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노 대통령 ‘코드 인사’ 비화

윤종용 낙점하자 진대제 추천한 삼성 盧,요트 취미에서 ‘여론돌파형 인사’ 체득?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6-08-07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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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에도 결심을 꺾지 않았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에 야당과 언론은 물론 여당에서도 반대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면돌파했다. 유시민 의원을 장관에 발탁할 때도 그랬다. 왜 여러 사람이 ‘안 된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을 발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혹은 인사 철학)에 대한 보충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관계자들로부터 노 대통령‘장관인사’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노 대통령 ‘코드 인사’ 비화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사임하자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이 청와대에 전화를 넣었다. 대화 내용은 대략 이랬다고 한다.

    의원 : 김 실장이 왜 갑자기 물러납니까.

    청와대 관계자 : 본인께서 내각에서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 하는 눈치예요.

    의원 :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국정 전반의 밑그림을 다 그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청와대 관계자 : 원래 일이라는 게 기획한 그대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니까…. 기획자의 처지에서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본인이 직접 들어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구상을 구체적 정책으로 현실화해 보려는 것으로 압니다. 특히 교육 쪽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고요.



    이 대화대로라면 김병준 전 실장은 본인이 원하는 직책(교육부총리)을 대통령으로부터 내정받은 셈이다.

    지방선거 후 김병준 전 실장의 교육부총리 내정 소문은 김진표 당시 교육부총리가 사의를 밝힌 지 불과 수시간 만에 알려졌다. 과거 정권은 내정 사실을 특정 언론사에 독점 제공해 여론동향을 살피는 데 이용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도 그랬다. 여론 검증 결과가 나쁘면 거둬들이기 쉽다. 그러나 현재의 청와대에선 내정 소문이 대체로 다수의 기자에게 ‘반(半)공식적’으로 알려지며, 그대로 현실화하는 경우가 많다. ‘시스템’상 ‘물리기’ 어렵다.

    盧, 김병준 회의 능력에 매료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인사 50명, 청와대 밖의 공직자와 기업인 등 50명을 대상으로 김병준 전 실장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가 좋았다. 그래서 인사검증 시스템을 가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직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한나절도 안 돼 후임자가 거론된 점, 후임자에 대한 인사 시스템을 가동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시점상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육부총리 인선에선 인사검증 시스템보다는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가 더 많이 작용했다는 게 청와대 주변의 전언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지방선거 패배 이유로 부동산정책 등의 실패가 꼽혔다. 김병준 전 실장은 교육전문가가 아닌데다 “세금폭탄”, “헌법보다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 등 여러 차례 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여론도 좋지 않았다(김 전 실장은 ‘세금폭탄’의 경우 “발언내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방선거 후에도 김 전 실장은 세금 정책 등과 관련, “우리가 가는 길이 옳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김 전 실장의 교육부총리 내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비판도 거셌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응하지 않았고, 박남춘 인사수석은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대통령은 왜 그처럼 ‘김병준 카드’에 집착했을까.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김병준 부총리 내정자의 ‘회의 진행 능력’에 매료됐다고 한다. 다음은 그의 설명이다.

