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지도자들의 골프가 사회적 쟁점이 되곤 한다. 그러나 골프에 담긴 신성(神性)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바뀔 것이다. 오히려 정치지도자들에게 골프를 권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과 내가 하나 되는 수련의 도장이 골프장이기 때문이다. 수련과 구도(求道)의 일환으로 골프를 친다면 골프의 위상과 골프인의 품격은 한층 높아질 것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의 품위도 올라갈 것이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도 세상이 바뀐다는 말은 많았지만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빨라 혼란스러운 경우는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그렇다.
과학으로 우주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느낀 만큼 대안을 모색하느라 신(新)과학운동이니 인지과학이니 하면서 4차원 세계를 탐닉하고 있다. 종교도 객관적인 신의 세계에서 주관적인 나의 내면을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통제와 권위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이 우선시되는 위대한 정보기술(IT) 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문화 쪽에서는 개인의 영성(靈性)을 추구하는 경향이 유행한다. 가히 코페르니쿠스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다. 역사가들은 중세 신의 시대를 암흑기라 부르지만, 지금은 차원을 달리한 새로운 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변화의 흐름과 본질에 대한 통찰 없이 현상에 대한 대처방법만 난무한 탓에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 물질 위주의 세계관, 과학만능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정신세계의 도래가 새로운 화두가 된 이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없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사물만을 탐구하는 자연과학, 인체를 생리와 해부학적으로만 연구해온 의학, 인간을 감정 위주로 분석한 심리학, 몸 자체만의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 등이 엄청난 파장을 맞아 변화를 모색하는 시대인 것이다. 좀더 고차원적으로 이야기하면 시간과 공간, 주관과 객관, 정신과 육체의 분류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고감도 느낌의 세계관’이 앞으로의 시대를 주관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나와 남의 구분이 없는 세계, 대상이 주관과 합치는 세계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느낌의 세계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과거 우리 선조가 행한 수련으로 영성을 진화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분명 동물적 삶의 패턴을 바꾸는 영성의 시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삼각 깃대는 天地人 사상의 산물
신라시대 박제상이 쓴 ‘부도지(符都誌)’에는 우리 선조의 영성 위주 생활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땅의 젖을 먹었으니 치아가 필요 없었고, 기(氣) 수(水) 화(火) 토(土)를 넘나들었으니 생의 한계가 없었으며, 뜻으로만 통했으니 말이 소용없었다.’
우리 조상이 영성시대의 삶을 영위하는 수련을 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것이 신선도, 풍류도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라는 이름으로 종교가 됐으며, 한국에서는 태권도, 유도 등 무술의 형태로, 최근에는 기수련 등으로 깨달음의 세계를 위한 공부(중국말로는 ‘쿵푸’)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무술을 통하든 수련을 통하든 명상을 통하든 정신세계에 접근하는 것은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는 한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스포츠 열풍은 심신(心身) 수련의 전통이 되살아나는 조짐이다. 몸과 마음을 무의식인 절대세계와 연결하고 싶은 본성의 작용이 스포츠로 녹아든 것이다. 마라톤·조깅·등산은 하체를 움직여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테니스나 배드민턴은 손의 감각으로 하는 운동이며, 공으로 하는 축구·야구·배구는 전신감각 개발운동으로서 몸 위주의 스포츠다.
그런데 자연과의 합일을 통한 범우주론적인 철학이 있으며, 동반자와의 인간적 합일을 통한 홍익인간의 사상이 있고, 걷기와 스윙을 통한 체력증강, 그리고 나 자신을 무아의 경지로 이끄는 열반의 정신세계가 있는 운동이 있으니, 바로 골프다.
천지의 정신은 둥근 공과 둥근 홀이 만나는 것이요, 삼각 깃대는 천지인(天地人)을 아우르는 정신이며, 스윙은 신체의 조화, 골프채는 과학이다. 스윙의 메커니즘으로는 단전호흡이 있고, 퍼트로는 집중과 이완의 음양관적 정신수련이 가능하다. 골프장 구조에는 공(空) 사상 등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
골프를 자연과의 합일을 통한 심신수련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호쾌한 스윙에 이은 하얀 포물선, 푸른 잔디 위에서 내가 녹아들어가는 무아의 경지, ‘구멍’을 탐닉하는 집요함 등….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연에 집착할까. 콘크리트 아파트의 삭막함과 아스팔트의 무미건조함, 자동차의 금속성에 대한 반사작용에서인지, 아니면 자연이 우리의 고향이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연과 함께하는 그 자체가 살아 있음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요 진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최고, 최후의 스승은 자연
골프의 수련적 성격을 이해하려면 먼저 자연에 대한 관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철저하게 사람 중심이다. 산업혁명 결과 빚어진 전 지구적 위기는 인류로 하여금 자원고갈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으며, 에너지의 지역 편중, 환경오염,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일방적으로 착취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갖게 된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아는 것이 힘이다’며 자연을 조각내어 인수분해한 베이컨의 패러다임이다. 둘째는 자연을 비(非)신격화한 맥락과 동일하게 정신과 물질을 분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이고, 셋째는 인간중심 세계관을 가르치는 성경이다.
