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과 권력의 홍보도구로 변질한 응원문화
- 오심 여론몰이, 즉각적 감독 교체는 16강 진출 실패 호도 목적
- 공중파 TV ‘싹쓸이 중계’는 세계기록감
- 경기 흐름 왜곡하고 룰 모르는 해설자들
- 국민적 열정과 자부심,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시민들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애국적 응원’은 상업자본의 상술로 이용됐다.
이 시각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다. ‘투혼’과 ‘대한민국’을 새긴 붉은 티셔츠의 FC코리아 응원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광화문과 시청 앞 주변 건물에 내걸린 초대형 걸개그림 중 일부만이 광고로서의 효용을 다한 채 남아 있을 뿐, 흥분과 열정의 붉은 물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06년 월드컵 관전을 위해 독일을 찾은 필자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받은 첫 느낌은 이곳이 과연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곳인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공항 입국 게이트에서부터 월드컵 관련 기업 광고물이 넘쳐나야 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도로 주변에도 월드컵 홍보 배너가 줄을 잇고, 세계 각국 응원단을 환영하는 대형 현수막과 전광판이 즐비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2006년 6월은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레 2002년으로 향하게 한다. 2006년 6월은 분명 4년 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보여준 것은 자율적이고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국민적 축제였다. 그러나 2006년의 거리응원과 경기장 응원은 자본과 권력의 도구로 변질되고 말았다. 시민의 공간인 서울시청 광장은 거대자본이 선점했고, 월드컵의 국민적 인기를 이용한 갖가지 상술이 등장했다. 월드컵을 정치적 의도로 활용하려는 세력의 발호로 순수한 국민적 축제는 퇴색했다.
응원문화도 변질되어 2002년을 빛나게 한 긍정적인 면모는 자취를 감췄다.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는 그것을 외치는 이들의 순수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광고 등 갖가지 부정적 요소에 의해 왜곡된 채 거대자본과 특정세력에 이용당했다.
공중파 방송은 막대한 광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 시청률 경쟁에 앞장섰고, 이에 편승한 광고주 기업들은 과도한 월드컵 마케팅 및 경쟁에 동참하며 월드컵 광기(狂氣)에 한몫을 담당했다. 방송의 공공성을 대표하는 메인 뉴스는 월드컵으로 도배됐고, 시사·교양 프로그램들도 하나같이 월드컵 특집으로 현지에서 제작되는 월드컵 일변도 편성이 이뤄졌다.
하루 21시간 월드컵 편성
2006년 6월, 월드컵 광풍(狂風)의 중심에는 언론이 있다. 방송은 시청률을, 신문은 판매 부수와 광고 수주를 높이고, 인터넷 매체는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됐다. 축구의 본질은 제쳐놓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결과에만 연연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애국심으로 포장된 비뚤어진 문화를 양산했다. 그 문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으로 매도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여기에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된 구호식 응원과 연예인이 동원된 조직적 응원은 승리만을 갈구하는 비이성적 패거리 문화로 탈선할 여지를 만들었다. 그릇된 애국심과 마녀사냥식 분풀이는 후폭풍으로 불어닥쳤다.
이런 사회적 병리현상에 기름을 부은 곳은 대한축구협회였다. 대한축구협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어게인(Again) 4강’목표를 설정하고 국민의 기대심리를 부추기며 현혹했다. 그러고는 16강 진출 좌절을 애꿎은 스위스전 주심의 오심(誤審) 탓으로 돌리며 실패를 호도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 걸린 월드컵 광고물이 철거되고 있다. 월드컵 기간에 시청 건물은 대기업의 광고판이 됐다.
