 공짜로 주선해주는 건데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주겠어요?”

    미혼남녀 물먹이는 결혼정보업체들

    소비자들이 겪는 갖가지 피해는 결혼정보업체의 무리한 회원 유치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영주(가명·29)씨는 “커플매니저인 친구의 부탁을 받고 맞선자리에 나간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고졸 남성 회원을 만나려는 여성 회원이 없자 친구가 그 남성을 만나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대학원 과정을 마친 정씨는 그 남성에게 “나도 고등학교까지만 다녔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친구 부탁인데 한번 만나주자’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남자, 너무 좋은 사람인 거예요. 대학만 안 나왔을 뿐이지, 헌칠한 데다 인물도 좋고 호텔에 근무하는 건실한 사람이었죠. 다음날 찾아와서 프로포즈를 하는데, 그 남자를 속인 게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어요. 내가 참 부끄러운 일을 했구나…. 많이 후회했습니다.”

    사기 맞선을 주선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업체의 무리한 회원 유치에 있다. 회사가 보유한 ‘인력 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에도 회원 가입에 열을 올리다 보니 불상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정씨는 “좀 처지는 직업을 가진 남성의 경우 일단 회원으로 가입시켜놓곤 여성 회원이 아닌 주변 사람을 맞선자리에 내보낸다”며 “심지어 커플매니저가 직접 맞선자리에 나가는 경우도 보았다”며 비정상적인 영업행태를 폭로했다.

    일부 남성들이 적당한 상대 여성이 없어서 가짜 여성 회원을 소개받는 피해를 당한다면 고소득 전문직종의 남성들은 “너무 많은 여성을 소개시켜주려 해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안과 레지던트인 이모(32)씨는 파격적인 할인금액인 20만원을 내고 S사에 가입해 계약횟수의 2∼3배에 달하는 맞선을 주선받았다. 병원장 김모(38)씨는 계약기간이 끝난 후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여성을 소개받았다. “계약이 종료되자 커플매니저가 저를 상류층 회원군에 집어넣더군요. 그리고는 주말마다 평균 2명씩 소개해줬어요. 한번은 토·일요일 이틀동안 세 명을 만난 적도 있어요.”

    “윤간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름도 못 들어본 결혼정보업체에서 전화를 걸어 맞선에 나가달라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처음에는 회원 가입을 권유하다가 나중에는 “괜찮은 여자가 있으니 한번 만나라”고 제의한다는 것.

    “타워팰리스에 산다, 아버지가 변호사다, 시집올 때 열쇠 3개 챙겨올 거다, 병원 개업해준다…. 뭐 이런 식으로 꼬드기는 거죠. 사흘 내내, 하루 두세 번씩 끈질기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진절머리나게 만들어요.”

    안과 레지던트 이씨의 말이다.

    한의사 김현준(가명·26)씨는 “회원 가입도 하지 않았는데 결혼정보회사들이 문자메시지로 소개해주겠다는 여자의 집안 환경을 알려온다”고 말한다.

    “소개팅하는 기분으로 나가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두세 번 맞선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상대 여성이 결혼에 대해 진지하더라고요. 그러니 미안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죠. 한번은 여성에게 회원이 아니라고 털어놨더니 몹시 기분나빠했어요. 그 일로 커플매니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죠. ‘다음에 나갈 때는 제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그러나 전문직 남성들은 공짜 맞선을 주선해주는 업체가 고맙기는커녕 ‘이용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전문직 남성을 소개해주겠다며 여성 회원을 유치했지만, 막상 전문직 남성 회원이 부족하니까 자신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겠냐는 것.

    병원장 김씨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소개받게 돼 계속 만나보겠다고 했는 데도, 다음주에 ‘소화’해야 할 여성 회원들의 프로필을 보내왔다”며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 교제하기보다 자기들 필요에 따라 움직여주기를 원하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상했다”고 토로했다. 안과 레지던트 이씨는 “결혼정보업체들에게 윤간당하는 기분까지 들었다”며 불쾌해했다.

