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골수 운동권 출신 386의 盧 정권 비판

“하기로 한 것, 할 것 같은 것도 못하기에 등 돌렸다”

  • 윤진호 미래재단 이사 icentral@hanmail.net

    입력2006-08-14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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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12월19일, 나는 축하의 현장에서 짓궂게도 “어쩌면 노 대통령은 ‘줄 서지 않은 정치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정치개혁의 물꼬를 튼 것 이상의 업적은 낼 수 없을지 모른다”고 방정맞은 소리를 했다가 선후배들의 눈총을 받았다. 집권을 위한 구체적 준비가 부족하다는 얘기였는데, 나도 그 말이 이렇듯 뼈아픈 진실로 드러날지는 몰랐다.
    골수 운동권 출신 386의 盧 정권 비판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노사모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주위에서 무언가를 배우러 청와대에 간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당혹스럽다. 청와대는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러 가는 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정부에 참여한다는 것은 꿈의 영역이 아니라 실력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 아닐까.

    경험 있는 사람만 정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경험은 없지만 실력이 있다면 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문제는 그가 일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점이다. 일할 준비가 돼 있다면 그에게 우선 낮은 단계의 국정과제를 주고 이를 잘 수행하는지 검증해야 한다. 예상만큼 잘 해낸다면 좀더 수준 높은 과제를 주고 다시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을 키우고, 정책과제를 완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실력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너무 큰일을 맡기는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인사의 기준이 실력보다는 ‘국정 원칙의 공유’를 더 중시하기 때문 아닐까. 무엇을 반대하기는 쉬워도, 무엇을 만들어내는 일은 어려운 법이다. 정부를 비판하기는 쉬워도 정부를 운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국정운영은 실력의 차이로 성패가 갈린다.

    “그는 신선했고, 우린 환호했다”

    2002년 12월19일 자정 무렵, 나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환호하고 있었다. 밤 10시20분 TV 화면에 ‘당선확정’이라는 자막이 뜨자 정신없이 광화문으로 뛰어나가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선후배들과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그날 밤 그 넘치는 축하의 현장에서 나는 짓궂게도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자체가 최고의 업적일지 모른다”며 “줄 서지 않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정치개혁의 큰 물꼬를 튼 것 이상의 업적을 낼 수 있을까?” 하고 방정맞은 소리를 했다가 주변 선후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나는 집권을 위한 구체적 준비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그날의 내 말이 지금처럼 분명한 진실로 드러날 줄은 몰랐다.

    지난 5·31 지방선거 투표를 한 뒤 나는 3년7개월 전 대선 투표할 때처럼 즐겁지 않았다. 마음이 답답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말 수구세력의 공세 때문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을 국민이 몰라주는 것일까. 아니면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은 왜 지지한 것일까.

    2002년 한국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회창 후보가 풀어내기 어려운 문제였다.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이회창 후보가 능력은 있지만, 대통령이 되면 민주발전이 정체하거나 후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렵게 이룬 한반도의 평화 무드가 미국의 부시 정부와 맞물리면서 얼어붙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무엇을’은 있어도 ‘어떻게’는 없었다

    국민은 다른 정치인을 원했고, 노무현 후보는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그는 다르게 행동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3당(黨) 합당을 반대해 잔류했다. 이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를 반대하며 통합민주당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주류계파에 줄을 서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그는 보스 중심 정치, 계파정치를 타파할 대안으로 부각됐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의 행보는 더욱 신선하게 보였다. 떨어질 줄 알면서도 떨어질 지역에서 계속 출마하며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는 정치인을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했다.

    우리는 노무현의 ‘자기를 버리는 리더십’에 환호했다. 그는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됐으나 선거 승리를 위해 후보 단일화를 수용했다. 더구나 자신의 지지율이 낮은데도 여론조사 방식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전세를 뒤집고 승리했다. 우리는 그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 후보가 ‘무엇을 해결하겠다’고 한 데 대해 지지했을 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이토록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지는 상상도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 보내는 국민의 지지도는 20% 이하로 떨어졌다. 노무현 정부는 무엇을, 그리고 왜 실패하는 걸까.

    노 대통령은 당선 이후 탈(脫)권위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정치풍토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는 캐치프레이즈에서 드러나듯 ‘참여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을 표방하고 있다. 국민은 부패를 청산하고 기존의 초법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에 찬성했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이 국민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지, 국민과 똑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인에게 국민에 봉사하는 자세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실력도 자신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 봉사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버린다는 원칙적인 자세만으로는 훌륭한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한국의 문제가 참여정부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풀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라고 한다.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다. 세계화, 정보화라는 큰 변화 속에서 국가의 틀을 바꿔 나가야 하는 우리의 과제는 매우 구조적인 문제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미약한 대응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한마디로 참여정부엔 국가전략이 없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8월31일 중앙언론사 간담회에서 한 말처럼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토대인 경제성장에 대해 비전이 없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후보 때 잠재성장률 5.2% 갖고는 아무도 표를 주지 않을 것 같아서 6%로 하려니까 이회창 후보가 6% 하는 바람에 나는 좀 더해야 안 되겠나 생각해 7%로 했다가 우스꽝스럽게 됐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경제발전을 위한 목표가 불분명했음이 확실하다.

