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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출범, 수렁에 빠진 이라크

치안병력 22만, 그러나 위험하면 도망가는 ‘겁쟁이’

  • 글: 정인환 한겨레 국제부 기자 inhwan@hani.co.kr

임시정부 출범, 수렁에 빠진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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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전 1년4개월, 주요전투 종료선언 1년2개월, 후세인 체포 7개월.
  • 당초 계획대로라면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할 이라크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6월28일 ‘깜짝 출범’한 알라위 총리의 임시정부는 저항세력의 공세를 막아낼 능력이 없고, 주요 재건·복구사업은 더디기만 한데…. 과연 이라크는 어디로 향하고 있으며 미국은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임시정부 출범, 수렁에 빠진 이라크
“내이름은 사담 후세인 알 마지드, 이라크공화국의 대통령이다.”비참한 몰골로 미군에 생포된 지 6개월여 만인 지난 7월1일 법정에 선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야윈 모습이었으나 자세만큼은 여전히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이날 오후 험비 무장차량과 앰뷸런스가 호위한 가운데 무장버스에 실려 자신의 옛 대통령궁 어딘가에 마련된 ‘특별재판소’에 도착한 그는, 차고 있던 수갑을 푼 뒤 6명의 간수에게 이끌려 법정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12월 미군에 생포된 뒤 바그다드공항에 위치한 미군 캠프 크로퍼에 구금돼온 후세인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악몽 같은 일들의 현실화”

이날 후세인을 맞이한 ‘특별재판소장’은 그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 아흐메드 찰라비의 조카 살렘 찰라비였다. 지난해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침공을 결행하기 전까지 영국 런던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던 살렘 찰라비는 불과 1년 사이에 이라크 사법제도의 심장부에 진출해 있었다.

야윈 얼굴에 조금은 긴장한 듯 눈을 껌벅인 것도 잠시, 후세인은 곧 특유의 손짓을 섞어가며 거침없는 말투로 젊은 판사와 법리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의 법정출두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와 CD는 바그다드 거리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자신감 있는 ‘법정 데뷔’로 몰락한 독재자의 인기도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가 뒤를 이었다. 환호성도 팡파르도 없이 뭔가에 쫓기듯 이라크의 주권이 점령당국에서 임시정부로 넘겨진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24일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육군대학(Army War College)에서 한 연설을 통해 향후 이라크 정책의 뼈대를 5가지로 제시했다. 6월말 주권이양과 치안확보 지원, 인프라 재건과 추가 국제지원 촉구, 그리고 내년 1월까지 이라크 전역에서 직접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날 연설은 지난 2월 유엔에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하고 나선 이래 부시 행정부가 밝혀온 내용을 재확인하는 한편, 격렬해지는 저항세력의 공세에 흔들리는 미국내 여론을 다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단계인 주권이양을 예정보다 이틀 앞선 6월28일 전격 단행했다.



이야드 알라위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임시정부에 주권을 넘긴 뒤에도 과도통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던 150여명의 미국인은 ‘컨설턴트’로 이름을 바꾸고 임시정부 26개 부처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들이 임시정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임시정부가 넘겨받은 ‘주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184억달러에 이르는 재건·복구 예산과 13만8000여명에 이르는 병력을 손에 쥔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존 네그로폰테 전 유엔대사가 이끌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은 1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로, 점령당국 사령부가 사용하던 바그다드 중심가의 이른바 ‘그린존’ 사무실을 물려받았다. 이들이 ‘그림자 내각’ 역할을 하리라는 건 명약관화다.

무차별적인 차량폭탄 공격과 도처에서 출몰하는 중무장 저항세력, 아랍권 위성방송 화면에 방영되는 납치와 참수의 ‘잔혹극’은 이라크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일일 드라마가 돼버린 지 오래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중동전문가 앤터니 코데스먼은 지난 5월 중순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 출석해 “주권이양 이후 60~90일 동안 치안을 안정시킨다면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개선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온갖 악몽 같은 일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산적한 과제를 안고 출범한 임기 7개월짜리 임시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단연 불안한 치안상황을 안정시키는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치안 확보 없이는 재건도 복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알라위 총리가 저항세력 소탕과 무장 민병대 해산, 대(對)테러 전담부대 창설 약속 등을 잇따라 내놓은 것에는 이런 절박한 상황인식이 깔려 있다.

이라크에 주권이 넘겨진 6월28일 미 의회 산하 일반회계청(GAO)이 상하 양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한 100여쪽 분량의 ‘이라크 재건’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의 치안현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난해 5월1일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주요전투가 끝났다고 선언한 뒤, 미국은 이라크 치안 안정화를 위해 2004년 3월까지 모두 533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미군 작전비용 521억달러와 이라크 치안병력 훈련·유지비용 12억달러가 포함된다. 하지만 이라크 치안상황은 6월부터 눈에 띄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미군을 포함한 점령당국 및 그 협조세력에 대한 공세가 날로 격화돼 10~11월을 지나면서 저항의 횟수와 강도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올 4~5월에 정점에 이르렀다.

모든 외국인은 잠재적 표적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8월7일 이라크 주재 요르단대사관 폭탄공격에 이어 같은 달 19일에는 바그다드 중심가에 위치한 유엔 이라크대표부가 폭탄공격을 받았고, 29일엔 시아파 지도자 알 하킴이 암살되는 등 8월 한달 동안 이라크 전역이 피로 물들었다. 9월 들어서는 전혀 새로운 단계의 저항이 시작됐다. 모든 국제기구와 외국인 사업가, 점령당국에 협력하는 이라크인이 저항세력의 잠재적 표적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0월과 11월에는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 직원과 민간 구호요원, 재건공사 수주를 위해 입국한 외국 기업인에 대한 공격이 급격히 늘었다. 이런 현상은 올해 4월과 5월 사이에 고스란히 재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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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인환 한겨레 국제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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