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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념논쟁의 발전적 결실을 위하여

거시적 비전, 구체적 대안으로 공공의 장에서 맞서자

  • 김호기 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이념논쟁의 발전적 결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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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를 제외하면 이런 내용은 서구사회의 신자유주의와 유사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는 신자유주의 모델로 빠르게 재편됐으며, 국가의 역할을 특권화하는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은 유효성을 상실했다. 경제정책의 초점도 국가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원리가 확대되는 가운데 국가가 시장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놓여 있었다. ‘세계화의 충격’이라 할 수 있는 대외적 조건의 변화가 우파에게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다.

그렇다면 뉴라이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뉴라이트를 자임하는 그룹들은 뉴라이트가 구(舊)우파, 즉 올드라이트(Old Right)와 구별되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올드라이트가 사실상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고수하려 했던 것과 달리 뉴라이트는 변화를 수용하며 기회의 균등이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수적 처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뉴라이트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사회를 재편하되 그 부작용을 최소한의 국가 개입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의 한국적 버전이라 볼 수 있다. 뉴라이트와 올드라이트가 공통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대북(對北)정책 영역이다. 뉴라이트의 대북정책은 남북한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의 민주화를 강조하는데, 이는 올드라이트가 제시한 상호주의의 연속선상에 있다.

한국 좌파의 특수성

다른 한편에서는 뉴라이트에 대한 좌파의 비판이 꾸준히 이어졌다. 좌파 진영의 다수는 뉴라이트에 대해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일각에서는 뉴라이트가 새로운 내용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혹평했다. 이들에 따르면, 냉전 반공주의를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로,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독재를 시장이 선도하는 성장제일주의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뉴라이트의 ‘새로움’이란 고작 올드라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뉴라이트가 자신의 이념으로 내건 ‘공동체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데, 이 개념은 시장의 한계를 공동체적 연대로 감싼다기보다 오히려 시장의 경쟁을 특권화하고 권위주의 통치로 돌아가겠다는 모순적인 혼합물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일반적으로 좌파가 사회개혁에 집중한다면 우파는 사회통합에 무게 중심을 둔다. 오늘날 사회통합의 핵심은 세계화를 적극 활용하되 사회적 양극화를 제어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뉴라이트에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넘어서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을 생산적으로 결합시키는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추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냉전적 대외전략을 넘어서 평화공존을 새롭게 모색하는 것도 뉴라이트에게 부여된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2005년에 뉴라이트 담론(談論)이 각광을 받았다면, 올해 들어서는 뉴레프트가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뉴레프트에 대한 관심이 좌파 진영이 아니라 오히려 우파 진영에서 높았다는 점이다. 우파 진영에서 뉴레프트를 반기는 이유는 뉴라이트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지난해 등장한 뉴라이트에 대한 좌파 진영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데, 뉴레프트가 등장했으니 뉴라이트와 뉴레프트의 새로운 대립 구도를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뉴레프트의 출범은 뉴라이트의 등장이라는 외적 조건보다는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좌파의 자기비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좌파 지식인사회 내에서는 일부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 일부 시민단체의 근본주의와 비타협주의가 좌파의 문제점으로 지목되기 시작했으며, 뉴레프트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좌파 프로그램의 갱신을 모색하고자 했다. ‘지속가능한 진보’ ‘대안이 있는 진보’를 추구하는 뉴레프트 내에는 강조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좋은정책포럼이 국가 전반의 정책대안을 모색한다면, 희망제작소는 일단 지방자치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세교연구소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만남에 주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정책 마련

좌파를 갱신하려는 이런 흐름들에 대해 좌파 진영은 이들을 뉴레프트라고 명명하는 데 망설이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 좌파의 특수성이 놓여 있다. 서구식 분류에 따라 ‘뉴’와 ‘올드’를 구분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을 중시하는 전통적 좌파와 신사회운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좌파가 공존해왔다. 경제가 압축성장을 이뤄왔듯이 냉전 분단체제 아래에서 불허된 진보 이념 또한 압축 발전해온 셈이다.

구체적으로 전통적 좌파와 새로운 좌파의 대표 격인 민주노총과 환경운동연합이 민주화 과정에서 연대활동을 활발히 벌여온 것은 한국적 좌파의 특수성이며, 이런 전후 맥락이 최근 등장한 포럼 및 연구소들을 뉴레프트라 이름짓는 데 진보 진영이 망설이는 이유라 할 수 있다. 뉴레프트의 등장이 기존 좌파 진영의 성취를 낡은 의미의 올드레프트(Old Left)로 자리매김하는, 다시 말해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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