    결혼정보업체의 부실 서비스로 인해 피해를 본 소비자는 환불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되는 결혼정보업체 관련 환불 분쟁 건수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로 2000년 598건에서 2003년 1786건으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실제로 환불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 정순일 소보원 서비스팀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한 표준약관에 환불 기준이 명시돼 있지만, 규정대로 환불받기는 매우 어렵다”며 “업체와 여러 차례 옥신각신해야 하는데, 소비자로서는 업체 과실을 증명할 증거자료가 없어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 일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신문고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정모씨는 “3개월째 환불금을 지급하지 않는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겠다”며 흥분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클럽 대전지사에 가입했는데 이 업체는 맞선을 두 번 주선해준 뒤 매니저가 바뀌었다는 핑계로 연락을 끊었다. 이에 정씨는 지난 2월부터 탈퇴와 환불을 거듭 요구했으나 업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씨는 “몇 차례 항의 끝에 본사로부터 입금해주겠다는 메일을 받았지만, 본사 담당자조차 연락을 두절해 결국 소송을 결심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시청 소비자센터 김록희씨는 “성혼할 때까지 맞선을 주선해주기로 한 모 업체는 ‘우리는 맞선본 회원끼리 두 번 이상 만나면 결혼을 성사시킨 것으로 본다’고 억지 논리를 펴며 환불을 거부했다”고 전한다. 환불받고 회원들끼리 몰래 결혼할 수도 있지 않냐는 논리다.

    현행 결혼정보업체 표준약관은 업체 과실로 인한 환불일 경우 가입비의 120%를, 그렇지 않은 경우 80%를 돌려주도록 되어 있다. 정순일 팀장은 “다른 업종의 경우 90%를 환불하는 데 비해 결혼정보업체는 80%만 환불하도록 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업체측에 유리한 약관인 데도 환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결혼여부, 학력, 직업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에도 업체 과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유부녀를 소개받은 정모씨도 업체와 줄다리기 끝에 결국 가입비 100%를 환불받는 선에서 합의해야 했다.

    한편 결혼정보업체 ‘듀오’는 지난해 7월 ‘컴퓨터 프로필 매칭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표준약관을 따르지 않아 회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가입비로 89만원을 받는 이 회사는 가입기간에 반비례해 환불액수를 책정한다. 최고 환불금은 27만5000원이며 가입한 지 6개월이 지나면 환불금은 0원이 된다.

    이 업체 회원들은 “서비스가 개시되는 순간 60만원이 사라지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하고 있다. 대구의 한 회원은 이러한 약관을 문제삼아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다. 한편 듀오의 형남규 상담·관리총괄부장은 “신규 회원은 프로필이 인터넷에 공개돼 다수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을 수 있는 등 가입 초기에 서비스가 집중되기 때문에 환불 규정은 납득할 만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가입에서 탈퇴 및 환불에 이르기까지 결혼정보업체 소비자들이 겪는 갖가지 피해와 불만은 앞서 지적한 대로 무리한 회원 유치에서 비롯된다. 결혼정보업체들이 이렇게 회원유치에만 주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가입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매출 구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성혼비’란 항목을 따로 두고 있지만, 실제 성혼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 한 전직 커플매니저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성혼 사례도 돈 주고 사온 결혼사진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번 가입시킨 회원은 ‘평생 자산’”

    커플매니저를 모집하는 업체 몇 곳을 찾아가 보았다. 얼마 전 개소했다는 서울 양천구의 J사는 ‘보증금 30만원, 월∼금요일 근무, 광고 무료, 교통비 10만원, 인센티브 60%’를 채용조건으로 제시했다. 즉, 일단 보증금 명목으로 30만원을 내면 사무실에 책상과 전화를 놓아주고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게재해주겠다는 것. 또 기본급은 없고 교통비 명목으로 매달 10만원을 지급하며, 회원을 유치할 경우 가입비의 60%를 준다는 내용이다. 이 업체는 “자기 밑으로 커플매니저 5명을 끌어 모으면 팀장 직함과 함께 5%의 인센티브도 준다”며 다단계 판매의 면모도 내비쳤다.

