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30대 중반, 두 아이의 어머니가 10년 만에 두 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대학교수로 변신했다. 또한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지리정보 시스템을 이용한 벤처기업 대표가 되어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천의 정비와 복원, 홍수관리 등의 기초자료가 될 이 국가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는 경일대(경북 경산시 소재) 위성정보공학과 조명희(曺明姬·51·한국지리정보학회장) 교수. 조 교수가 설립해 이 사업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벤처업체 GEO C·I(GEO Consulting · Information)는 대구 근교의 자그마한 대학인 경일대 내에 보금자리를 틀었지만, 최근 중소기업청이 선정하는 ‘이노비즈’에 선정됐다. 이노비즈는 벤처업체 중 유망기술을 보유한 업체에 주어지는 브랜드로, ‘벤처 중의 벤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일대 연구개발 비즈니스센터 건물 4층에 입주한 이 회사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 “오직 기술력으로 인정받겠다”며 직원 40여 명이 밤낮을 잊은 채 연구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매출액 목표는 50억원. 2003년 직원 8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의 매출액은 그해 13억원, 지난해 28억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건설교통부와 과학기술부, 농림부, 산림청, 대구시, 경북도 등에서 따낸 대형 프로젝트가 30여 건에 이른다.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벤처기업 뒤엔 CEO(최고경영자)의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게 마련이다. GEO C·I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조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조 교수는 성공의 씨앗을 뿌렸다. 늘 자정 무렵에야 대구 팔공산 자락의 집으로 퇴근하는 그에게 ‘가마골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경일대가 자리잡은 지역의 옛 지명인 가마골을 훤하게 밝힌다는 뜻.
‘장군의 며느리’
조 교수는 10여 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길 찾기용 GPS(위치추적 시스템) 분야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냈다. 1995년 경일대 측지공학과를 중심으로 몇몇 제자와 만든 GIS(지리정보 시스템) 동아리는 8년 뒤 위성정보를 활용한 지리정보 벤처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조 교수의 인생 목표가 처음부터 대학교수나 기업인은 아니었다. 두 아이를 기르던, 30대 아줌마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두 개나 받고, 교수로, 또 여성사업가로서 밤낮없이 전국을 뛰어다니게 될 줄은 자신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결혼(1978년)하고 나서 5년쯤 지났을 때 시아버님께서 ‘공부를 계속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마침 그 무렵 ‘이렇게 살림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습니다. 그냥 학부 때 전공(지리학)을 따라 경북대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시아버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죠.”
조 교수의 시아버지는 정태석 전 해병대 사령관이다. 해군사관학교 3기로 베트남전쟁 당시 청룡부대장으로 활약했던 정 전 사령관은 2000년 폐암으로 별세했다. 경북대 지리학과 4학년 2학기에 재학하며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지리교사로 근무하던 조 교수는 경북대 의대 학장을 지낸 친정아버지 조준성(77)씨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정 전 사령관과 어느 날 ‘우리 사돈 합시다’ 하고 약속하는 바람에 갑작스레 결혼하게 됐다. 5남매 집안의 맏며느리가 된 조 교수는 서울 한남동 해병대 사령관 공관에서 1년4개월 동안 시집살이를 했다.
“정신이 없었죠. 공관이 1년 내내 손님들로 북적였으니까요. 이런 생활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손님 맞고 음식 준비하면서 신혼기간이 다 지나갔어요. 그런데 시아버님이 퇴직하고 서교동 집으로 이사를 하니 그 많던 손님들 발길이 뚝 끊어지더군요. ‘이런 게 권력 무상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 전 사령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공직에서 물러났다. 조 교수는 지금도 시아버지를 가슴속에 모시고 산다. 정 전 사령관은 큰며느리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사령관 시절엔 가족에게 “큰며느리 말은 무조건 들어라”고 엄명을 내렸을 정도였다. 그는 “시아버님의 격려가 없었다면 제2의 삶은 꿈꾸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조명희 교수는 어린 남매를 대구의 친정부모에게 맡기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35세이던 1990년 인공위성의 영상을 활용하는 원격탐사 분야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리정보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는 국내 최초였다.
아편 밀반출을 막아내다
1994년 경일대에 자리를 잡은 그는 다음 해 ‘대구경북 GIS연구회’를 결성했다. 이 연구회는 1997년 한국지리정보학회로 발전했다. 한국지리정보학회는 현재 전국 30여 개 대학 교수 600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 교수는 지난해 12월 이 학회 회장에 선출됐다.
“결혼하고 1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 간 상태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눈치보며 하는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적당히 강의나 하면서 안주해선 안 되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세상에 필요한 무언가를 개척해서 반듯하게 만들어놓고 싶었습니다.”
