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처럼’은 신상훈(申相勳·58) 신한은행장의 좌우명이다. 그는 “두산주류가 로열티도 내지 않고 내 브랜드를 가져갔어요”라며 웃는다. 신 행장은 사원들에게 임명장을 줄 때도 ‘처음처럼’을 강조한다. 인사발령을 받는 사람들은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초심(初心)은 퇴색하고 가슴 뛰던 처음의 기억은 먼지 낀 과거로 편입된다.
은행의 연륜은 그저 숫자일 뿐이다. 신한은행은 1982년 재일교포들이 제일투자금융을 모체로 설립한 은행이다. 지난 4월, 109년 역사를 지닌 한국 최고(最古)의 조흥은행이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신한은행에 흡수되며 간판을 내렸다. 통합 신한은행은 총자산 163조원, 직원 수 1만6000명으로 명실상부한 2위 은행이 됐다.
필자는 최근 매달 10만원씩 붓는 적금을 들었다. ‘신동아’ 인터뷰 때마다 동행하는 속기사가 “오빠가 신한은행 지점장인데 실적을 올려야 한다”며 10만원짜리 한 계좌만 가입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고 적금을 든 것은 평생 처음이다. 필자가 속기사를 소개하며 적금 든 이야기를 꺼내자 신 행장은 “아, 100만원짜리를 들었어야죠”라고 한술 더 떴다.
신 행장은 전형적인 은행원의 이미지를 풍긴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구석이 없고 얼굴은 방금 면도를 끝내고 로션을 바른 사람처럼 말끔하다. 시종 단정한 자세로 앉아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목소리가 낮아 녹음이 제대로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표현에 수식이나 과장이 드물었다.
-청계천 옹벽에 모사된 도자(陶瓷) 벽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班次圖)가 청계천의 새로운 명물이 됐습니다. 지나다니다 보면 지금도 조흥은행 로고가 그대로 붙어 있더군요.
“서울대학교에도 발전기금을 내면서 CHB관(CHB는 조흥은행의 영문 머리글자)을 지어주었죠. CI(Corporate Identity) 기준으로 보면 바꿔야 하지만 지금 하기에는 조금 일러요. 조흥은행 출신 직원들이 조흥의 역사에 커다란 애착을 갖고 있거든요. 바로 바꾸면 반발이 생길 수 있죠.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을 때 거론해야지요.”
진정한 통합은 노노(勞勞)통합부터
-신한은행의 문화는 전투적이고 현장 중심적이며 서비스 마인드가 철저한 데 비해 조흥은행은 역사가 길다 보니 전통과 권위에 안주하고 관료주의적 분위기가 있는데다 현장 마인드가 뒤진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두 은행 차이를 조사해보니 300가지가 넘었다면서요?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이 합쳐져 이름은 서울신탁은행이 됐지만 한 지붕 두 가족이 그대로 가다가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직후 하나은행에 흡수통합됐지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은 ‘화학적’ 통합이 잘 되고 있습니까.
“2003년 9월 조흥은행이 신한금융지주회사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 ‘선(先)통합, 후(後)합병’이라는 독특한 모델을 추구했습니다. 통합 신한은행이 출범하기 전 2년6개월의 동거 기간에 두 은행직원들 간의 심정적 거리가 상당히 좁혀졌습니다.
동양 사회에선 조직과 조직이 합쳐지는 게 쉽지 않아요. 일본 다이이치간교(第一勸業)는 통합 뒤 40년 이상 인사부의 부장, 차장을 다이이치와 간교 은행 출신이 나누어 맡았죠. 그대로 가다가 1999년 다이이치간교·후지(富士)·니혼고교(日本興業) 3개 은행이 통합해 미즈호금융그룹으로 출범했습니다. 우리도 노력을 안 하면 상당히 오래갈 거 같아요. 지난 2년 반 동안 감성통합 훈련을 했지만 명실상부하게 하나의 은행으로 통합되려면 노노(勞勞)통합이 돼야죠. 노조가 두 개로 나뉘어 있으면 위에서 통합을 아무리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