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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피습사건 미스터리

“한나라당 증오해 찔렀다”? 사건 직전까지 범인 지충호의 관심은 오직 ‘돈’이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박근혜 피습사건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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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맡은 김윤권 부장판사는 언론 브리핑에서 지씨의 ‘지능적 범죄 가능성’에 대해 “피고인(지씨)이 사실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3시간40분 만에 이택순 경찰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지충호씨는 술에 취했다”고 발표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는 질문이 나오자 이 청장은 “술을 어느 정도 마신 상태”라며 재차 강조해 ‘취객의 우발적 범행’으로 몰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음주측정 결과 지씨는 술을 마시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경찰이 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지충호씨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병리상태였나. 이는 이번 테러 사건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는 수사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더 구체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그는 왜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대표를 표적으로 삼았을까. 그의 주장대로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 때문에 단독으로 범행한 것일까.

현재까지 합수부가 “확인된 사실 없다” “본인이 진술 안 한다”는 표현과 함께 뜨문뜨문 내놓고 있는 수사 결과만으로는 답을 찾기 힘들다. 재판의 쟁점도 검찰 기소내용인 지씨 단독범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인데다, 법률과 증거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사법기관으로선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창촌과 도살장



지충호씨의 지인들을 상대로 지씨의 성장배경 및 범행 직전 행적을 추적해봤다. 물론 주변인 증언만으로 테러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 지씨를 둘러싼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범행동기를 파악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사회부적응자’의 ‘충동적 범행’인지, 아니면 금전 문제 등 ‘현실적 이유’가 범행동기인지. 또한 배후 의혹이 있다면 ‘공범’의 단계, 단순히 ‘부추긴 정도’ 등으로 세분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지씨의 40년 지기 김모씨는 1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했다. 지씨의 주 생활공간은 교도소 및 청송감호소 복역기간을 제외하면 어릴 적 터전인 인천시 학익동이었다. 같은 동네 친구인 김씨는 지씨의 심리상태와 속사정을 꿰고 있었다.

-지충호씨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나.

“지씨는 고아여서 고향이 어딘지 본인도 모를 것이다. 지씨를 입양해 키운 부모는 원래 살던 곳이 도시계획으로 정비되자 이곳으로 이사 왔다. 어릴 적 지씨가 살던 집은 집창촌 한복판에 있었다. 지씨의 부모는 성매매 여성 등을 상대로 구멍가게, 칼국수집을 했다. 지씨는 ‘창녀촌에 사는 놈’이라며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다. 지씨 집에서 불과 10m도 안 떨어진 곳엔 소·돼지 도살장이 있었다. 잔인하게 도축하는 장면, 가축이 내지르는 소리를 밤낮 곁에 끼고 살아야 했다. 밤에도 돼지를 잡았으니까.”

-주거 환경이 지씨의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줬을 듯한데.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사는 곳 때문에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했으니…. 어린 지씨로선 억울했을 것이다. 그의 부모는 그를 끔찍이 아꼈다. 과잉보호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지씨가 외동아들인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지씨는 더 비뚤어졌으며 폭력적 성향도 나타냈다.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뒀다.”

-지씨가 표출한 폭력 수위는 어느 정도였나.

“가출을 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상가에서 사소한 시비로 선배나 나이 든 사람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욱하는 성격에 소란을 피우는 정도였지, 크게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지씨 부모는 ‘가정을 가지면 안정을 찾겠지’라는 생각에 지씨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지씨는 18년4개월 간 옥살이를 했다. 29세이던 1985년 5월 남편이 고위공무원인 한 여성을 폭행하고 1050만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돼 징역4년을 선고받았다. 1984년 5월 지씨가 면도칼로 이 여성의 얼굴을 그어 전치2주의 상처를 입힌 것도 죄목에 포함됐다. 1989년 3월 출소한 지씨는 2개월 뒤 다시 같은 여성과 남편을 찾아가 협박해 395만원을 받은 혐의로 1991년 재구속됐다. 이 일로 지씨는 징역7년을 살았으며, 형기를 마친 뒤엔 사회보호법(1980년 12월18일 제정)에 따라 청송감호소에서 7년4개월간 보호감호 생활을 했다. 2005년 8월 가출소했다.

이처럼 오랜 수형생활은 단지 한 여성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씨는 “그 여성을 좋아한 것뿐인데 7년 보호감호처분까지 받다니 억울하다”고 주변에 말해왔다. 그러나 지씨의 범행은 재판을 통해 입증됐으며 ‘경합범 가중처벌’과 ‘누범 가중처벌’에 따라 형량이 결정됐다. 재판이 외압 등으로 지씨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진 않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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