    “김병준 전 실장은 1994년부터 노 대통령이 운영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 정책자문단장을 맡는 등 대통령과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왔다. 2002년 9~10월 정책자문(교수)단은 노 후보를 집중적으로 공부시켰다. 경제 문제의 비중이 높았다. 후보 학습을 위한 자리였지만 교수들끼리 논쟁을 벌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정우 교수(노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역임)가 경제성장률은 7%선이 적당하다고 하면, 김대환 교수(취임 후 노동부 장관 역임)는 4~5%, 장모 교수는 임기 후반 5.5%를 주장하는 식이었다. 일부 교수는 소신이 강해 논쟁을 벌인 뒤엔 모임에 아예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김병준 교수(국민대·행정학)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자문단 회의를 원만히 진행하는 수완을 보였다. 토론을 좋아하는 노 대통령에겐 이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에서 人事를 배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히 인사 문제에선 반대 여론이 강할수록 해당 인사를 관철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발탁,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은 그 절정이었다. 해당 인사들과의 친분, 이념의 공유 등은 기본적인 이유다. 여기에 더해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요트 취미에서 이 같은 인사 스타일을 체득했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역풍을 뚫고 전진하는 요트 타기에 매력을 느꼈는데, 여론돌파형 인사는 이러한 요트의 원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대선 이전부터 몇 차례 요트 경험담을 의미심장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요트는 돛으로만 항해하는 세일링 요트, 엔진이 달린 동력 요트로 나뉘는데 대통령은 세일링 요트를 애호했다. 세일링 요트 가운데 하나인 ‘딩기(Dinghy)’는 바람의 힘만으로 움직인다. 가장 곤혹스럽고 위험한 경우는 망망대해에 나가 바람이 불지 않는 때라고 한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바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바람이 불면, 어떤 방향에서 오더라도 돛의 조작으로 그 바람을 다스릴 수 있다. 진행방향의 맞은편에서 역풍이 불어도 바람을 이용해 전진한다. 여기에 요트가 주는 쾌감이 있다. 여론은 바람과 같다. 대통령은 반대 여론이 거세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여론을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는 데 이용하려 한다. 바다에서 배운 것이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경제관료 출신으로, 2003년 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노 대통령과 권 내정자의 이전 연결고리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런데도 권 내정자는 노 대통령 취임 직후 조달청장에서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 및 신행정수도건설기획단 단장으로 발탁되더니, 주(駐)OECD대표부 대사(2004. 7~2006. 4)를 거쳐 2006년 4월부터 7월까지 불과 석 달 사이에 대통령 경제정책수석, 대통령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내정 등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권 내정자의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노 정부 출범 초 그의 청와대 발탁과 관련, 권 내정자의 재정경제부 상관이던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이 권 내정자를 신임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권 내정자는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역임)과는 동향(강원도) 출신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여권 핵심 인사는 권 내정자 등 경제관료의 발탁 배경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도 연결지어 설명했다.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국내에 미칠 정치·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 그래서 반대 시위도 격렬해지고 있다. 특히 이정우 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박태주 전 청와대 비서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노 대통령 자문교수), ‘한미 FTA를 연구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일부 열린우리당 의원 등 그간 노무현 정권을 지지해온 전문가 집단을 비롯해 대다수 친노(親盧) 진영이 반대세력의 중심에 있다. 이념, 정책에선 비교적 한목소리를 내던 여권 내부가 한미 FTA 찬반을 놓고 균열을 보이는 양상이다.

    국정홍보처장 경질 안 된 까닭

    현재 한미 FTA 협상은 외교관 출신의 김종훈 한국측 협상대표가 이끌고 있고, 미국 통상전문가 출신의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이 정부 내에서 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부처 단위에서 결정되는 정책이 아닌, 정권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권부(權府)의 어느 쪽에서 한미 FTA를 미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여권 핵심 인사는 “김진표, 이헌재에 이어 경제부총리로 한덕수, 권오규씨가 임명됐다. 한덕수(상공부 미주통상과장, 통상산업부 차관 역임), 권오규(경제기획원 통상조정과장, 재정경제원 대외경제총괄과장 역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참여)씨는 모두 통상분야를 다뤄본 관료다. 통상 문제인 FTA도 염두에 둔 인사포석이다. 특히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재임 당시 한미 FTA 추진에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 ‘코드 인사’ 비화

    2006년 1월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이 김진표 당시 교육부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병준 실장은 7월 교육부총리로 내정됐다.