서구의 생태학적인 논리로는 이런 오류를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다. 고대의 물활론적 자연관, 스피노자의 범신론, 루소의 자연관 등 과학의 토대가 됐던 가치관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오랜 옛날 우리 선조가 가졌던 자연관에서 그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영어의 ‘nature’는 우리의 눈 저편에 있는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사물을 뜻한다. 그러나 전통적 동양사상에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을 뜻한다. 즉 사람이 자기 눈으로 바라본 인식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은 먼지나 공기, 풀, 나무, 산과 물 등 우주만물이 존재한다는 것과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두 개의 틀을 그냥 놓아버린다는 뜻이다. 사유냐 존재냐 하는 철학적 고뇌는 서구적인 것이고 무(無)와 공(空)이라는 현학적 탐구는 동양적인 것이다. 자연을 동양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골프장 구조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수련자나 고승은 몸의 체력적 완성, 고른 호흡, 명상 세 가지 방법으로 영성을 계발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정(精)·기(氣)·신(神)이라고 하고, 수련자들은 성(性)·명(命)·정(精)이라 일컫는다.
정은 고른 호흡과 바른 마음, 바른 행동으로 최고 상태의 몸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수행하면 아랫배에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고 달걀만한 단(丹)이 만들어짐을 느낄 수 있다. 기는 가슴을 열리게 하는 것으로, 마음수련을 뜻한다. 마치 가슴에서 박하 향기가 뿜어 나오는 듯한 시원하고 향기로운 느낌을 갖게 된다.
신은 두뇌의 빛을 느끼는 것으로서 머릿속이 환해지며, 온갖 사특한 잡념과 4차원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통상 수련자들이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는 이 단계에 대한 개개인의 경험으로서 사이비 잡도사가 공갈하는 무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올바른 호흡과 자세를 배우는 데는 스승이 필요하다. 마치 골프를 시작할 때 세미프로에게 배우는 것처럼. 그러나 스승의 가르침은 한계가 있다. 더욱 뛰어난 사부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일본의 전설적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가 낭인 시절 훌륭한 사부를 만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검술 가문을 찾아갔을 때, 무사시의 자질을 알아본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골프는 자연과의 합일을 통한 심신수련의 운동이다. 사진은 ‘골프 천재’ 미셸위의 아이언 샷.
이 말에서 깨달음을 얻은 무사시는 자신의 도를 완성한다. 무려 69명의 최고 검객을 상대해 이겼으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이기고 자연과 함께하는 경지에 올랐다.
공자의 道, 그대로 적용
골프도 입문할 때는 당연히 기초를 가르쳐주는 선생이 필요하다. 프로에게 배우면 확실히 감각이 나아진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으로 프로 자격을 획득한 사람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배우기 때문이다. 수련자도 마찬가지다. 골프의 프로와 같은 사람에게 수련법을 익히면 확실히 나아진다. 마치 어느 고승 밑에서 득도(得道)했느냐를 따지는 스님의 세계와 같이.
그러나 골프든 수련이든 최후의 스승은 자연이다. 골프에 빠지면 골프를 모르고, 수련만을 위한 수련을 하다 보면 자기집착에 빠져 득도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바다에서 헤엄치면 바다가 넓은 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연을 진정한 스승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겸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인간행동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를 잊어버리는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생존활동 이외에 인간이 탐닉하는 주요 행위로 놀이가 있다. 어린아이의 소꿉장난부터 어른의 고스톱에 이르기까지 놀이는 사람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력소다.
놀이의 특징은 한마디로 몰입이고 그 동기는 재미다. 이에 비해 스포츠는 경쟁을 통한 성취감을 추구한다. 놀이가 자신의 내면에 몰입해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면 스포츠는 상대와 겨룸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도는 어떠한가. 놀이의 극대화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듯하고, 스포츠나 체육의 범주에 넣기도 애매하다. 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형이하학적이다. 그러나 또한 내면세계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놀이와 통하는가 하면, 몸이라는 수단으로 느낌세계(이를테면 깨달음 등)를 인식한다는 면에서는 스포츠의 냄새를 풍긴다.
