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에 대해 검찰수사가 본격화됐다. ‘매각주역’ 이강원 전 행장이 한국투자공사 사장에 임명되는 과정을 들여다봤다.
6월29일 외환은행 본점에서 이 은행 노조원들이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전 행장은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당시 외환은행장이었다. 감사원은 지난 6월19일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헐값으로 매각됐으며, 이는 외환은행 경영진이 주도하고 금융감독 당국이 용인해 이뤄졌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외환은행 경영진은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6.16%로 실제보다 낮게 전망하는 등 외환은행의 부실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을 ‘관료 진영’과 ‘은행 진영’의 합작품으로 본 것인데,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이강원 당시 행장과 정문수 당시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을 ‘은행 진영’에 속하는 인물로 지목하기도 했다.
정문수 전 의장은 외환은행 매각 때 이사회에서 최종 매각안(案)을 추인하는 데 함께 했으며 스톡옵션을 받았다. 이강원 전 행장도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된 뒤 고문료 등의 명목으로 17억원을 받았다.
정 전 의장은 2005년 1월 청와대에 의해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에 임명돼 현재 재임 중이다. 이강원 전 행장도 2005년 7월 신설된 국영투자회사 성격의 KIC 사장직에 응모해 청와대에 의해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청와대는 “재정경제부의 KIC 사장 추천위원회가 KIC 사장에 지원한 40여 명의 후보 중 3명을 추려 청와대에 올렸으며,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이강원 전 행장과 전광우 전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2명으로 압축한 뒤 대통령에게 무순(無順)으로 올려 대통령이 이강원 전 행장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전 행장이 KIC 사장에 임명될 당시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2004년 외환은행이 순이익을 내기 시작하자 이 때부터 외환은행 헐값 매각과 관련된 의혹이 들끓기 시작했다. KIC 사장에 임명될 무렵에도 이 전 행장은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외국 자본에 국부(國富)인 은행을 잘못 팔았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에게 어떻게 200억 달러의 한국은행 외화자산을 해외에 투자하는 KIC 사장직을 맡길 수 있느냐”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1순위로 다른 사람 올렸다”
한 여권 인사는 최근 ‘신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KIC 사장 추천위원회에서 평가한 결과 원래 1순위는 이강원 전 행장이 아니었는데 청와대가 이 전 행장을 발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KIC 사장 추천위원회는 사실 미국에서 30년 거주하면서 해외 투자 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윤영원 삼성생명 고문을 KIC 사장 ‘1순위’로 추천했다. 다른 후보들은 펀드나 해외투자가 아닌 금융전문가에 가까워 KIC 업무엔 윤 고문이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2005년 7월 재정경제부의 KIC 사장 추천위원회(총 6명의 위원으로 구성)에서 위원으로 활동한 박상용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에게 KIC 사장 추천 과정에 대해 질의했다. 인사추천위의 내부 평가결과는 일반적으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데, 이번 경우는 시일이 지난 전직 사장에 대한 사안인데다 ‘신동아’가 먼저 평가 결과를 접한 뒤 이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한 것이어서 박 교수는 답변에 응했다.
박 교수는 “사장 추천위는 윤영원 고문을 1순위로 했고 2, 3순위 사이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추천위 평가위원 6명의 만장일치로 1순위가 결정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박 교수는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가 ‘외환은행 매각 주역’으로서, 논란이 예상됐고 사장 추천위에서도 1순위로 평가받지 못한 이강원 전 행장을 사장에 발탁한 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KIC는 신설 기관인데다 막대한 국고(國庫)를 끌어다 해외투자에 나서는 다소 위험한 업무를 다루게 되어 ‘조직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KIC는 이강원 초대 사장 취임 이후 업무협조를 받아야 할 국회 등에서 ‘사장 자질 시비’로 시달렸으며, 결국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사장이 중도하차해 사장을 다시 뽑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사장 추천위 한 관계자는 “3명 모두 충분한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최종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청와대에서 별도의 공정한 검증을 거쳤으므로 이 전 행장의 KIC사장 임명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