    또한 이 인사는 “여권 청와대 386의 좌장격인 이광재 의원이 막후에서 한미 FTA 전도사 역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광재 의원은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때 당 의장 경선에 출마한 김혁규 의원에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자료를 제공하면서 한미 FTA의 필요성을 역설해달라고 주문했다는 것. 김 의원측도 “이광재 의원이 자료를 제공한 적이 있으며, 한미 FTA 추진에 열성을 보이는 것 같았다”고 시인했다.

    여권 핵심 인사에 따르면 김종훈 협상 대표와 김현종 본부장이 야전사령관이라면, 권부 내에선 권오규(한덕수) 경제부총리-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그리고 이광재 의원을 비롯한 노 대통령 주변 386 참모들이 한미 FTA를 지원하는 형태로 볼 수 있다. 청와대 정책실은 국정 전반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노 정권의 기획자’인 김병준 전 정책실장의 경우 한미 FTA에는 적극성을 보인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요즘 대통령은 정부 정책에 대한 청와대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지시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한 여론동향 및 홍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홍보처가 한미 FTA를 지지하는 대학생 인터뷰(국정브리핑 기사)를 조작해 파문에 휩싸였음에도 김창호 처장에 대한 경질 인사는 단행되지 않았다. 국내외 언론계에선 인터뷰 전문(全文)이 통째로 작문인 것으로 드러날 경우 무거운 책임을 묻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김 처장이 유임된 것 또한 청와대가 ‘국정홍보처는 한미 FTA 홍보를 전반적으로 무난히 해왔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린 데 따른 측면이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직접 한미 FTA에 대해 명시적으로 지지를 역설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여권 핵심 인사는 “한미 FTA 추진파 인물들이 중용되고 이들에게 힘이 실리는 것은 노 대통령이 임기 중에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해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집권 초반기에만 해도 청와대와 정부는 한일 FTA, 한중 FTA에 비중을 뒀지, 한미 FTA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4년 11월 남미(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순방에 이어 2005년 9월 멕시코 순방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을 국정의 우선순위에 놓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순방을 수행한 ‘통상 전문’ 정부 인사들이 노 대통령을 설득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멕시코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다.

    ‘대통령 관저 녹음시설’

    이해찬 전 총리 시절엔 노 대통령의 인사권이 총리에게 상당부분 이양됐지만, 한명숙 총리 체제인 임기 후반기에 대통령은 인사를 직접 챙기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은 물론, 관저에도 녹음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이것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모 인사가 한나라당 수도권 광역단체장들의 대수도론(大首都論)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상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야당과 관련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다루지 말자는 취지였다. 청와대가 ‘청와대 브리핑’ 등 인터넷에 야당을 비판하는 글을 실은 적은 있지만 이는 모두 공개되는 내용이다. 비밀로 하는 것은 없다.

    민감한 사안을 문서로 보고하면 대통령은 직접 와서 보고하라고 지시할 때도 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구두로 보고하는 사안은 녹음된다. 문서나 녹음은 모두 보존된다. 육성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는 것이므로 문서보다 더 부담스럽다.

    청와대 내 대통령 관저의 만찬장에도 녹음시설이 가동된다. 노 대통령이 지시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인사 문제 등 은밀한 내용을 대통령에게 얘기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 녹음시설이 가감 없는 여론청취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 하여금 외부의 청탁이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측면도 있다.”