놀이와 스포츠는 모든 움직임의 내면에 흐르는 형이상학적 길을 일컫기 때문에 결국 ‘한다’와 ‘배운다’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 도는 ‘닦는다’라는 용어가 적당하다. 이는 몸과 마음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걸러내고 하늘이 준 최적의 상태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몸도 더럽고 마음도 더럽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즉 몸은 운동을 통해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고, 마음은 욕심을 제거하고 거울같이 맑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만일 몸과 마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놀이나 스포츠가 있다면 그야말로 ‘도를 닦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자가 이야기한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스스로 그러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게임, 머리를 비우고 배를 채우라는 도 닦음의 경지에 어울리는 수련적 운동이 있음을 알게 되면 곧바로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빠지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운동, 골프가 바로 그러하다.
골프는 내가 심판이 돼 상대를 배려하는 매너, 자연과 아울리는 천지인 사상, 과학과 자연의 결합, 욕심을 다스리는 절제 등 시작부터 끝까지 심신을 수련하는 운동이다. 스윙의 메커니즘에는 기(氣)의 축적과 발산이 있고 퍼트에는 고도의 몰입이 있다.
“거 참 이상하게 안 되네”
골프에는 공자의 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철학이 있어야 좋은 점수를 낼 수 있으니 지(知)요, 성급함을 달래야 하니 인(仁)이요, 동반자는 절대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니 신(信)이요, 스스로에 대해 엄격해야 하니 엄(嚴)이요, 아무리 어려운 코스도 내 식대로 공략하니 용(勇)이다.
수련의 체계가 있고 자연의 철학이 있으며 홍익인간의 실천이 있으니 가히 도 닦음의 스포츠라 할 만하다. 또한 스포츠이자 놀이이고, 자연을 알고 이에 순응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수련하는 것이기에 정신수양의 도학이라 일컬을 만하다.
사람들은 골프를 치다가 제대로 안 될 때 108가지 이유를 대곤 한다.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고 와서….”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캐디가 맘에 안 들어….”
아마도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와 망상을 염두에 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최후의 변명, 109번째 이유는 “거 참, 이상하게 안 되네”이다. 이것은 골프가 심리경기이고 경기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상(異常)이란 평상시와 다른 상태를 뜻하는데, 평상이란 마음이 안정되고 육체적으로는 최적의 조건이어서 ‘언제나 늘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상성(異常性)’의 상태란 무엇을 뜻할까. 단언컨대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이분법적인 논리다. 전통적인 동양사상에서는 삶을 퍼즐조각처럼 조각조각내서 요건 요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대한 모호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싸우는 동안에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오랫동안 심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심연도 당신 속으로 들어와 당신을 들여다본다.”
무엇이 주관이고 객관인지를 생명체인 삶은 잘 모른다는 뜻이다. 육체와 정신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스스로 느끼는 방법이 있다면 인생이 확 달라지지 않을까. 골프를 하면서 이상하게 안 되는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제2의 최경주나 박세리가 무더기로 탄생하지 않을까.
기나 선(禪), 명상을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무슨 사이비 종교나 신비주의, 상업주의를 떠올린다. 하지만 내면세계를 현대식으로 풀이한 수련원리나 방법을 알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정신세계를 경험하려던 사람들이 대부분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은 기와 선의 세계를 자신이 경험한 대로만 인식하고 이해하려 들기 때문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설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태도가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골프와 도의 관계를 먼저 이해하고 난 다음 깨우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대충 치고 후회하는 陽的 타입
감정이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봤는가. 마음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도, 육체가 마음을 지배한다는 것도 맞지 않는 말이다. 몸과 마음은 구분돼서 서로 영향받는 게 아니라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면서 둘인 관계다.
그러나 세심(洗心), 즉 마음을 씻는다는 관점에서는 감정이 육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한의학적 견해에 일리가 있다. 감정이 지나치면 육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데 심하면 건강을 잃는다. 마음이 중용(中庸)을 지키지 못하면 생활에서 편향된 기질이 나타난다. 이것을 체질로 설명한 것이 음양론(陰陽論)이다.
사상(四象)체질은 음양을 세분해 태양, 소양, 태음, 소음으로 나눈 것이다. 일반인은 그 구분방식에 자신을 대입해봐도 어떤 체질인지 잘 모른다. 즉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는 기본 전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음양론으로 몸과 기질을 구분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양적인 사람. 체온이 보통사람보다 높지만 일정한 한도를 넘지 않고, 바깥날씨가 추워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얼굴색이 붉으며 침착한 편이고, 소변 양이 많지만 횟수는 적다. 자극적인 음식도 잘 소화하고 몇 끼를 굶어도 맥없이 늘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질은 용맹스럽고 인내심이 강한 반면 치밀함이 부족해 덜렁댄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 편이다. 머리가 뛰어나 문제의 핵심을 잘 짚어낸다. 지도자나 CEO로 적격이다.