    부동산정책, 세금정책, 대북정책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전략 기조가 분명하지 않고 풍부하지 않으니 외부의 비판에 쉽게 흔들린다. 참여정부가 직면한 한국의 현실은 매우 복잡하며 갈등은 격렬하다. 한국이 겪고 있는 갈등과 고통은 세계화, 정보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생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이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의 갈등은 첨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재편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민주발전을 위한 제도정비까지 추구하고 있다. 정파 갈등, 세계화에 따른 계층 갈등, 미국과 북한을 둘러싼 이념 갈등까지 겹쳐 정치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문제가 복잡한 만큼 대응에도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문제에 상응하는 전략적 논의가 진행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있다면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모든 국민으로부터 비판받는

    나는 가끔 대통령이 매우 솔직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내 감정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체적 능력이야 나보다 훨씬 훌륭하지만 문제가 되는 발언에 담긴 대통령의 마음은 딱 내 마음이다. 그런데 나처럼 한 사람의 국민이라면 자신을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말이 그 분의 진심일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문제가 워낙 복잡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분은 대통령인 것을. 이미 선거에 나서서 지지를 호소했고, 국민은 공감해서 그 분을 선택했던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과 대통령으로 사는 과정은 확실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여정부가 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우선순위가 없다. 전략은 선택이고 단순화이며 버리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과제를 중심으로 순위를 재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너무나 많은 과제를 한꺼번에 제기했고, 그래서 너무나 많은 반대세력을 한꺼번에 양산했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진상규명법, 언론개혁법의 네 가지 법을 보면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는데 이를 일거에 처리하려 했다.

    이들 법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이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정치적 타격을 입는 집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지지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정치 현실을 무시하고 과욕을 부렸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정치 기반의 확대에 조응해서 낮은 수준의 문제부터 높은 수준의 문제로 단계적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골수 운동권 출신 386의 盧 정권 비판

    청와대에 짙게 깔린 안개는 언제 걷힐 것인가. 국민의 불신이 깊다.

    지역, 이념, 계층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참여정부의 지지 기반은 불완전하다. 특히 지역주의 타파와 참여정치 실현을 위해 열린우리당을 만든 후 기반은 더 취약해졌다. 그런데도 16대 총선의 승리에 도취해 정치적 기반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정부가 양쪽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신자유주의적 좌파’라는 대통령의 언급에서 확인된 것처럼,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자로부터는 좌파라는 비판을, 좌파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그리하여 거의 모든 국민으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처지에 몰려 있는 것이다. 개혁을 추진할 기반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슴 뛰게 하는 전략이 있는가?

    참여정부는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 대통령은 정책결정자면서 동시에 실행을 책임지는 행정부 수반이다. 대통령이 기업을 방문해서 격려하라는 참모들의 제안을 ‘쇼’라고 하면서 거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장에 돌아다닌다고 경제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특히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국민은 대통령의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우리는 말보다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확인한다. 행동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말은 일련의 행동과 조치로 확인되고 공유돼야 한다. 그래야 행동의 지표가 되고 전략이 된다. 행동한다는 것은 사람을 배치하고, 돈을 쓰고,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는 것이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경로가 곧 전략이다.

    대통령은 혹시 방향에 대한 언급과 몇 가지 정책결정으로 전략적 행동을 다 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략은 보고서에 있는 ‘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속에서 함께 뛰는 ‘기치’다. 이것이 몇 마디 말이나 조치로 공유될 수 있을까. 실천적 힘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한국에는 국민과 함께 숨쉬는 전략이 없다. 책상 뒤에 붙은 사진처럼 죽어 있는 문자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의 처지에서 체감하고, 우리가 가는 방향을 분명히 가리키며,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전략은 분명히 없다. 참여정부가 예산과 인력의 배치에서 집중하고 있는, 대통령이 발로 뛰며 설득하고 있는, 그리하여 국민이 공감해 실천하고 있는 한국의 공동 목표는 없다. 우리는 가슴이 뛰기를 원하고 있지만, 우리의 가슴은 아직 뛰고 있지 않다.

    참여정부는 하기로 한 것을 못하고 있다. 지지세력이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못할 것 같은 것을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하기로 한 것, 할 것 같은 것을 못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탈권위로 시작했지만 국민을 가르치는 독선으로 끝나가고 있다.

    검사와의 대화, 국정원 보고 거부 등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내놓으며 한국 사회의 탈권위를 추구했다. 부패 청산과 더불어 권위주의 해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큰 업적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갈수록 국민을 가르치려 한다. 청와대가 닫혀 있다는 지적은 국민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중성, 이중성, 이중성

    “국민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청와대의 어떤 ‘높은 분’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설령 국민이 틀려도 민주주의는 국민 수준만큼 나아간다는 원칙은 논외로 하자. 그러나 문제는 국민과 자신이 맞으면 “국민이 옳다”고 말하고, 국민과 자신이 다르면 “항상 국민이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중성에 있다.