    노 대통령은 인사를 유난히 중요시하는 대통령이다. “앞으로 (누군가 인사 청탁을 하면) ‘당신 그러다 걸리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고 반드시 손해 볼 것이다. 걸리면 패가망신이다’ 이렇게 경고해주십시오. 나 혼자로는 안 됩니다.”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2002년 12월26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에서 한 이른바 ‘패가망신’ 발언이다. 청탁 인사 대신 노 대통령이 제시한 대안이 ‘시스템 인사’다. 장·차관, 청와대 등 정부기관의 요직, 공공기관 기관장 인사에 여론조사, 다면평가 등을 도입했다. 최근 노 대통령은 1~3급 공무원간 차등을 없애고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전격 시행했다. ‘공무원들을 긴장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인사 제도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2003년 초 ‘참여정부’ 첫 내각의 면면은 국민의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1기 내각 인사가 이뤄진 배경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1기 내각 인선에 깊이 관여했던 청와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장관들이 임명된 과정에 얽힌 비공개 일화를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첫 국무총리와 19명의 부처 장관, 부처 주요 요직 등 30자리의 인선에 여론조사 방식이 도입됐다. 신계륜 당선자 비서실장의 의뢰를 받은 외부 민간여론조사기관인 A사가 각 부처 복수의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 전문가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벌여 평균 5배수 후보로 압축한 보고서를 당선자에게 수시로 직접 보고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이 맡은 장관 후보는 비정치권 인사들로 채워졌으며,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씨 등도 인선 과정에 관여했다고 한다. 여론조사 대상은 부처별로 사회, 재계, 관가의 세 영역 전문가 100여 명이었으며 부처당 2~3일이 걸렸다.

    “럼스펠드와의 학연 고려했지만…”

    이들 조사대상 전문가들은 장관 후보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경우도 많아 여론조사 데이터와 인물평가(장·단점 등) 보고서가 함께 만들어졌다고 한다. 첫 내각부터 노무현식 시스템 인사가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당선자측은 인수위 인력 부족 등으로 외부용역에 의뢰해 초대 장관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와 다면평가를 진행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노 당선자는 30명 중 25명을 보고서가 제안한 사람 중에서 발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인수위는 장관 인선에 전력투구할 여력이 없었다. 인수위내 인사추천위원회는 보고서가 제출된 뒤 구성됐다.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부터 다면평가 제도를 선호해왔다”고 설명했다. 비서를 시켜 해당 여론조사기관에 이력서를 제출한 관료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다음은 청와대 관계자가 전하는 인선 과정이다.

    “평가 결과 경찰청장 후보는 1순위로 최기문(노무현 정부 초대 경찰청장), 2순위로 이상업(현 국가정보원 2차장) 후보가 올라왔다. 이 같은 사실을 이상업 후보에게도 알려줬는데, 이 후보는 실망하는 눈치였다.

    국세청장은 봉태열, 곽진업 후보가 각각 1, 2 순위였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시사저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세청장 인사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노 대통령 측근이 시사저널측에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측근은 잘 안될 것 같다고 다시 얘기해왔다. 6명이 국세청장 후보로 추천되었는데 기사가 나간 뒤 후보자 명단에 없던 이용섭씨가 국세청장이 됐다(이후 이 청장은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을 거쳐 2006년 3월 행정자치부 장관에 취임했다).

    풍양 조씨 종친회 인사인 모 신문사 간부는 조영길씨를 국방부 장관으로 추천했다. 한미관계를 고려해 이준 당시 국방장관의 유임도 유력했다. 이종구씨도 럼스펠드 미국 국방장관과의 학연 등 친분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탈락했다. 이회창 후보의 국방장관 후보였기 때문은 아니다. 6개 일간지 국방전문 기자도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조영길 후보가 국방장관이 됐다.”

    문국현 사장, 환경 장관직 고사

    청와대 관계자는 “총리의 경우 세 차례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 고건 후보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는 특히 현직 관료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초대 환경부 장관에는 한명숙 현 총리가 임명됐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인수위 당시 환경부 장관 후보 1순위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었다. 문 사장은 장관직을 고사했다. 그처럼 장관직을 거부한 사람이 몇몇 있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취임 후 문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입각 요청을 수락해 같이 일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보통신부 장관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순위였다. 인수위가 삼성측에 의사를 타진하자 삼성측은 윤 부회장 대신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삼성맨 중 윤 부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정통부 장관 인선 초기에 진대제 사장의 검증에 일부 지체현상이 있었다”는 것. 정부는 “진대제 장관과 관련된 사안은 사전에 검증을 거쳤으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가장 빨리 인선이 끝난 자리였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대선 2년여 전인 2000년 6월 노 대통령은 경남 창원의 한 호텔에서 열린 조직책 연수 자리에서 문재인 변호사에게 “내가 대통령 되면 당신에게 민정수석을 맡기겠다”고 말했다.