음적인 사람은 체온이 낮은 편이고 바깥기운에 큰 영향을 받는다. 피부가 곱고 토실토실하며 얼굴색은 희거나 검은빛을 띤다. 음료수를 즐기고 음식을 가려서 먹는 편이다. 소변을 자주 보고 분량도 적다. 호흡할 때에는 들이쉬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더 길다. 기질적으로는 침착하고 분석적이며, 매사에 이치를 따지는 완벽주의자가 많다. 대체로 참모형이다. 주어진 업무를 잘 수행해 윗사람에게 인정을 받지만 저돌적인 추진력이 부족해 CEO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다.
골프채는 14개로 이뤄진다. 14는 성서의 자연관을 뜻하는 성스러운 숫자다.
양적인 사람은 대충 치기 때문에 실력만큼 점수가 나지 않는다. 결과에 대해 대범한 편이지만 뒤늦게 후회하는 경향이 있다. 골프를 친 다음날 ‘에고, 내가 왜 그리 실수를 많이 했을까’ 하는 것이다. 양적인 사람들 중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세심이 필요하다.
▲골프보다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데 신경 씀 ▲캐디에게 보자마자 반말 ▲돈내기 액수를 부풀려 호방한 척함 ▲쉬지 않고 음담패설을 늘어놓음 ▲스스로 공을 좋은 자리에 갖다놓음 ▲경기 룰을 자기 맘대로 정해놓고 플레이하는 황제형 ▲캐디한테 팁 주고는 생색냄.
그밖에 정신감정을 받아야 하는 ‘알까기형’이 있는데 그 행태가 다양하다.
▲호주머니에 공 두 개를 넣고 다니면서 OB(Out of Bounds)가 나거나 로스트 때 던져놓은 다음 찾았다고 고함침 ▲발끝으로 슬슬 치기 좋은 자리로 공을 밀어 넣음 ▲바지 호주머니 밑동을 뜯어놓고 호주머니로 공을 슬쩍 넣음 ▲공에다 줄 그어놓고 퍼트 ▲상대방이 퍼트하는 순간 딴죽을 검.
”어프로치는 결실을 뜻한다. 태어나서 열심히 살다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 행위다. 홀인, 즉 공을 구멍에 넣는다는 것은 또 다른 탄생을 위한 죽음을 상징한다.”
공에 목숨 거는 陰的인 사람
이에 비해 신중하게, 몇 번이고 연습스윙을 하면서 재고 또 잰다면 음적인 사람이다. 상당한 실력자이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겸손한 편이며, 잘못된 샷에도 속으로 끙끙 앓을 뿐 겉으로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음적인 사람에게 세심이 필요한 경우는 이런 행동이 나올 때다.
▲진행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재고 또 재서 남의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섰다 맨’ 플레이 ▲공에 목숨을 걸기라도 하듯 잃어버린 공 하나를 끝까지 찾아다니며 동료나 뒤팀에 폐를 끼침 ▲캐디 의존형. 50야드도 안 남았는데도 묻고 또 묻고, 본인이 잘못하고서도 거리나 방향이 틀렸다고 투덜거리고, 그린에서 라이 봐달라고 매번 주문함 ▲성적 안 나온다고 짜증내거나, 돈 잃었다고 투덜거려 옆사람에게 부담을 줌 ▲미스 샷 나왔다고 클럽을 팽개침 ▲로컬룰을 무시하고 아부형으로 골프를 침 ▲좋은 자리에 공 놔주고, OB 나면 멀리건 주고, 디보트는 밖으로 내줌.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안으로 움츠러들면서 핑곗거리만 찾는다.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잔뜩 욕심을 부리고 자기가 잘났다고 착각하는 유형이다. 조금이라도 손해는 보지 않으려 하고, 책임은 부하에게 미루고 상은 자신이 챙긴다.
그밖에도 이런저런 면에서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은 음양 구분에 관계없이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 비 오는 날 양말 속에 바지 끝단을 구겨넣는다거나, 자신이 부킹해놓고 예약시각이 지나 나타난다거나, 음식 싸들고 와서 티 그라운드에서 짭짭거린다거나, 여자와 같이 와서 레슨 핑계대고 기술(?)을 건다거나….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골프장 경영자에게도 도가 필요하다. 천민상업주의에 물들어 회원보다도 일반인 부킹에 더 신경 쓰고 골프장 직원을 머슴이나 하녀 부리듯이 하는 사장들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에 대한 통찰과 인간의 도리를 설명하는 책으로는 주역(周易)이 최고다. 주역은 태극과 음양, 사상, 팔괘(八卦)를 자연 법칙대로 상징화할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초자연 현상을 설명한다. 주역에는 또 사람의 무의식세계가 절대 공간과도 연결된다는 형이상학적 체계가 정립돼 있어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독일의 유명한 심리학자 카를 융은 주역에 심취해 무의식 심리관을 정립하기도 했다.