경북대 등에서 시간강사를 하던 1992년은 위성정보기술 연구자로서 삶에 전환점을 맞은 해였다. 조 교수는 그해 자신의 연구역량과 기술의 무대를 국제적으로 확장했다. 그는 일본 나고야의 유엔지역개발센터(UNCRD)에서 주최한 ‘라오스 프로젝트’에 응모해 당당히 GIS 전문가로 채용됐다.
이 프로젝트는 GIS를 이용해 라오스 일대에 성행하던 아편 밀재배 현장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유엔은 라오스에서 밀재배한 아편이 메콩 강을 통해 밀반출되자 그 정확한 루트를 찾기 위해 조 교수를 채용했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 때문인지 시아버님께서 ‘목숨이 위험하다’며 거듭 말리셨어요. 저도 겁이 났지만 위성영상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향했죠. 아편꽃이 피면 땅의 온도가 다른 곳과 달라지는데 그 현상이 위성영상에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결국 지리정보 시스템에 위성영상을 결합해 아편 재배지역을 정확하게 찾아냈어요.”
그는 이후에도 라오스를 수차례 방문하면서 메콩 강 일대에서 위성정보기술을 적용하고 자료를 확보했다. 당시 쌓은 경험은 지금도 하천 및 연안 연구의 토대가 되고 있다.
경일대에서 강의하던 무렵에도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위성탐사 분야의 연구가 활발한 일본 도카이(東海)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1998년에는 이 대학에서 GIS 관련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로 돌아온 후 조 교수가 가장 관심을 쏟은 분야는 GIS와 관련한 인재 확보였다. 학부를 마친 학생들이 대부분 취업에 눈을 돌리자 그는 연구용역으로 따낸 자금과 개인 돈을 합쳐 장학금을 마련했다. 학생들이 마음놓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쌓게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GEO C·I에 입사하는 직원들도 가능한 한 대학원 공부를 하도록 했다. 그가 최근 5년 동안 제자와 직원의 대학원 학비로 내놓은 돈만 1억3000여만원에 달한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
그런 지원에 힘입어 GEO C·I의 기술력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004년 대구시내 왕복 4차로 이상 도로에 설치된 가로등 4만3000여 개를 대상으로 가로등의 전력량과 고장 여부 등을 전자지도에 담고 원격제어할 수 있는 ‘가로등 정보관리 시스템’을 전국 처음으로 구축하는 한편, 경북도의 산불감시 원격탐사 시스템 등을 잇따라 만들어냈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서울시내 지역별 열(熱) 환경분석 연구도 그가 기상청과 함께 이루어낸 작품이다. 또한 서울 청계천의 복원 전후 도시 주변 온도 변화에 관한 연구를 서울대와 공동으로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서울의 위성영상사진. 조명희 교수는 이를 토대로 세부적인 영상자료를 만들고 있다.
2005년 조 교수는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미래국가유망기술위원회’에 위원으로 선발됐다. 주변에선 10년 뒤 한국의 과학기술을 설계하는 자리에 지방의 작은 사립대학 여교수가 참여한 것에 대해 ‘매우 뜻밖’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가 한국여성과학기술인회의 추천으로 이 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것은 지리정보기술 분야에서 단연 최고 수준의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경일대는 최근 건설교통부의 ‘국가 GIS 전문인력 양성교육기관’, 그리고 과학기술부 및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영남권 위성센터 시범 운영기관’에 선정되었다. 현재 지리정보와 관련된 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경일대를 비롯해 인하대, 서울시립대, 남서울대, 부경대 등이 있지만, 산학협력 형태로 벤처기업을 설립한 곳은 조 교수가 소속해 있는 경일대가 유일하다. 그의 아들도 인하대에서 지리정보를 전공하고 있다.
조 교수는 지난해까지 속했던 도시정보지적공학과에서 독립, 위성정보공학과를 최근 개설했다. 위성을 통해 지리정보기술을 선점하려는 세계 각국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조 교수는 지금까지 공간정보기술을 활용하는 데 미국이나 프랑스의 위성을 활용해왔다. 하지만 7월28일 한국의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2호가 러시아에서 발사되면 GEO C·I의 기술력도 동반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리랑 2호는 지상 1m 높이에 있는 물체까지 고화질 영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성능을 갖췄다.
“위성을 활용한 지리정보는 가장 아름답고 편리한 지도(地圖)라고 할 수 있죠. 지도가 없다면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형태의 신개념 지도가 바로 위성지리정보입니다.”
조 교수는 “위성지리정보는 국토관리는 물론, 개인 생활에도 점점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지리정보를 활용한 산업을 발전시키는 한편, 이 산업을 이끌어 나갈 인재를 배출함으로써 ‘쌍두마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