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골 다랑논. 조상의 숨결이 배어 있기에 아름다운 게 아닐까.
벼농사를 짓다 보면 문득 ‘내 몸 안의 유전자’를 느끼곤 한다. 우리 몸은 지난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 자체라는 말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벼농사는 내 안의 유전자로 각인된 것 같다. 벼를 키우고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벼와 내가 한몸이 되는 걸 종종 느낀다.
城主의 논두렁 사열식
벼농사는 물이 기본이다. 산골 다랑논은 물 빠짐이 심하다. 논두렁이 높은데다가 돌이 많으니 물이 아래로 곧잘 빠져나간다. 이런 논에 물을 가두기 위해서는 로터리를 쳐 논흙을 곤죽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물이 땅 속으로 덜 샌다. 그 다음엔 논두렁 바르기를 한다. 논물이 가장 많이 새는 부분이 논두렁이다. 두더지나 땅강아지 구멍은 물론, 사람 눈에 안 보이는 조그만 구멍이 논두렁에 많은데 이를 곤죽이 된 흙으로 다시 바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논에 물을 가두고 나면 내가 ‘성주(城主)’가 된 것 같다. 물을 가둔 논에는 온갖 생명이 자란다. 하루하루 커가는 올망졸망 올챙이. 물위에서 뱅뱅 맴도는 물매암이. 숨을 쉬기 위해 물위로 꽁무니를 내밀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물방개. 물위를 사뿐사뿐 뛰어다니는 소금쟁이. 자세히 보면 이것말고도 많다. 동작은 느리지만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물장군. 이놈은 정말 ‘물의 장군’이라고 할 만큼 힘이 세다. 게다가 날카로운 앞다리에 뾰족한 주둥이를 갖고 있어 당할 자가 없다. 그밖에 사람이 싫어하는 거머리, 벼를 갉아먹는 물바구미. 이런저런 생명이 논에서 고물고물 움직인다.
내가 이들을 모두 다스릴 만한 힘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내 논에서 자라니 내가 주인이다. 논에 물을 가두지 않으면 모두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신세들이다. 그러니 적어도 내 논에서만은 내가 ‘대장’인 게 분명하다. 더구나 우리 동네는 산골이라 논두렁이 높다. 어떤 논은 논바닥 폭이랑 논두렁 폭이 거의 같을 정도다. 그러니 이 논두렁에 서 있다 보면 성루(城壘)에 올라 있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나는 성주가 된다.
모를 심은 뒤에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논을 둘러본다. 이 일이 내게는 하나의 의식이다. 이름하여 ‘논두렁 사열식’. 논두렁에 들어서면 벼가 가지런히 서 있다. 앞을 보고 걸음을 옮기다가 고개 돌려 벼를 보면 누군가 구령을 붙이는 것 같다. “우로 봐!” 벼가 나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논을 사열하며 벼가 잘 자라는지, 논두렁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살핀다.
우리 논의 벼는 사람 손으로 심었기에 자로 잰 듯 반듯하진 않다. 그래도 그 나름으로 보는 맛이 있다. 모를 심은 사람마다 그 모습이 남아 있다고 할까. 모내기를 함께 한 이웃과 식구 얼굴이 벼와 겹쳐 떠오른다.
한곳에서 마감하는 일생
논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또 어떤가. 해가 떠오를 때 논두렁을 걷다 보면 어떨 때는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해가 뜨면서 물안개가 논 위로 피어나고 그 물안개가 햇살과 만나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밭농사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논에서 보는 일몰도 바다에서 보는 일몰과는 다른 느낌이다. 고맙게도 이 해는 논두렁 사열 내내 나를 따라온다. 나를 경호하는 것 같다. 바람이라도 불면 찰랑찰랑 물결 따라 해가 일렁일렁 춤을 춘다. 내 몸도 출렁이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논두렁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조차 깜박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