그 주역에 골프장을 9홀로 한 이유와 인, 아웃 코스를 합한 18홀의 비밀을 설명한 내용이 있다. 골프장을 드나들면서 왜 10홀, 또는 7홀을 정규코스로 삼지 않았을까 하고 의문을 품었다면 이미 자연에 대한 동양적 관(觀)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도가 있으면 이치가 있고 그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 수(數)라는 얘기가 있다. 수로써 창조와 변화의 법칙을 설명한 것이 바로 주역이다. 주역에서 우주삼라만상을 표현하는 상징부호는 음(--)과 양(-)이다. 음양이 맞물려 5개의 기(氣)를 조화롭게 운행시켜 사람과 만물이 묘하게 태어나고 사라지며 각각의 운명 격(格)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수리철학으로 보면, 천지는 하나(1)에서 시작해 아홉(9)으로 꽉 찬 상태가 되며, 가득 찬 다음 단계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無)와 공(空)의 절대세계만 존재한다고 한다. 이를 수로 표시한 것이 하나(1)와 없음(0)을 합한 10이다. 10은 가득 찬 상태에서 더 오를 수 없는 완벽함을 나타내는데, 이후의 수는 다시 1부터 시작해 11, 12 식으로 표시한다.
10을 한자로는 十으로 쓰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상(ㅣ)과 땅의 표시(ㅡ)가 합쳐진 글자이며 음과 양이 합한 무극(無極)의 상태를 뜻한다. 요즘은 이 말이 욕으로 쓰이는데, 원래는 하늘의 상징인 남자와 땅의 상징인 여자가 합하면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극도의 무아경(無我境)으로 몰입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즉 ‘십(十)할 놈’ 하면 ‘도사가 돼 하늘의 이치를 아는 사람’쯤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단군신화 이래로 동물의 에너지가 사람의 영성과 합해지다 보니 그만 종족보존을 위한 행위를 뜻하는 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조선 상고사의 ‘천부경(天符經)’에는 모든 숫자의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조선 상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환인시대의 12환국 중 ‘수밀이’국이 있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수메르 문명을 우리와 같은 뿌리로 본다.
주역과 마찬가지로 ‘천부경’에서도 우주의 생성원리와 순환원리를 수리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 즉 하늘은 절대무변의 세계로서 만물의 아비가 되는 고로 하나(1)로 쓰고, 하늘·땅·사람이 분리돼 의식과 몸을 만들므로 셋(3)이 나오며, 여기서 목·화·토·금·수의 다섯 기운(5)이 서로 어우러져 우주만물이 생성된다고 했다.
9방 격자, 인체의 구멍, 구구단, 바둑
여기에서부터 숫자로 그 상징성을 나타내는데, 하나에서 나누어진 셋, 즉 천·지·인과 오행(五行)이 태양과 달의 작용을 받아 일곱(7)이 나오므로 1, 3, 5, 7, 9를 양수라고 했다. 음수의 원리는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므로 둘, 음양이 사상(四象)을 낳으므로 넷, 사상에서 8괘가 나오므로 2, 4, 6, 8을 음수라고 한다.
따라서 양수와 음수가 합하면 우주만물이 묘하게 얽히고설켜 꽉 찬 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아홉(9)으로서 숫자의 최정점으로 보았다. 아마 100년 후에는 정설이 될 터지만, 우주의 차원이 9방 격자로 구성돼 있다는 논리를 요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선도(禪道) 수행자라면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우주의 수가 아홉인 것은, 수성과 금성 등 태양계의 별자리 수를 9개로 본 천문학적 지식이나, 인체의 구멍을 9개로 파악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여자에게 ‘구멍’이 10개인 것은 마지막 구멍을 비어 있는 음으로 보고 이것을 상대적 양과 결합하기 위한 무(無)의 상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궁(子宮)이라 했다. 즉 열매를 가두는 신성한 장소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서 자(子)는 아들이 아니라 열매를 뜻한다. 오미자, 구기자 할 때의 용법처럼….
인체에 구멍이 아홉 개라는 점에 대해 사주팔자를 다루는 명리학(命理學)에서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만물은 빛에서 나왔다. 빛의 수는 무지개의 일곱 색에 적외선과 자외선을 합해 아홉 개다. 당연히 인체의 구멍도 아홉 개다. 보이는 구멍 일곱 개는 얼굴에 있고 보이지 않는 구멍 두 개가 아래에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여자는 달빛을 더 포함해 10개다.’