    참여정부에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들도 기대 이하다. “국민이 나를 외교 잘하라고 뽑아준 것도, 외교를 잘할 것이라고 뽑아준 것도 아니고, 경제를 제일 잘할 것이라고 뽑은 것도 아니다”는 대통령의 말도 사실이라고 본다. 그러나 경제를 잘할 거라고 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못할 줄은 몰랐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와 국민생활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2003년 3.1%, 2004년 4.7%, 2005년 4%의 경제성장을 이뤘다. 외환위기를 겪은 김대중 정부 때보다 낮은 성적이다. 참여정부는 이런 결과가 김대중 정부에서 발생한 과도한 가계대출과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불가피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계신용을 급격하게 축소해 소비감소를 불러일으키고 국내경기를 위축시킨 것은 경제운용의 실패라고 봐야 한다.

    참여정부가 하기로 한 것은 꼭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신기하다. 부동산가격을 잡겠다고 하면 부동산가격이 올라가고,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하면 양극화가 심화된다.

    참여정부는 “반미(反美)면 어때?”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친미(親美)로 막을 내릴 것 같다.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처 내는 미군의 오만한 대응과 맞물리면서 지난 대선에서 큰 쟁점이 됐고,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미동맹에 대한 생각이 건국세대와 다른 젊은 세대는 “반미면 어때?” 라는 노 대통령의 말에 당당함을 느껴 그를 지지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집권 초반에 이러한 견해를 유지하는 듯했지만, 나중에는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견하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하는 등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참여정부 초기에 자주(自主)를 주장해 자주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역설이 작용했다. 자주는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미일동맹을 통해 자국의 안보를 추구하는 일본, 미국에 아부하는 일본의 군사력이 세계 2∼3위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여정부의 친미적 행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일관되지 못한 행동이 답답할 따름이다. 어떤 사람들은 참여정부가 방향은 옳지만 방법이 잘못됐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재들은 어디로 갔는가!

    선후배들에게 앞으로 국가운영을 대비하여 공부도 하고 네트워크도 구축하자고 제안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정책은 갖다 쓰면 되지, 연구할 게 뭐 있냐”는 것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 정책은 갖다 쓰면 된다. 하지만 내가 해본 바로는 그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정책을 갖다 쓰는 것도 정책을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전문성을 요한다.

    정책을 가져다 잘 쓰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가치판단의 능력이다. 이 능력을 갖춰야 충돌하는 기준들 중에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 다음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전략적 문제의식일 것이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전략이 없다는 얘기다.

    다음 정권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정치조직에 의해 창출되기를 바란다. 이를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정치조직에 의해 구성되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오늘 참여정부가 대응하지 못하는 갈등과 혼란이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런 면에서 현실은 답답하다. 7월11일 인터넷 TV를 통해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지켜보며 당 대표 후보들의 주장을 모두 들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난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당의장 후보들의 연설문에서 아무런 국가비전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한나라당의 당 대표 후보들에게서도 국가의 미래를 향한 힘찬 메시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 참여정부의 실패에 대한 비판과 다음 정부는 한나라당이 돼야 한다는 당위적 주장만 난무했다. 왜 한나라당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다.

    진정 노무현 정부만 아니라면 이 나라는 잘될 것인가. 지금 한국을 이끌고 갈 엘리트의 부재(不在)와 그 때문에 파생될 위기가 걱정된다. 세계화의 진전과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대한민국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야기하는 갈등과 과제를 해결하고 선진 한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민주발전과 경제도약을 함께 모색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지닌 광범위한 세력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구축되기를 희망한다. 성장과 시장을 주장하는 쪽에는 국민의 아픔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각 계층과 시민을 대변하면서 투쟁하는 단체들은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한국 전체를 놓고 좀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골수 운동권 출신 386의 盧 정권 비판
    윤진호

    1966년 전북 군산 출생

    고려대 산업공학과 졸업

    199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의장, 전대협 의장권한대행

    서울시 제2건국추진반 시민팀장, 파이언소프트 전략기획 이사, 2030유권자네트워크 정책팀장

    現 미래재단 이사


    다시 30, 40대가 나서야

    민주주의를 파괴했거나 이후 파괴할 세력이 아니라면 정치적 찬성과 반대를 떠나 서로 애국심을 확인했으면 좋겠다. 시장과 국가, 시민이 같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거버넌스(지배구조)가 튼튼하게 마련되면 좋겠다. 좀더 크고 깊은 깃발이 내 심장에서 펄럭이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변화를 위한 첫출발은 아마도, 자기가 처한 곳에서 혁신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 가족, 회사, 지역에서 나부터 내가 속한 작은 집단부터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더 향상된 생산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야 새롭고, 새로워야 선진 한국을 이룩할 수 있다. 문제는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와 행동이다.

    “지난 5·31 지방선거는 우리 세대의 우리 세대 자신에 대한 평가이며, 소수의 정치인이 아닌 30, 40대가 대중적으로 움직일 때 한국 사회의 대안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40대 초반 사업가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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