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국 무속 연구 30년, 로렐 켄덜 美 컬럼비아대 교수

“탐욕스러운 한국 귀신, 대접받기 좋아하는 기득권층 닮았죠”

  •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한국 무속 연구 30년, 로렐 켄덜 美 컬럼비아대 교수

2/6
켄덜 교수는 “음악, 색상, 만신과 의뢰인이 주고받는 대화 같은, 굿판에서 벌어지는 행위 자체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그것을 여자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파고들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여자이기에 잘 연구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평화봉사단원 2년 임기를 마치고도 1년을 더 한국에 머물고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켄덜 교수가 다시 한국을 찾은 건 1976년. ‘한국 여성의 삶과 무속신앙’을 박사논문 주제로 정한 그는 경기도 양주의 한 농촌 마을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 마을엔 두 명의 여자 무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1년 반 동안 머물며 굿판을 죄다 쫓아다니고, 무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1년6개월 동안 농촌에서 생활한 켄덜 교수는 서울로 거처를 옮겨 6개월을 더 연구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논문을 완성했다.

“유교에서 여자와 남자를 내외로 구분하는데, 그건 내조와 외조라는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녀요. 남자는 체면을 중시해서 밖에 나가 좋은 인상을 주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에 관심이 있지만, 여자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 예를 들어 부부 사이가 안 좋거나 집에 도둑이 들거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거나 하는 것들을 책임지죠. 안주인은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무당집을 찾아갔어요. 남녀가 유별하니 자연스럽게 여자가 무당이 된 거예요. 여자끼리의 관계가 더 편하니까요. 안주인이 만신에게 집안 문제를 털어놓으면 만신은 그 집안의 조상들에서 문제를 찾아요. 결국은 신의 역사, 집안의 역사, 지금의 문제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장의 불확실성과 신령

-이번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 강의는 한국 무속과 한국사회의 현대화를 여러 각도로 조명한 것들입니다. 언제부터 관심이 여성에서 그쪽으로 옮겨졌나요.



“1980년대에 한국 결혼식의 현대화를 연구했어요. ‘한국에서의 결혼(Getting Married in Korea)’이라는 제목의 책도 냈고요. 그러면서도 친한 무당들과 계속 연락했는데, 1980년대 말부터 무당들이 ‘굿이 자꾸 상업화한다’ ‘손님들이 돈 욕심 너무 많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1990년대부터 현대의 굿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연구 주제가 굿과 여성에서 여성의 결혼과 현대화로 이동하고, 다시 현대화와 굿으로 넘어간 거죠.”

요즘 같은 시대에 신령의 존재를 믿는 건 어리석어 보인다. 실제 시장이 주도하는 합리성에 편입되면 신령과 무당을 추종하는 이들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굿을 의뢰한 사람들의 동기와 배경을 조사하며 현대 굿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켄덜 교수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도가니에서 무속이 어떻게 순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994년 여름에 무작위로 18개의 굿과 작은 치성을 관찰했어요. 의뢰인들은 작은 공장 사장, 버섯 수입업자, 레스토랑 운영자, 작은 술집 사장, 전기공 등 저마다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18명 중 15명이 점포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이들이 후원하는 굿은 대부분 사업과 관련된 걱정 때문이었어요. 호기심 많은 인류학자들이 흔히 얘기하듯 복이나 재수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위태로운 신용거래가 붕괴되어 일어나는 끔찍한 재정적자나 사업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로 하여금 굿당을 찾도록 만들었죠. 의뢰인들은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과 불안정성을 ‘잘 대접하면 행운을 주지만 뜻을 거스르면 고통을 주는’ 신령들과 동일시한 거예요.”

주목할 만한 것은 무속인을 찾는 고객 대부분이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 즉 ‘중산층’이었다는 점이다. 켄덜 교수는 “민중문화론이 무속 행위를 한국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본 집단의 관심사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했지만, 내가 조사한 사례에서는 단 세 명의 후원자만이 프롤레타리아라는 프로필에 들어맞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가 굿당에서 전혀 만날 수 없었던 부류가 있는데, 기업에서 일하는 월급쟁이와 공무원 가정 구성원이다.

“자영업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자신들이 속해 있는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요. 무당과 이들의 만남은 위험을 내재한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거죠. 이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시장이 위험 투성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굿당을 찾는 거예요. 반면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자영업자에 비해 위험에 덜 노출되어 있고 안정적이어서 굿을 후원하는 일이 드물죠.”

2/6
구미화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hkoo@donga.com
목록 닫기

한국 무속 연구 30년, 로렐 켄덜 美 컬럼비아대 교수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