    강금실 초대 법무부 장관의 경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만 1순위를 받았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순위가 낮은 편이었지만 노 당선자가 직접 발탁했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도 5배수 후보에는 없었으나 발탁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후순위 강금실, 명단에 없던 김두관

    이어지는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 일부 언론은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국가정보원장 후보로 거론했으나 후보명단에는 없었다. 초대 고영구 국정원장은 노 당선자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신 총재는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노 당선자는 정치권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남해군수 출신 김두관씨를 전격 발탁했다. 우리도 그가 누군지 잘 모를 정도였다. 청와대 인사보좌관은 호남 출신을 원칙으로 했는데 민청학련 출신 이강, 정찬용 후보 중 정 후보가 자리를 맡게 됐다.

    노 대통령은 2000년 4월 총선 직후부터 대선 수업 차원에서 김종인(경제), 한완상(사회), 한승주(외교), 박제규(통일)씨 등을 계속 만나왔다. 노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한승주 교수를 오래전부터 점 찍어둔 셈이었다. 윤영관 교수가 외교통상부 장관, 서동만 교수가 국정원 기조실장이 됐지만, ‘윤영관-대통령 보좌관, 서동만-외교통상부 장관’ 안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인사 정보의 균등한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인 ‘조선일보’는 당선자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에 문희상, 정무수석에 유인태’라는 기사를 특종보도했다. 이 ‘사건’ 여파로 대통령 측근 한 명은 문책성 조치를 받았으며 인선 결과에 대한 보안은 더욱 철저해졌다고 한다. 이후 인선 결과가 유출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계륜 당선자 비서실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총리는 누가 되나’라는 질문에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은 정치인 출신으로 고려 중이다. 총리보다 빨리 결정될 것’이라고 동문서답했다. 조선일보 기자가 이광재씨에게 ‘실장과 수석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그는 ‘모른다’고 답했다. 조선일보 기자는 다시 모 특보를 찾았다. 이 특보는 ‘글쎄, 빨리 결정된다면 오늘 당선자가 면담한 사람들 중에 되겠지’라고 답변했다. 조선일보 보도 이후 이 특보는 징계 차원에서 당선자로부터의 메일 수신을 금지당했다. 장관 발탁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조선일보 기자는 당선자 일정을 확인한 결과 오후 3시, 4시에 당선자가 문희상, 유인태씨와 면담 약속이 잡혀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가장 빨리 인선이 끝난 자리였다고 한다. 대선 2년여 전인 2000년 6월 노 대통령은 경남 창원 조직책 연수 자리에서 문재인 변호사에게 “내가 대통령 되면 당신에게 민정수석을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광재 “참 대단하다”

    기자가 다시 이광재씨를 찾아가 ‘문희상, 유인태가 맞나?’라고 묻자 이씨는 ‘참 대단하다’고 답했다. 이날 밤 9시, 조선일보측은 회식 중이던 유인태씨에게 전화해 ‘축하한다’고 한 뒤 ‘윗분은 문희상이냐’고 묻자 유씨는 얼떨결에 ‘그렇지’라고 답변해 다음날 기사화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역대 정권 중 인사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면서도 인사와 관련된 논란과 비판에 자주 직면했다. 대표적 논란은 ‘코드 인사’(‘돌려막기 인사’가 그 파생 개념), ‘정부조직의 비대화’(‘위원회 공화국’이 그 파생 개념)’,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세 가지다. 여기에다 ‘잦은 설화(舌禍)’, ‘아마추어식 국정운영’이라는 비판이 보태진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 측근들은 자주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한다.

