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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남녀 물먹이는 결혼정보업체들

가입할 땐 신데렐라, 맞선 파트너는‘가짜 왕자’, 환불받을 땐 천덕꾸러기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미혼남녀 물먹이는 결혼정보업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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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는 데도 자꾸 전화를 걸어 ‘열쇠 몇 개쯤은 거뜬히 싸보낼 수 있는 집안’이라면서 맞선을 보라고 하더군요. 요즘도 가끔씩 전화가 와요. 하지만 전 제 사진을 갖다준 적이 없거든요….”

유모(31)씨는 지난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기 수원의 P결혼정보업체 회원으로 등록된 것을 알았다. 이 업체 홈페이지에는 유씨의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 학력, 키, 몸무게까지 상세하게 공개되어 있었다.

“친구가 전화해서 P업체에 가입했냐고 묻더라고요.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였는데, 그 회사 홈페이지에 제 사진까지 있더군요. 입사원서 낼 때 쓴 증명사진인데 그걸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어요. 회원 ID도 제가 평소 즐겨 쓰던 거였습니다.”

어떻게든 회원을 유치해 가입비부터 챙기려는 행태는 업계에서 상위권에 드는 업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현선(가명·29)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결혼정보업체 ○○사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연말 홈쇼핑회사 경품이벤트에 응모한 적이 있는데, 이 결혼정보업체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98만원짜리 정회원권에 당첨됐다”며 200만∼300만원짜리 ‘상류층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강권한 것.

“이 회사 상류층 회원에 가입하려면 외모, 학벌, 집안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제 얼굴도 보지 않고 가입을 권유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직원은 막무가내로 ‘조건은 충분히 만족스럽다’며 ‘회비에서 98만원을 빼줄 테니 가입하라’고 했어요. 시간이 촉박하니 오늘 내일 중으로 당장 결정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이씨는 전화를 끊은 후 경품이벤트 당첨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가 막혔다. 이씨는 “홈쇼핑회사로부터 신상 정보를 넘겨받아 출신 대학만 보고는 대충 찔러본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남성 회원에게 유부녀 소개

많은 미혼 남녀가 결혼정보업체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검증된 사람’을 소개받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결혼정보업체들은 혼인여부, 학력, 직업 등 기본적인 신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맞선을 주선해 말썽을 빚고 있다.

D사에 가입한 박모(29·여)씨는 “도무지 믿을 만한 곳이 아니어서 두 번 맞선을 보고 탈퇴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소개받은 남성은 미국 변호사. D업체는 그를 “미국에서 5위 안에 드는 명문 로스쿨을 졸업한 인재로 S그룹 계열사의 고문변호사”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 남성이 S그룹 계열사의 고문변호사는커녕 이름이 비슷한 법무법인에서 인턴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을 뿐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변호사자격증도 없었다.

“이 남자는 ‘직업이 좋다’는 이유로 결혼정보회사에 공짜로 가입했대요. 돈 많은 집안 여자와 결혼해서 처갓집 돈으로 미국에 건너가 변호사자격증을 딸 생각이더군요. 이런 사실도 7개월이나 교제한 뒤에야 알게 됐어요.”

한편 지난해 가을 P사에 가입한 이혼남 정모(38)씨는 유부녀를 소개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정씨는 “6개월 정도 교제한 후 청혼하자 두 달 전에 이혼했다고 하더라. 그 동안 유부녀를 소개받아 사귀어온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그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면 간통죄가 성립될 뻔했죠. 결혼정보회사가 호적상 기혼인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돈 내고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거잖아요.”

결혼정보업체를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정확한 정보를 주려 하기보다는 좀더 잘나게, 좀더 폼나게 포장하려는 경향이 짙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남동생의 직업란에 ‘장사’라고 적어냈더니 ‘사업’으로 바꿔놨다” “맞선 상대의 형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고졸이더라”는 식이다.

한 남성은 “내 취미가 ‘꽃꽂이’라고 되어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또 다른 한 여성은 “커플매니저가 ‘이 회원은 결혼 후 살 집이 마련되어 있다’고 메일을 보내와 당연히 자기 집이 있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전셋집에 살고 있었다”고 했다. 이렇듯 잦은 실수, 혹은 의도적인 ‘포장기술’이 업체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종의 ‘사기 맞선’도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결혼정보업체 본연의 서비스는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본질에서 벗어나는 영업행태를 일삼고 있는 것. 회원이 아니거나 결혼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을 소개하고, 이 과정에서 의도적인 ‘신분 속이기’도 횡행한다. 지난 6월 ‘젊은 여성이 건당 2만원을 받고 맞선에 나가는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보도에서 볼 수 있듯 일부 영세한 결혼소개소들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으며 결혼정보업체 대부분이 소개해줄 회원이 없을 경우 주변 사람을 끌어모아 맞선자리에 내보낸다는 게 커플매니저들의 얘기다.

고졸 남성 ‘만나주기’

신모(여·29)씨는 몇 군데 결혼정보회사로부터 제의를 받고 10여차례 ‘공짜 맞선’에 나간 경험이 있다. 2년 전 이벤트에 당첨돼 모 인터넷사이트에 미팅회원으로 등록됐는데, 이를 보고 결혼정보업체들이 연락을 해온 것.

“물론 내가 회원이 아니라는 것을 남자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죠. 가입비를 80만∼100만원이나 내고 배우자를 찾는 사람들이니까요. 내 친구들도 이런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가끔 커플매니저들이 맞선에 나가달라고 부탁하곤 해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들, 신문에 크게 광고 내는 회사들도 다들 그런 식으로 영업해요. 저야 혹시나 괜찮은 남자를 만날까 하는 마음에 나가지만 늘 ‘역시나’였어요. 공짜로 주선해주는 건데 괜찮은 남자를 소개시켜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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