미디어가 호들갑을 떤 가장 큰 이유는 월드컵을 이용해 한몫 보려는 상업자본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지상파뿐 아니라 위성방송, 멀티미디어 휴대전화와 DMB, 인터넷까지 월드컵에 매달렸다. 2002년 3개 지상파 방송사 4개 채널이 안면몰수하고 한국팀 경기를 중복 중계하면서 돈을 자루에 쓸어담을 때와 다를 바 없이 이번에도 자본과 미디어의 동맹이 형성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들의 동맹이 좀더 일찍 시작됐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스위스와 프랑스에 있어 홈구장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16강 통과가 만만해 보이지 않았고, 이는 월드컵 특수(特需)의 불투명성으로 작용했다. 상업자본은 바로 이 점을 염려했다. 수익 극대화를 가로막는 불투명성의 영향을 최소화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월드컵 특수를 하루라도 일찍 일으켜 그 기간을 최대한으로 늘리는 것이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메인 뉴스에 2006 독일월드컵 관련 소식이 빈번하게 등장한 것은 월드컵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였다. 2006년 5월11일부터 독일월드컵 개막 전날인 6월9일까지 30일간 방송 3사의 월드컵 관련 보도 건수는 588건(MBC 234건, SBS 231건, KBS 123건)으로, 하루 평균 19.6건을 쏟아냈다. 방송사 메인 뉴스의 꼭지 수가 대개 25~30건임을 고려하면 3분의 2가 월드컵 관련 소식으로 채워진 셈이다. 2002년엔 한일월드컵 개막일인 5월31일을 한 달 앞둔 5월1일부터 5월30일까지 방송 3사 메인 뉴스의 월드컵 보도는 386건(KBS 151건, MBC 129건, SBS 106건)으로 하루 평균 12.8건이었다.
토고전이 열린 6월13일, 지상파 방송 3사는 SBS 21시간, MBC 18시간30분, KBS 1TV 14시간30분, 2TV 11시간의 월드컵 싹쓸이 편성을 했다. SBS는 분명 세계기록감이고 공영방송 MBC의 무모함 또한 경이적이다. 이는 개최국인 독일이나 아시아의 다른 참가국인 일본보다 두세 배 높은 편성 비율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월드컵을 공공재로 분류해 5개 지상파에 의한 무료시청을 원칙으로 하지만, 월드컵을 주로 중계하는 BBC1과 ITV는 모든 경기를 빠짐없이 중계하되 일정이 겹치지 않게 사전에 조정한다. 일본도 NHK와 5개 민방이 돌아가며 중계하고, 개최국 독일은 공영 ZDF, ARD와 민방이 사전 조율을 통해 중복 중계를 피했다.
국내 공중파 TV에서는 월드컵 관련 방송시간이 당일 총 방송시간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SBS의 상황은 매우 심각해 한국팀 경기가 있는 날에는 총 방송시간 가운데 절반 이상을 월드컵 프로그램에 할애했다. MBC 또한 6월13일과 18일 총 방송시간의 절반 이상이 월드컵 특집방송이었고, KBS2는 6월18일과 23일, KBS1은 6월13일에 이러한 현상을 나타냈다.
2006 독일월드컵 개막일인 6월10일부터 30일까지 21일간 방송 3사의 메인 뉴스에 등장한 월드컵 관련 소식은 무려 842건으로 하루 평균 40건에 달했다. MBC는 358건을 보도했는데 이는 하루 17건꼴이다. SBS가 290건을 보도하여 하루 13.8건, KBS가 194건으로 하루 9.2건을 기록했다. 한국팀 경기가 있는 날엔 보도건수가 더욱 많아져 토고전이 있던 6월13일 MBC는 40건의 보도로 전체 보도 꼭지 수(47건)의 85.1%를 월드컵 소식으로 채웠다. KBS는 37건으로 전체(49건)의 75.5%, SBS는 26건으로 전체(33건)의 78.8%를 월드컵 관련 보도로 구성했다. 프랑스전이 열린 6월19일과 스위스전이 열린 6월24일을 전후해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언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사회 환경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국민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는 않는지, 정부의 시책은 타당한지, 사회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월드컵 기간 중 뉴스를 비롯한 방송 프로그램은 그러한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하지 못했다. 반짝 인기에 영합해 스포츠 축제와 스포츠 스타를 찾아다녔고 결국 우리 사회를 월드컵 광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의 공영성과 다양성 등 방송언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외면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낯 뜨거운 해설
이런 태도는 시청자에게 왜곡된 축구문화를 전파함으로써 심각한 문제점을 양산했다. 무조건 이겨야 하며,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논리를 부채질했고, 결과와 기분, 애국심을 심판 판정의 잣대로 들이댔다. 스위스전 심판의 오프사이드 판정에 관한 여론몰이식 재판, 그리고 비뚤어진 애국심에 기대 반대편의 의견을 난도질하는 비이성적 떼거리 심리 조성이 그 예다. 방송은 자료화면을 가지고 충분히 검토하고 분석할 수 있는 매체임에도 자사 해설자의 해설 내용에 따라 이를 왜곡된 화면으로 편집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했다.
