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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북한 핵심 관료 육필수기 3탄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과 ‘6군단 사건’

KGB 비밀문건 들고 주석궁 찾은 김정일, “이젠 내가 군을 쥘 때가 됐습니다”

  •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전 북한 핵심 관료 육필수기 3탄 ‘프룬제 아카데미아 사건’과 ‘6군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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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산 혁명열사릉의 밤

이 날 대회가 끝난 후 김일성은 자정이 넘은 시각에 금수산의사당 의례국장 전희정과 함께 조용히 대성산 혁명열사릉을 찾았다. 대성산 혁명열사릉이란 항일무장투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의 유골이 묻힌 북한 최고의 열사릉으로서, 터는 물론 거기에 안장할 사람들까지 김일성이 직접 선택한 곳이다. 그런 까닭에 김일성은 금수산 주석궁 자기 침실에 포대경을 설치하고 외로울 때마다 열사릉에 있는 반신상들을 가까이 당겨 보는 것을 말년의 최고 취미로 삼았다. 자기가 죽으면 반드시 시신을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안치하라고 말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적이 거의 끊긴 새벽에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올라 전우들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김일성은 대회장에서 김정일 추대를 열렬히 축하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이마에 주름이 깊은 힘없는 노인의 얼굴이었다.

김일성 사후 당 선전선동부는 전국에 배포한 강연자료에서 김일성이 1991년 12월25일 새벽 대성산 혁명열사릉을 찾은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강연자료는 “이 날 김일성 수령이 김정숙 반신상을 찾아 김정일 동지께서 드디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고 이야기하시며 자신의 인생총화를 했다”고 표현했다. 조선의 앞날을 김정일에게 모두 맡긴 데 대한 기쁨과 긍지를 김정숙과의 추억 속에서 더 진하게 체험했다고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그날의 김일성은 어두운 얼굴로 전우들의 반신상을 하나하나 찾으며 권력으로 이어온 자기의 지난날을 회고했다. 그는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열사릉에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권력을 쟁취하기까지의 반성과 교훈, 또한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연을, 김정일에게 권력을 깡그리 내놓은 그 시점에 쏟아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한 김일성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의례국장 전희정은 뒤에서 김일성 대신 눈물을 흘렸다.



김일성은 사실 그동안 당 조직비서이던 김정일의 당 사업 전횡을 지켜보며 자기 숨이 붙어 있는 한 김정일에게 공식직함을 절대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간부들 앞에서 김평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편집자)에 대한 인간적, 사업적 평가를 자주 함으로써 권력층 내부에서 김평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간부들 사이에서 김평일이 다시 등장할 것이라는 억측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김평일에 대한 감시는 더 심해졌고, 김일성 자신도 그 어느 때보다 더 고립되었다는 것을 의식했다.

이러한 일화도 있다. 1985년 소련 군사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전화를 걸어 대표단의 활동사항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사소한 문제를 물어보았다.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김정일은 즉시 조직부에 전화를 걸어 자기에게 올라왔던 일보 내용을 어떻게 김일성이 알 수 있느냐고 화를 내며 당장 확인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KGB의 포섭자 명단

조직부가 추적해보니 TV를 통해 소련 군사대표단 방북일정을 파악하던 김일성이 하도 궁금해 금수산의사당 군사무관 대장인 김두남에게 관련내용을 좀 알아보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김두남은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국장 김학산에게 전화로 문의한 내용을 김일성에게 보고했다. 김두남은 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의 동생으로 오랫동안 김일성을 보좌한 군사고문이다.

김정일은 조직부의 보고를 받자 조직부 검열4과를 발동해 김두남의 당 생활을 검열하게 하고 6개월 동안 사업권한을 박탈했다. 이렇듯 김정일의 독단정치는 횡포에 가까웠고, 김일성은 중요 사안마저 결과보고서를 받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면 김일성이 직접 나서서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추대를 발표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 동기는 무엇인가. 1991년 중반, 김정일은 직접 보고서를 하나 들고 금수산의사당을 찾았다. 문건을 받아본 김일성은 순간 아연실색했다. 보고서에는 최근 인민군 무력부 내에서 쿠데타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조직화하고 있는 반정부 동향이 담겨 있었다. 김일성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반정부 쿠데타의 조직구성원이 미국이나 한국이 아니라 친(親) 소련계 인사들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고서는 조작된 내용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북한이 처음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당시 붕괴 직전에 처한 사회주의 소련에서는 개혁·개방 속도가 빨라지자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요원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들은 다양한 정보와 예리한 판단력으로 사회주의 해체가 시간문제라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직감했던 것이다.

하여 KGB 내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밀거래를 하는 요원이 많아졌으며 정보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사실상 소련의 붕괴는 이 거대한 국가를 거머쥐고 있던 국가안보위원회의 해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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