또한 죽음의 세계를 일컫는 구천(九天)은 원래 태어난 하늘자리로 돌아감을 뜻한다. 또 중국에서는 가장 먼 거리를 구만리(九萬里)로 표현하고 수련자들은 상단전의 9번 깨침을 천화(仟化)라고 한다. 공자가 동이족, 즉 신선들이 사는 나라를 구이(九夷)라고 표현한 것이나 신라의 벼슬자리가 9품으로 나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또한 9를 두 번 곱하면 81로 천지간의 조화이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구구단이나 정신스포츠인 바둑판 줄 수 및 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의 글자 수가 81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릇 하늘은 조화요, 땅은 교화요, 사람은 치화로 이루어진다는 우리 선조의 가르침이 천부경과 바둑판의 현묘함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왜 골프장을 9홀로 만들었는지 이해될 것이다. 9홀뿐만 아니라 기준타수와 공 모양, 동반자 수 등 하나하나의 게임규칙이 동양적 우주관이나 깨우침의 세계와 관련돼 있다. 더군다나 골프채와 스윙의 원리, 각종 자세가 도의 세계와 일맥상통하므로 수련을 조금이라도 한 사람은 이 경기에 녹아 있는 깨우침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 정신문명을 여는 놀이의 세계는 바둑이요, 서양 스포츠에서 깨달음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놀이는 골프다. 마음을 열고 무심(無心)의 세계를 알아야 일정한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도의 스포츠, 마음이 완전히 무화(無化)될 때 비로소 오를 수 있는 세심의 경지…. 이제 골프가 서양에서 시작된 놀이지만 동양의 오묘한 정신세계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해주는 18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자.
18홀과 6개의 감각
18을 우리말로 읽으면 욕이다. 아마 골프처럼 음담패설이 넉넉히 허용되고 난무하는 스포츠도 없을 것이다. 순 우리말로 옮긴 골프 용어, 이를테면 18구멍에 공알 넣기(골프), 작대기 세우기(어드레스), 구멍 넣기(홀인), 돌려치기(스윙) 따위의 표현은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골프장에서 유행하는 농담 중 18놈 시리즈가 있는데, 아마 수련적 의미를 형이하학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택시(턱도 없다 18놈아) ▲집시(집어올려 18놈아) ▲세시(세컨드 샷이야 18놈아) ▲아가씨(아직도 가라스윙하고 있냐 18놈아).
그밖에도 많다. 골프가 벙커를 싫어하는 이유, OB 났을 때 하는 성희롱적 속어 등이 다 18을 기준으로 만든 용어다.
그러나 수련의 의미로서 18은 6개의 감각이 마음에 3번 작용해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구조적 수의 합으로 이해해야 한다. 6개의 감각은 눈, 귀, 코, 입, 손, 뜻을 말한다. 눈으로 본 것은 생각으로 판단하고 기억 속에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즉 ‘본다-판단한다-저장한다’의 3가지 과정이 두뇌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여 습관 또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마찬가지로 들은 것, 냄새, 맛, 촉감, 의지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정한 감정의 형태를 구성한다.
통상 우리가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6감(六感)의 집합체로서 외부의 인식덩어리를 일컫는다. 말하자면 껍데기의 인식을 나라고 믿는 오류 탓에 온갖 잡다한 인생살이의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수련자들은 6감 3작용, 즉 18가지 감정을 없애야 참 본성으로 들어가 우주와 나의 절대세계를 체험한다고 해 산에도 들어가고 단전호흡도 하고 명상도 한다.
옛날 환인, 환웅시대 우리 민족에게는 선도(仙道) 수련 지침서가 3개 있었다. 천부경, 삼일신고(三一神告), 참전계경(參佺戒經)이 그것인데, 삼일신고 경전에도 18의 의미가 설명돼 있다.
‘참됨과 망녕됨이 서로 어우러져 세 갈래 길로 이루어졌으니, 가로되 감정과 숨쉼과 부딪힘이다. 감정에 6가지 기운이 있으니 기쁨과 슬픔, 두려움, 성냄, 탐냄, 싫어함이 있고, 숨쉼에 있어서 6가지는 탁함, 흐림, 차가움, 더움, 마름, 젖음이 있으며, 부딪힘에는 소리, 빛, 냄새, 맛, 음탕함, 만짐의 6개가 있다. 뭇사람은 착하고 악함과 맑고 흐림, 넘쳐남과 모자람을 서로 섞어서 여러 상태의 길을 마음대로 달리다가 생로병사의 고통에 헤맨다.’
쉽게 말하면 호흡을 고르고, 감정을 그치며, 부딪힘을 금해야 하는데, 이 세 가지가 각각 6개의 성질이 있기에 합하면 18이 되는 것이다.