해설자들의 전문성 결여도 방송의 질을 떨어뜨렸다. 축구는 룰이 단순하고 심판에게 많은 재량권이 부여된 종목이다. 따라서 경기의 흐름을 정확히 보지 못하면 경기 내용 자체를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해설자에겐 경기의 흐름과 룰, 숭고한 스포츠 정신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전문적 식견이 요구된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경기 흐름을 왜곡하고 룰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해설자들을 기용해 심각한 오류를 전달했다.
스위스전 오프사이드 판정말고도 그런 사례는 많다. 특히 페널티킥 선언에 대한 ‘제멋대로 해석’은 충격적이었다. 프리킥 때 벽을 쌓은 선수들이 심장과 얼굴, 급소를 가리고 있던 손에 공이 맞았는데 핸드볼 반칙을 선언하지 않는다며 심판을 비난하는 해설자도 있었다.
또한 중계방송 도입부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연예인을 동원하는 등 지나친 시청률 경쟁으로 축구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청 앞이나 방송사 로비, 또는 방송사들이 지정한 공개된 장소에 동원된 연예인들은 입만 열면 “애국” “승리”를 외치며 시청자를 ‘애국심 환자’로 몰고 가는 나팔수 노릇을 했다. 한국팀의 현지 연습장과 경기장에는 연일 연예인이 동원되고 촬영과 인터뷰 공세가 이어지는 통에 선수들이 경기에 몰입하지 못할 정도였다.
입만 열면 “애국” “승리”
한국팀의 탈락으로 월드컵 열기가 식은 뒤에도 방송사가 월드컵 프로그램을 중복 편성한 것은 이미 판매된 광고 때문이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관련 광고를 이미 판매한데다 FIFA에 고액의 중계권료를 지급했고 독일 현지 특집 프로그램 제작 등으로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해명한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방송 3사가 한국팀 예선 3경기 기간 중 경기 중계와 특집 프로그램 편성 등으로 기대했던 광고 수입은 800억원 규모다. 이 중 실제로 판매된 광고는 전체 물량의 60%대인 500억~600억원. 각 방송사의 수입이 200억원에 이르는 셈이다.
그러나 지상파 3사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주장한다. 방송 3사가 방송협회를 통해 FIFA에 지급한 중계권료는 2500만달러(236억원)이다. 여기에 각종 특집 프로그램 제작비용, 방송사별로 200~300명에 이르는 현지 취재인력 파견비용 등을 합하면 각사 지출은 200억원이 넘는다는 것. 한 방송사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거나 소폭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한국팀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방송사 광고단가도 수직상승하므로 16강 진출을 학수고대하던 상황이었다. 2002년처럼 4강에 진출할 경우 예상되는 방송 3사의 총수입은 1180억원 규모였다.
온 국민이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염원하는 가운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상업자본이다. 응원은 국민이 알아서 잘할 텐데도 이들은 ‘조국’ ‘대한민국’을 들먹이고 ‘하나가 되자’ ‘할 수 있다’면서 응원단장이라도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4년 전엔 어느 기업이 응원구호와 팔 동작을 친절하게 가르치더니 이번에는 그 경쟁 기업이 ‘응원하기 전엔 체조도 하셔야 된다’며 ‘국민체조’까지 가르치려 했다.
상업자본이 우려했던 것 역시 월드컵 특수의 단축이었다. 이를 돌파하려 동원한 것이 바로 ‘애국 마케팅’이다. ‘한국’ ‘대한민국’을 외치고 태극기를 앞세워 광고를 찍으면서 슬쩍 회사 이름을 집어넣었다. 한국처럼 ‘축구 애국주의’가 사회를 온통 뒤덮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4년마다 등장하는 ‘주기적 애국’이라면 그 본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상업자본은 월드컵 기간에 ‘꿈은 이루어진다’며 국민에게 끊임없이 최면을 걸었다. 4년 전 붉은악마가 카드섹션으로 선보인 이 문구는 이제 기업광고의 단골 메뉴가 됐다. 꿈이란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이다. 꿈꾸는 ‘나’는 현실의 ‘나’와는 항상 단절되어 있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면서도 불합리하고 근거 없고 괴기한 그 무엇이다. 따라서 꿈은 현실에서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상업자본의 주문(呪文)은 서민에게 고단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마약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4년 전 이런 최면을 통해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경험이 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이른바 월드컵 경제효과를 독식했다. 서민에겐 추억만이 남았을 뿐, 건더기는 그들이 다 주워갔다. 이제 월드컵은 호객꾼들로 북적거리는 대목시장으로 변해버렸다.