    ‘신동아’가 노 대통령 취임 이후 내각(국무위원 기준)을 분석한 결과, 2003년 3월부터 2006년 7월 현재까지 국무총리와 19개 부처 부총리·장관직엔 64명(내정자 포함)이 임명됐다. 3년4개월 동안 1개 부처당 평균 3.3명의 장관이 재임했으며,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정도(12.1개월)인 셈이다.

    교육부총리의 경우 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교육부총리는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현 정부 들어 벌써 5명의 교육부총리가 들어섰고 평균 재임기간은 9개월이었다. 그러나 노 정부의 장관 평균 재임기간은 역대 정부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리 짧은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여권 인사들의 대체적 평가, 그리고 지난 3년여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집권 이전부터 노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경우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자문교수단이나 인수위에 참여한 경우 ▲노 대통령과 같은 이념적, 정책적 성향을 가진 경우 ▲노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경우 ▲장관으로 임명된 뒤 총선-지방선거에 차출된 경우 ▲대선 이후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을 대변하면서 노 대통령에 의해 여러 차례 파격적으로 중용된 경우가 복합되면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2003.3~2006.7.17) 국무총리 및 장관(국무위원) 인사 변천과정
    초대 내각(50%) 집권 중반기 현 내각(45%)
    국무총리 고 건이해찬(2004.6) 한명숙(2006.3)
    경제부총리 김진표이헌재(2004.2) 한덕수(2005.3) 권오규(내정. 2006.7)
    교육부총리 윤덕홍안병영(2003.12) 이기준(2005.1)

    김진표(2005.1)
    김병준(내정. 2006.7)
    과학기술부총리 박호군오명(2003.12) 김우식(2006.2)
    통일부 장관 정세현정동영(2004.7) 이종석(2006.2)
    외교통상부 장관 윤영 반기문(2004.1) 반기문
    법무부 장관 강금실김승규(2004.7) 천정배(2005.6)
    국방부 장관 조영길윤광웅(2004.7) 윤광웅
    행정자치부 장관 김두관허성관(2003.9) 오영교(2005.1) 이용섭(2006.3)
    문화관광부 장관 이창동정동채(2004.7) 김명곤(2006.3)
    농림부 장관 김영진허상만(2003.7) 박홍수(2005.1)
    산업자원부 장관 윤진식이희범(2003.12) 정세균(2006.2)
    정보통신부 장관 진대제진대제 노준형(2006.3)
    보건복지부 장관 김화중김근태(2004.7) 유시민(2006.1)
    환경부 장관 한명숙곽결호(2004.2) 이재용(2005.6) 이치범(2006.2)
    노동부 장관 권기홍김대환(2004.2) 이상수(2006.1)
    여성가족부 장관 지은희장하진(2005.1) 장하진
    건설교통부 장관 최종찬강동석(2003.12) 추병직(2005.4)
    해양수산부 장관 허성관최낙정(2003.9) 장승우(2003.10)

    오거돈(2005.1)
    김성진(2006.3)
    기획예산처 장관 박봉흠김병일(2004.1) 변양균(2005.1) 장병완(내정.2006.7)


    *괄호 안의 숫자는 취임 시점, 굵은 글씨는 ‘코드 인사‘로 분류되는 각료, %는 코드형 각료 비율

    열린우리당에서 입각했어도 유시민 장관 경우는 코드 인사로 분류되지만, 정동영·김근태 전 장관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노 정부의 초대 총리와 장관 20명을 분석해본 결과 코드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은 김진표 경제부총리, 윤덕홍 교육부총리, 강금실 법무부 장관, 김두관 행자부 장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 한명숙 환경부 장관, 권기홍 노동부 장관,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 10명이다. 전체 내각의 50%에 이른다.