감정과 호흡이 라운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첫째 홀에 들어서기 전에 ‘뜻’이 작용한다. 오늘은 몇 타를 쳐야지, 돈은 얼마를 잃거나 따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힌다. 신중하게 치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판단이 작용한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분별력이 생긴 다음에는 이렇게, 또는 저렇게 하겠다는 뜻이 두뇌의 기억창고에 저장된다. 저장된 의식이 숨어 있으면 무의식이고, 밖으로 나와 작용하면 습관이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는 만병의 근원이 감정 에너지의 과다사용에 있다고 말한다. 즉 각각의 감정이 신체근육이나 장부에 좋게 작용하면 근육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마음이 이완되지만 나쁘게 작용하면 근육과 마음이 딱딱해진다.
감정이 생기면 호흡이 흐트러진다. 흥분하면 숨이 가빠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면 신체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사격이나 양궁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호흡을 꼽는 것이 바로 그 까닭이다.
파4, 순환원리의 수
골프도 마찬가지다. 18홀을 돌 때 무엇보다도 감정이 없어야 자연과의 합일을 통한 자기완성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접대성 골프도 심취하는 맛이 있어야 하고 내기골프도 마음이 깨끗한 상태에서 서로 즐겨야 하며, 사업이나 정보 교류 목적으로 골프를 칠 때도 마음에 사특함이 없어야 뜻한 바를 이룰 수가 있다. 18홀의 개념을 알고, 감정을 그친다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골퍼요, 수련자의 자세라 하겠다.
18홀은 파(Par)4로 구성돼 모두 합하면 72타가 기준타수다. 하고 많은 수 중에서 하필이면 왜 동양에서 죽음을 뜻하는 4(死)를 기준으로 했을까. 인원을 4명으로 정한 이유는 또 뭘까.
옛 성인들은 사람이나 사물, 우주의 순환원리를 4단계로 구분해 설명했다. 불교에서 인체가 4요소로 구성돼 있다고 본 것이나(地水火風), 상고시대에 우주의 구성 원소를 4개로 파악한 것이나(氣水火土)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4는 주역의 사상(四象·원형이정(元亨利貞), 건곤감리(乾坤坎離))에서도 중요한 개념이지만 만물의 태어남부터 성장, 결실, 거둠에 이르는 순환의 원리를 설명하는 수다. 우주를 설명하는 고전에서는 우주가 원·방·각으로 이루어졌는데, 방이 사각형이라는 것은 지상의 창조물을 설명하는 말이다. 오행설도 수, 목, 화, 금의 4요소를 기준으로 삼고 토(土)를 덧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 도표를 보면 우주나 인간, 방위 등 모든 물질을 이루는 요소의 4단계 순환이 이해될 것이다.
위의 순환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현자가 주장한 것이다. 인체에도 위의 4요소에 맞는 장부(臟腑)가 있는데 기능이 비슷하다. 이를테면 물은 신장으로서 인체의 땀, 피, 오줌 등을 관장하고 나무는 간장으로서 피의 생성, 각종 독의 방패 노릇을 하며, 불은 심장으로서 영양공급과 체온을, 쇠는 폐로서 호흡을 주관하며 뼈를 굳게 한다. 중앙에 덧붙인 흙은 썩음과 탄생을 주관하며 위장과 비장이 이에 해당한다.
골프가 파4로 이뤄진 것은 바로 이러한 순환원리에 따른 것이다. 최초의 티샷을 위해 올려놓는 공은 죽은 공으로, 손으로 몇 번 만지든 벌타가 없다. 저장된 상태인 것이다. 티샷은 탄생이다. 드라이버로 하건 아이언으로 하건 힘차게 뻗어나가는 모습은 탄생을 뜻한다. ‘Drive is Show’라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홀인은 또다른 탄생 위한 죽음
아이언으로 그린에 공을 올리는 것은 성장을 의미한다. 인생에서도 성장이 끝나면 그 순간부터 노화가 시작되고 죽음이 가까워진다. 결혼의 주요 목적은 죽음에 대비한 2세의 생산이다. ‘Iron is Art.’ 즉 아이언에는 개인의 의지가 작용하며, 성장의 운명적 요소라는 표현이다.
그린에서건 주변에서건 홀로 다가가는 것이 어프로치인데, 이는 결실을 뜻한다. 태어나서 열심히 살다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열매를 맺는 행위, 이것은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공통원리다.
홀인한다는 것, 즉 공을 구멍에 넣는다는 것은 또 다른 탄생을 위한 죽음을 상징한다. 무덤에 들어간다는 뜻 이전에 하늘과 땅이 하나인 원시상태로 회귀하는 것으로서 극즉반(極卽反, 극에 이르면 원래대로 돌아감)의 원리, 원시반본(原始反本, 원래 시작된 자리로 돌아감)의 진리다.