    이 같은 채용조건은 다른 정보업체들도 비슷하다. 기본급이 높을수록 인센티브가 낮고, 기본급이 낮을수록 인센티브가 높아지는 식이다. 일정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신규 회원 유치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 3년간 3∼4개 결혼정보업체에서 커플매니저로 일한 바 있는 장모(30)씨는 “가입비가 곧장 회사의 매출액, 그리고 본인의 소득과 직결되기 때문에 가입비를 받아내는 게 핵심”이라며 “대부분의 업체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회원을 유치하는 ‘아웃바운드 팀’을 따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결혼정보업체들은 어떤 방법으로 미혼 남녀의 개인정보를 확보하는 것일까. 장씨는 “아는 사람들을 통해 학교 졸업앨범을 구하기도 하고, 졸업앨범을 제작하는 인쇄소에 가서 사오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공중보건의 명단을 확보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해마다 공중보건의가 배치되는데 영업이사가 이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명기된 공중보건의 전국 배치현황을 통째로 구해와요. 사법연수생의 경우 기수별로 사진과 출신학교가 나와 있는 자료를 구해오죠.”

    때로는 회원의 개인정보가 회사 밖으로 유출되기도 한다. 한 결혼정보업체 실장은 회원들의 가입서를 보여줬는데, 가입서는 엉뚱하게도 다른 업체의 것이었다.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이곳으로 스카우트된 지 얼마 안 됐다”면서 “내가 한번 가입시킨 회원은 평생 나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약관에는 ‘개인정보는 회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제공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회원들의 개인정보가 이렇듯 이 업체 저 업체로 넘나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마구잡이식 영업으로 인해 업체가 부도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회원들이 떠안게 된다. 소비자단체들에는 ‘전화가 불통이다’ ‘사무실이 없어졌다’는 등의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고 접수된다. 정모씨는 E업체 대전지사에 가입했다. 그러나 대전지사는 정씨가 잠시 외국에 나갔다온 사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렸다. 서울 본사에서는 “독립법인이라 우리가 책임질 수 없다”고만 했다.

    2002년에는 40여명의 직원을 둔 결혼정보업체 ‘듀마르’가 갑자기 문을 닫는 바람에 수많은 회원이 집단 피해를 입는 일이 있었다. 최모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듀마르의 커플매니저를 통해 가입했다가 맞선 한번 보지 못한 채 가입비 80만원만 날렸다.

    “가입만 시켜놓고 몇 달째 연락이 없어 커플매니저에게 전화했더니 자기는 이미 회사를 관뒀다면서 회사로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표이사는 이미 잠적했고 회사도 정리되는 단계였어요. 매니저는 ‘회사에서 몇 달째 월급을 주지 않아 직원 40명과 함께 집단 퇴사했다’며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책임지고 맞선을 주선해주기로 해놓고는 전화 한 통 없이 이럴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엔 회사나 커플매니저나 다 똑같은 사기꾼이에요.”

    관련 법률로 규제해야

    그러나 결혼정보업체를 직접 관리·규제하는 법규는 전무한 형편이다. 행정적으로 등록이나 신고할 의무가 없는 자유업종이라 누구나 간판만 내걸면 결혼정보업체를 차릴 수 있다.

    때문에 관련 법규를 통해서 악덕 결혼정보업체를 감시·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소보원 정순일 서비스팀장은 “기존의 결혼상담소까지 결혼정보회사라고 간판을 내건 상황이라 전국적으로 몇 개 업체가 영업중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며 “무자격·비자격 업체들을 규제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앞서 살폈듯 대다수 결혼정보업체는 전화상담을 이용해 회원을 가입시키고 있지만, 전화권유 판매업자로 신고한 업체는 거의 없다. 현재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은 전화권유 판매업자로 하여금 공정거래위원회나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 법률을 결혼정보업체에도 적용해 위반 행위에 대해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결혼정보업체가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끌어다 이용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등을 적용해 규제해야 한다는 것.

    “덜 익은 수박을 샀다면 재수없는 셈치고 내다버리면 그만이에요. 꼭 끼는 청바지를 샀다면 조금 늘려 입으면 되는 거고요. 하지만 결혼은 수박이나 청바지 사는 것과는 다른 일이잖아요.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돈벌이의 미끼로 삼는다는 건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일 아닌가요? 결혼정보업체에 시달리면서 가장 크게 잃은 건 100만원씩 하는 가입비가 아니에요. ‘혹시나 내가 너무 못난 게 아닐까’ ‘나는 평생 사랑하는 아내를 만날 수 없는 게 아닐까’…이렇게 스스로를 부정하고 회의하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30대 미혼 남성 최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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