    ‘코드 장관 비율’ 39~50%

    노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임명한 총리 및 장관 64명 중 코드 인사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앞에서 살펴본 1기 내각의 10명 이외에 이해찬 총리, 한명숙 총리, 김병준 부총리 내정자, 김진표 교육부총리, 권오규 부총리 내정자,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 이종석 통일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관,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환경부 장관, 김대환 노동부 장관, ‘보은(報恩) 인사’ 논란의 이상수 노동부 장관,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등 25명이다. 전체 총리·장관 임명자의 39%다.

    집권 후반기인 2006년 7월 현재 노무현 정부의 총리 및 장관 20명 중 코드 인사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한명숙 총리, 권오규 부총리 내정자, 김병준 부총리 내정자, 김우식 부총리, 이종석 장관, 윤광웅 장관, 유시민 장관, 이상수 장관, 추병직 장관 등 9명으로 45%에 달한다.

    이러한 수치 변화는 ‘초기엔 코드 인사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으나, 중반기엔 자문교수 집단의 퇴조와 관료의 득세로 인해 ‘실무형’ 쪽으로 성격이 변화하다가, 집권 후기에 접어들어 유시민, 김병준 등 대통령 측근이 중용되면서 다시 코드 내각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에 대체로 부합하는 것이다.

    DJ 정권 후반기엔 ‘코드 장관 0’

    열린우리당 의원이 입각한 경우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천정배 법무부 장관,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까지 코드 인사에 포함시킨다면 코드 장관의 비율은 좀더 높아진다.

    노무현 정부 역대 총리·장관의 코드 성향은 전임 정권인 김대중(DJ) 정부의 마지막 내각과 비교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동교동계 출신 등 코드 인사(人士)를 내각에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다. 1명의 총리와 19명의 부총리·장관 중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직업공무원이 절반(10명)을 차지했다.

    총리는 영남 출신 법조인(김석수)이었고, 학계(5명, 이상주·채영복·정세현·김성재·김명자), 재계(1명, 이상철 KT 전 사장), 시민운동단체(1명, 한명숙) 출신 장관들도 외부 인재 영입 케이스이지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 인사는 아니었다. 정치인 각료는 2명(자민련 출신 신국환, 국민회의 출신 방용석)이었는데, 이들도 DJ 직계는 아니다.

    39~50%라는 계량적 수치만 봐서 노무현 정부의 총리·장관 인사를 코드 인사라고 단정하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율도 중요하지만 대통령과 가까운 일부 총리·장관이 국정 전반을 주도하면서 이념적으로 편향된 ‘계층 대립적’ 메시지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코드형 내각으로 평가받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장관과는 달리 노무현 정부의 차관급 인사는 대부분 직업관료들로 채워져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4대 사정(司正)기관의 수장인 국가정보원장(고영구 김승규), 검찰총장(김각영 송광수 김종빈 정상명), 경찰청장(최기문 허준영 이택순), 국세청장(이용섭 이주성 전군표)의 경우 임명된 12명 중 코드 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는 한 명도 없다.

    오히려 5명의 기관장(김각영 검찰총장, 송광수 검찰총장, 김종빈 검찰총장, 최기문 경찰청장, 허준영 경찰청장, 이주성 국세청장)은 청와대 등 여권과 마찰(혹은 마찰 논란)을 빚었으며 이로 인해 일부는 중도 사퇴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2006년 7월 현재 재임 중인 4대 사정기관 기관장은 전임 기관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와대 등 여권과의 관계가 매끄럽다는 평이다.

    예를 들어 정상명 검찰총장은 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노 대통령이 직접 법무차관에 낙점한 바 있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이해찬 전 총리와 고교 동문이며, 전군표 국세청장은 참여정부 출범 때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후반기 내각의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셈이다.

    “성과를 보고 평가해 달라”

    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은 “청와대가 할 것 다 한다”고 말한다. 주요 정부 정책이 청와대의 사전 기획에서 나오는 등 노 정부에서 청와대가 내각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얘기다. 청와대의 경우 집권 초부터 현재까지 386 측근 등을 중심으로 한 코드 인사가 일관되게 시행되고 있다. ‘국정 로드맵’을 생산하는 대통령 직속 11개 국정과제위원회도 비슷한 성격이다.

