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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논술 ⑨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사계절에 담은 인생 이야기

  • 윤문원 이지딥 논술연구소장 mwyoon21@hanmail.net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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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불현듯 세상에 나와 기억에도 없는 유아기를 보내고, 자아의 개념을 깨닫고 그 자아를 부정하면서 반항기를 겪고, 세상이 싫어져 방황하다 주위를 둘러본 끝에 사회에 순응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건설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따금 ‘답습’이라는 단어가 치밀어오를 때가 있다. 살아가느냐, 살아지느냐. 멀찍이 떨어져 자신의 삶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진정한 여행자가 되려면, 그 순간 자신을 버려야 한다. 자기중심의 우주에서 자신을 빼내야 한다. 다른 사람도 나름의 삶이 있음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발견할 곳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도덕적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갈등과 슬픔을 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내면은 복합적이다. 순수함 속에 잔인함이 있고 욕망 속에 집착이 있고, 살의 속에 고통이 있고, 번뇌 속에 깨달음을 얻는 해탈(解脫)이 있다.

인간은 이처럼 다양한 속성을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현한다. 자신이 몸 기대어 살고 있는 자연과 타인을 사랑하면서도 해치게 되는 역설은 인간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다. 사랑을 핑계로 대상에 대한 독점과 지배를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삶’은 철학의 기본적인 주제로서 모든 대학 입시에 자주 출제되는 논제이다. 그러므로 삶에 대해 깊이 사유하면서 자신의 관(觀)을 세워야 한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인상파 김기덕 감독이 삶의 희로애락을 사계절에 비유해 청아(淸雅)한 수묵화처럼 그려낸 작품이다. 기가 육체를 만들고 육체가 단풍처럼 변하고 썩어 이슬로 땅에 스며드는 사람의 특성을 사계절의 반복과 같다고 가정하고, 육체적 성장에 따라 사물에 관한 사유 체계도 점점 성숙해감을 보여준다. 인과응보 또는 업보를 나타내기 위한 구조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사계절에 빗댄 수도승의 인생은 죄 없는 생명체에 돌을 매달아 괴롭힌 ‘인(因)’이 욕망과 집착이 부른 분노와 살인으로 치닫는 ‘과(果)’로 응보하는 과정으로서 그 이야기를 드러내는 이미지 주조 능력은 압도적이다.

계절마다 변하는 사찰 주변의 풍경을 담아낸 화면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이 작품의 공간 배경은 ‘호수에 떠 있는 절’로서, 고립과 도피의 공간이자 자유와 해탈의 공간이라는 양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계절에 따라 천진한 동자승이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를 거치고 마침내 자신을 가르치던 노스님의 나이가 된다. 영화는 그의 등에 매달린 돌덩이 같은 고뇌와 더불어 인생이 흘러가는 과정을 호수 에 떠 있는 사찰의 아름다운 사계 위에 그려낸다.



업을 안고 시작한 人生

깊은 산속 주산지 호수에 단아하게 떠 있는 사찰에 노승(오영수 분)과 동자승(김종호 분)이 기거하고 있다. 지척에 있는 뭍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조그마한 나룻배 한 척뿐이다.

▶ 봄-업 : 장난에 빠진 아이, 살생의 업을 시작하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노승과 동자승이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뭍의 산으로 올라간다. 동자승이 산을 오르내리며 약초를 캐기 시작한다. 약초를 캐다 뱀을 발견하고 손으로 잡아 멀리 던져버린다.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을 실로 꽁꽁 묶고는 뒤에 돌멩이를 매달아놓고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돌에매달린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은 괴로워 몸부림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승은 잠든 동자승의 등에 돌을 묶어둔다. 잠에서 깬 동자승이 울먹이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노승은 잘못을 되돌려놓지 못하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이른다.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은 지금 어떻게 되었겠느냐?”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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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원 이지딥 논술연구소장 mwyoo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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