이렇게 보면 골프의 기준타수가 72타인 것은 18홀을 4타씩 계산한 산술적 결과가 아니라 우주의 절대수인 9를 기초로 사람의 마음이 빚어내는 원리가 18개이므로 9홀을 두 번 돌게 하고, 여기에 사계절의 뿌리가 되는 생(生), 장(長), 염(廉), 장(長)의 4가지 순환원리와 천문의 변화인 72후(候)를 맞춘 것이다. 가히 천지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심성 변화가 오묘하게 결합된 도의 운동이라 이를 만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은 골프를 처음 배울 때 7번 아이언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퍼터로 시작해야 한다. 퍼터는 골프채의 제왕이다. 18홀 내내 쓰이지 않는 적이 없고, 어깨 회전의 기본, 손끝의 느낌, 철저한 집중, 그린에서의 힘의 집중과 분산 등 골프의 알파요 오메가라 하겠다. 나머지 골프채는 퍼터의 신하일 뿐이다.
웃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미국의 유명한 골프교습소에서는 모두 퍼터로 기초를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부터 프로에게 교습을 받게 되면 퍼터부터 배운다. 그래야 자연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경지를 터득할 수 있다.
골프채와 예수의 12제자
이제 골프채가 14개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14는 성서의 자연관을 뜻하는 성스러운 숫자다. 흔히 숫자 13을 불길한 악마의 숫자로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사실 13은 성서의 출애굽기에서 비롯된 프리메이슨의 숫자다. 프리메이슨은 시온의 칙훈서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라는 견해도 있으나 실체가 밝혀진 바 없다. 13은 프리메이슨이 전세계를 기독교 사상으로 통일하되 기독교 자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걸 경계하기 위해 불길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세상에 유포한 숫자다.
13은 또 미국을 건국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신성한 숫자다. 즉 예수와 12제자를 합한 13은 현재 미국 국기에 그려진 선의 숫자요, 초창기 미국 주(州)의 숫자이기도 하다.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에는 모든 것이 13개로 구성돼 있다. 별의 수, 발톱에 쥐고 있는 화살의 수, 오렌지 나뭇잎의 수가 다 13개다. 이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를 사랑으로 무장한다는 뜻과 성서의 이분법적 논리, 즉 선이 악을 궤멸시킨다는 뜻(화살)이 반영된 문양이다.
골프채 14개는 예수에 해당하는 퍼터와 9개의 아이언, 3개의 우드 및 예비 1개로 구분할 수 있다. 제왕인 퍼터를 뺀 12개의 채는 서양적 의미로는 예수의 12제자를 뜻한다. 또한 동양적 우주관에서는 하늘의 경도 12도를 나타낸다. 이렇게 보면 예수와 12제자는 전세계를 아우른다는 12경도를 상징한다.
1년이 12달인 것은 지구에서 태양의 궤도를 볼 때 한 달에 1도씩, 1년에 12도 움직이는 것을 표시한다. 물론 동양철학에서는 12지지(地支)라고 해 띠를 나타낸 12동물로 설명하고 있다.
퍼터를 뺀 12개의 골프채는 오행설에서 결실을 뜻하는 금(金, 아이언)과 탄생과 성장을 뜻하는 목(木, 우드)으로 구성돼 있다. 이로써 12라는 숫자는 오행설로 대변되는 동양의 자연관과 서양의 성서적 과학관의 공통된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새가 머리에 내려앉는 느낌
골프에서 기준타수보다 적은 점수를 가리키는 용어는 모두 새와 관련돼 있다. 버디는 자그마한 새의 총칭이고 이글은 독수리, 알바트로스는 갈매기 중에서 가장 높이 나는 신천옹으로 서양에서는 영험한 새로 알려져 있다. 또한 보기는 참새를 뜻하는 속어다. 하고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왜 새 이름을 갖다 붙였을까.
전통적인 동양적 삶에서 새는 하늘의 전령이요, 메신저 노릇을 했다. 새를 뜻하는 한자는 조(鳥)와 을(乙)이지만 이는 명사이고, 동사로서 새를 나타낸 문자는 이를 지(至)자다. 갑골문자 초기 형태에서도 엿보이듯이 새가 하늘에서 막 내려와 땅에서 날개를 접고 있는 모양을 그린 것이 지(至)자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를 하늘로 보고 두 발을 땅으로 본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즉 사람 속에 하늘이 있다는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데, 머리에 내려앉은 하늘의 느낌을 새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 수련하다 보면 상단전(두뇌)의 호흡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백회혈(정수리 부분)에서 새가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어떤 때는 전중혈(정수리 앞 2~3㎝)에서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맥박이 뛰는 것보다 더 강한 느낌이 전해진다.
골프에서 새를 뜻하는 버디나 이글 등은 이런 맥락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해진 타수는 일정한 범주의 생활을 나타내고 정신집중을 통해 타수를 줄이는 것은 새가 머리에 내려앉는 느낌 속에 도의 경지에 다가서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옛날 이집트의 제사장들이 머리에 쓴 모자가 새 모양이었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