    청와대 전해철 민정수석, 박남춘 인사수석, 이정호 시민사회수석, 차의환 혁신관리수석은 모두 2006년 5월 비서관에서 승진했다. 임기 말이 가까워올수록 노 대통령의 측근들은 청와대 내에서 승진 등을 통해 전진 배치되는 양상이다.

    쟁점이 되어온 4대 입법 중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엔 노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임명돼 활동 중이다.

    집권 후반기 인사의 새로운 특징은 청와대 핵심(김병준, 권오규, 김우식)이 직접 내각의 3대 부총리(경제, 교육, 과학기술)를 모두 맡아 국정을 ‘접수’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통령과 이념을 공유하는 인사(유시민, 이종석, 윤광웅, 이상수)도 내각에 가세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내각 간 정책적 유대는 긴밀해졌고 대통령의 내각 직할이 강화됐다.

    내년 12월 대선 때까지 ‘실질 임기’ 1년5개월여를 남겨둔 노 대통령은 ‘측근 중심 인사’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노 대통령은 지금 시간이 없다. ‘시스템’과 ‘로드맵’은 완비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겐 5년 임기를 대표할 ‘구체적 업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너서클을 청와대 및 내각 요직에 집중 배치해 국정 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결과가 안 좋으면 ‘자기 사람에 올인한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결국 코드 인사의 존재 여부나 코드 인사에 대한 공과(功過)는 4대 국정과제의 임기 막바지 ‘성적표’에 따라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정부가 제시한 4대 국정과제는 양극화 해소, 균형정책(교육, 부동산, 지방 개발 등), 한미 FTA, 자주외교로 집약된다. 이와 관련된 주요 부처(재정경제부, 교육부, 통상교섭본부, 통일부, 국방부, 보건복지부)가 코드형 장관으로 채워진 것은 노 대통령 입장에선 당연한(?) 수순이다.

    “성과를 보고 평가해달라”는 한덕수 부총리의 퇴임 소감은, 사실 노 대통령의 심정과 일치하는 얘기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요즘 ‘역사’를 유독 강조한다. 연설 대부분을 고대사 얘기로 채울 때도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그러나 4대 국정과제는 현재 극렬한 찬반양론, 이념논쟁에 휩싸여 있다. 정책 반대론자들의 기세가 나날이 등등해져 노 정부의 ‘유연성’이 떨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한미 FTA 협상 결렬이 ‘5년 국정 수행의 최종적 실패’로 읽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경우 노 정부는 협상을 관두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인사와 관련해선 ‘정부조직의 비대화’와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도 있다. 그 주요 논거는 대략 다섯 가지다.

    ▲노 정부 출범 이후 공무원 수가 2만5000여 명 증가했다. 장·차관직도 20여 개 늘었다. ▲이에 따라 지난 1년간 정부의 인건비 예산이 1조5000억원 늘었다.▲국민의 세금 부담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반면 그 결과물인 정부 행정 효율성은 2005년에 비해 16단계 추락했다(스위스 기관 조사). ▲노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산하기관에 정치인 출신 134명, 관료 출신 148명이 임용됐다.

    ‘낙하산 인사’에 대한 반론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늘어난 공무원 중 상당수(2만명 안팎)는 증원이 꼭 필요한 교원, 경찰, 집배원 등이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도 “현재로선 누구도 ‘수치’를 통해 참여정부의 조세정책 실패를 입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득 증대에 따라 세금은 오르게 마련인데, 그 증가 폭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계산이기 때문이라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조사결과의 경우 “특별한 국가적 악재가 없었음에도 1년 만에 특정 국 정부의 행정효율이 16단계나 추락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로, 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주장에 대해 청와대 인사관리비서관실은 “공모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정당의 인력 풀(pool)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을 나쁘게 볼 일만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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