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짚모자를 뒤집어놓은 형상의 벙커. 턱이 높고 러프가 심하다.
이튿날은 버스를 타고 광활한 평야를 가로질러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거쳐 버섯바위와 지하 도시로 유명한 카파도키아와 온천지대로 널리 알려진 파묵칼레를 관광하고 지중해 최대 휴양도시인 안탈리아의 해안절벽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터키의 소아시아 반도 남서쪽 지중해를 바라보는 인구 60만의 소도시 안탈리아는 해양성 기후로 인해 유럽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겨울철에는 유럽 전역에서 매일 다섯 대 이상의 전세기가 관광객을 싣고 와 도시 전체가 유럽인 일색이 된다.
잔잔한 안탈리아 앞바다의 해안선을 따라 수백개의 세계 유명 호텔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며 이 도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호텔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지중해는 파도도 없이 고요하다. 가끔 소형 유람선이 바다 위에 긴 꼬리 같은 흔적을 남기고 항해할 뿐이다.
낙하지점에 숨은 벙커
해가 뜨기 무섭게 터키 제일의 골프장인 안탈리아 골프장(Antalya Golf Club)으로 향했다.
소나무숲 속에 자리잡은 안탈리아 골프장에 도착해 150달러에 해당하는 그린피를 유로화로 지급했다. 터키는 요즘 유로화가 강세여서 달러 대신 유로화를 받고 있다고 한다. 클럽하우스의 모든 시설은 미국의 초일류호텔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급스러웠으며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캐디를 배정받고 독일관광객 3명과 함께 라운드를 시작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얼굴의 캐디는 프로골퍼 지망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한국으로 골프 유학을 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언니들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안탈리아 골프장은 총 36홀로서 술탄코스(Sultan Course) 18홀과 파샤코스(Pasha Course) 18홀이 있다. 파샤코스는 워터해저드가 비교적 적은 전장 5731m의 평탄한 코스이고, 술탄코스는 파72에 6411m의 긴 전장에 거의 모든 홀이 워터해저드로 중무장한 데다 페어웨이 양편엔 소나무숲이 이어져 있다. 2003년에 데이비드 존스가 설계한 난이도 A급 코스로 해마다 9월에 터키 오픈이 열린다.
술탄코스는 첫 홀에서 넓은 녹색 평원 위에 펄럭이는 깃발만 보면 쉬운 코스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얕보았다가는 큰코다친다. 이렇게 난도가 높은 코스에서는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로 티샷을 하는 것이 좋다. 거리를 내려고 힘을 주면 공은 슬라이스나 훅이 나 숲 쪽으로 가고, 이렇게 되면 장애물에 가려 그린을 직접 공략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9m 파3인 6번 홀 또한 그린 주변이 소나무숲인데다 연못이 있어 조금만 빗나가면 스리온도 어려워진다. 처음부터 150m 지점에 레이 업 티샷을 하고 거기에서 숏 어프로치를 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처럼 매홀 레귤레이션 온을 시도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쉽다. 420m인 4번 홀, 393m인 15번 홀, 404m인 18번 홀은 아마추어 골퍼들은 투온은커녕 스리온 하기도 어려운 긴 코스다.
술탄코스의 하이라이트는 433m 파5의 12번 홀이다. 세컨드 샷 낙하지점에 보이지 않게 모자 벙커가 설치되어 있어 공이 이곳에 떨어지면 곤욕을 치러야 한다. 밀짚모자를 뒤집어놓은 형상의 이 벙커는 턱이 높고 러프가 심해 로프트가 큰 피칭이나 샌드웨지 클럽으로 공을 정확하게 타격해 페어웨이로 올려놓지 않으면 3∼4타 추가는 다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