빗나간 화살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을 떠나면서 “대표팀이 2002년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은 2002 월드컵 4강의 기쁨에 취해 이후의 장기 플랜을 세우지 않았다. 졸속적인 감독 선임으로 비난을 자초했고 우왕좌왕하다가 시간만 보냈다.
대한축구협회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오자 마치 히딩크가 재림한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다. 언론도 비판을 자제하고 마지막 카드인 아드보카트 감독을 밀어줬다. 그런데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축구협회로 향해야 할 비난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스위스전 두 번째 골에 대한 심판 판정 논란이 그것이다. 그뿐 아니라 축구협회는 독일월드컵을 준비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제쳐놓고 핌 베어벡 신임 감독을 밀어주자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6월25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귀국길에 오르는 대표팀을 배웅하러 나온 정몽준 회장은 “FIFA에 스위스전 심판 판정에 대해 공식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대한축구협회장이기 이전에 FIFA 부회장의 발언이라 이는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정 회장은 말을 바꿨다. 7월4일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나 역시 쉽게 수긍할 수 없지만 축구란 원래 그런 것이다. 잘못된 판정도 판정이며 그것이 냉엄한 현실이다”라고 한 것. 박지성이 스위스전이 끝난 뒤 “심판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밝힌 대목과 일맥상통하는 발언이다.
FIFA에 항의한다고 했으면 그 결과를 밝혀야 할 것이고, 그 후 생각이 바뀌었다면 바뀐 까닭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명쾌한 해명이 없다. 단순히 격앙된 국민감정에 호응한 차원이라면 신중하지 못한 언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년 만에 다시 외친 6월의 함성은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 잦아들었다. 이번에도 월드컵의 의미는 축구경기 이상이었다. 4년 전 월드컵이 우리에게 내재된 엄청난 힘과 열정을 발견한 기회였다면 이번 대회는 놀라운 한국적 에너지의 세계화와 국민적 자부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K리그 살리기
앞에서 지적했듯 응원 열기에 대해 지나친 획일성과 국가주의 경향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정치적 이념과 세대, 지역, 빈부 등 온갖 차이를 넘어 모두가 하나임을 재확인한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국민적 열정과 자부심을 국가발전의 큰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는 국민통합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4년 전의 귀중한 통합 에너지를 대책 없이 소모해버린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고와 인식의 전환이다. 월드컵이란 축제를 오래도록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월드컵 무대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러려면 대표팀의 전력이 강해야 하고, 대표팀 전력을 강하게 만들려면 자국 리그가 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은 어떤가. 여전히 ‘대표팀 올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6월28일 호주 언론들과 한 고별 기자회견에서 “잘 정비된 큰 규모의 자국 프로리그를 갖고 있지 못하면 월드컵 패권을 차지할 수 없다. 축구는 유럽이 주류다. 그래서 최고의 선수들이 유럽으로 몰린다. 호주도 강하고 경쟁력 있는 자국 리그를 갖고 있어야 축구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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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감독이 호주 축구에 남긴 고언(苦言)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도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뤄냈지만 K리그는 4년간 제자리 걸음을 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탄탄한 자국 프로리그가 없다면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6월27일 고별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감독과 비슷한 말을 했다. K리그를 유럽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아드보카트 감독의 한국 축구에 대한 마지막 조언이었다.
월드컵에서 실패할 때마다 프로축구 활성화는 한국 축구의 ‘당면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더는 이 과제를 미뤄서는 안 된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K리그를 활성화하는 것만이 한국 축구의 살길이다. 그렇게 해야 다가오는 2010년, 우리는 더 오랫동안, 그것도 제대로 된 월드컵 축제와 축구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월드컵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축구를 너무나 사랑하는 4700만 국민이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