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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논술 ⑨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사계절에 담은 인생 이야기

  • 윤문원 이지딥 논술연구소장 mwyoon21@hanmail.net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3/10
순환, 다시 시작되는 봄

▶ 가을-분노 : 절망에 빠진 청년, 고통으로 몸을 떨다

어느덧 낙엽이 지는 가을. 노승은 뭍으로 나가 사온 물건을 싼 신문지를 펼치다 ‘30대, 아내 살해 후 도주’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 범인의 사진도 함께 실려 있다. 바로 10여 년 전에 사찰을 떠난 소년승이 청년(김영민 분)이 되어 살인을 저지른 것이었다. 청년은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 신분으로 사찰로 도피해온다.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노승이 말을 건넨다.

“많이 컸구나. 그래 그동안 잘 살았느냐? 재미있는 얘기 좀 들어보자.”

청년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자 노승이 다시 말한다.



“속세가 많이 괴로웠나 보다.”

“절 좀 그냥 내버려두세요. 괴롭습니다.”

“뭐가 그리 괴로워?”

“난 사랑을 한 죄밖에 없습니다. 내가 원한 건 그 여자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걘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말고요.”

“그랬구나.”

“그게 말이 됩니까? 나만 사랑한다고 해놓고….”

“속세가 그런 줄 몰랐더냐? 가진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있느니라. 내가 좋은 걸 남도 좋은지 왜 몰라?”

청년은 가을의 단풍만큼이나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폐(閉)’라고 쓴 종이에 물을 묻혀 눈과 코와 입에 붙이고 자살을 기도한다. 노승은 그를 매달아놓고 모질게 매질한다. 노승은 고양이 꼬리에 먹을 묻혀 사찰의 마루에 반야심경을 써놓고 청년에게 칼로 한 글자씩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라고 한다.

“남을 쉽게 죽인다고 해서 자기 자신도 쉽게 죽일 수는 없다. 칼로 이 글자들을 다 파거라. 한 자씩 파면서 분노를 마음에서 지워라.”

사찰로 형사들이 찾아오고 청년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잡혀간다. 노승은 나룻배에다 장작을 쌓아놓고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에다 폐(閉)라고 쓴 종이를 붙인다. 그리고 촛불에다 불을 붙여 스스로 다비식을 치르며 숨진다.

▶ 겨울-비움 : 성찰하는 중년, 내면의 평화를 구하다

영화가 마무리되면서 주제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겨울 단락에는 김기덕 감독이 직접 출연해 지난 인생을 성찰하는 구도자적 모습을 표현한다.

호수마저 꽁꽁 얼어버린 겨울. 형기(刑期)를 마친 중년의 남자(김기덕 분)가 폐허가 된 산사로 돌아왔다. 그는 노승의 사리를 수습해 얼음 불상을 만들고, 겨울 산사에서 심신을 수련하며 내면의 평화를 구하는 나날을 보낸다.

추운 겨울날 사찰을 찾아온 이름 모를 여인이 어린아이만 남겨둔 채 언 호숫가를 건너가다 물에 빠져 숨진다. 결국 중년의 남자는 아기를 키우면서 비로소 가슴을 짓누르던 압박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남자는 몸에다 절구를 매달고 산을 오르는 고행에 나선다. 이때 명창 김영임의 ‘정선아리랑’이 흘러나온다. 애끊는 노랫가락이 전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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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원 이지딥 논술연구소장 mwyoo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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