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휴양지 페낭은 골프와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섬이다. 특히 신타사양 골프장은 난이도 높은 코스로 이뤄져 짜릿한 긴장을 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여유롭고 마음 편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어 골프 마니아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브룩 쉴즈가 주연한 영화 ‘블루 라군’에 나오는 지상낙원의 섬을 꿈꾸며 인천공항에서 직항편을 타니 5시간40분 만에 페낭 국제공항에 내려준다. 국제적 관광도시답게 입국수속은 빠르게 끝났다.
1985년 현대건설이 3년에 걸쳐 완공한 길이 13.5km(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의 페낭대교를 건너 말레이반도 케다 주에 있는 종합휴양지 신타사양 골프 리조트(Cinta Sayang Golf · Resort)에 도착했다. 늦은 밤인데도 말레이시아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열대과일 주스와 물수건을 건네준다. 일주일 동안 머무를 방을 배정받고 나니 누적된 피로가 엄습해와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리조트의 아침은 새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여명이 밝아오면 갖가지 새가 저마다 독특한 소리로 지저귀기 시작해 따로 모닝콜이 필요없다. 클럽하우스에서 내려다본 골프코스는 한가롭기만 하다. 말레이시아인들은 골프보다 축구, 배드민턴 경기를 좋아하는데다, 그나마 로컬 골퍼들이 지열과 습도가 높아 무더운 오전에는 플레이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과 과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1번 티잉 그라운드에 당도하니 코스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힘보다는 정교한 샷 요구
1989년에 개장한 이 골프장은 18홀 파72, 코스 길이 6697야드의 국제 규격을 갖췄고 각종 공식대회가 열리는 챔피언 코스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난이도가 높고 드로 샷, 페이드 샷, 워터 해저드를 넘기는 샷 등 다양한 샷을 요구하기에 힘보다는 정교함을 발휘해야 하는 코스다.
인도계 캐디를 배정받아 1번 홀에서 힘차게 드라이브 샷을 날리자 흰 공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야자나무 숲을 넘어 녹색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일시에 날아가버린다. 두 번째 샷을 치려고 거리를 묻자 캐디가 “이곳은 고지대라 비거리가 많이 나오므로 자칫하면 공이 그린 뒤 물속으로 빠지니 한 클럽 짧게 잡는 게 좋다”고 서투른 우리말로 안내해준다.
파5인 2번 홀에는 페어웨이와 그린을 따라 수로가 나 있다. 장타자들은 투온을 시켜 이글을 노려볼 만하지만 실패할 경우 호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페어웨이 정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드라이버 샷을 날린 다음, 두 번째 샷에서 공을 연못 바로 앞에다 갖다놓고, 세 번째 샷은 연못을 가로질러 그린 온을 시도하는 편이 낫다. 대부분의 골퍼가 드라이브 샷이나 두세 번째 샷 가운데 한 번은 공을 연못에 수장시키는 홀로 악명이 높다.
3번 홀은 길이가 비교적 짧지만(350야드) 페어웨이를 따라 왼쪽으로 그린까지 연못이 이어진다. 따라서 반드시 페이드 샷을 해야지, 훅이 되면 공이 연못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필자가 티샷한 공은 우측으로 날아가 일단 원하는 방향에 안착해 다행이었다.
말레이시아는 골프인구가 적은데다 지열과 습도가 높아 로컬 골퍼들이 오전엔 플레이를 기피한다. 그래서 한적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칩샷을 하려고 몇 번 연습 샷을 하자 악어새끼만한 이구아나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그린 옆 연못으로 기어들어간다. 골프장 주변을 둘러보니 갖가지 동물이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동물이나 새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친화적인 환경이 부럽기만 하다.
골프를 치기엔 좀 더운 날씨였지만, 앞뒤로 골퍼를 볼 수 없어 오랜만에 여유 있게 라운드를 하다 보니 스코어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6번 홀 그늘집(Halfway house)에 이르러 천연 코코넛 음료를 들이켜니 갈증이 싹 가신다.
이윽고 이 골프장에서 가장 어렵다는 14번 홀(550야드)에 도착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내려다보니 전형적인 슬라이스 홀이어서 왼쪽 페어웨이를 겨냥해야 했다. 오른쪽 숲 속으로 들어가면 무조건 페어웨이 쪽으로 내놓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떻게 두 번째 샷을 워터 해저드 앞 언덕 위에 정확하게 갖다놓느냐다. 샷이 조금 길면 공이 경사면에 걸리고 더 길면 연못 속으로 굴러간다. 따라서 페어웨이 우드보다는 아이언 6번 이하로 안정적인 샷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세 번째 샷은 내리막으로 거리가 160야드 이상 남는다. 대부분의 골퍼는 눈앞의 연못을 의식해 샷에 힘이 들어가 뒤땅을 치거나 토핑을 하게 돼 공을 물속에 빠뜨린다. 중상위 골퍼라 할지라도 이 홀에서 파를 잡는 것은 1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하다고 한다.
샷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공이 연못이나 정글 속으로 날아가버리면 골퍼들은 분노와 탄식, 자책으로 마음이 상한다. 이 코스를 설계한 타도 바셔는 골퍼들의 이런 마음을 달래고 분위기를 바꿔주기 위해 연못과 연못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를 다섯 개나 설계, 잠시나마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하게 만들었다.
신타사양 골프 리조트 코스의 특징은 4개의 파5 홀이 모두 어렵다는 것이다. 2번과 14번 두 개의 홀은 핸디캡 1, 2로 정면의 워터 해저드를 넘겨야 하고, 6번과 12번 홀은 비교적 짧은 홀이지만 티샷과 세컨드 샷 낙하지점에 벙커나 깊은 러프가 기다리고 있어 계획된 샷을 날리지 않으면 낭패를 보게끔 돼 있다. 네 개의 파5 홀을 돌면서 그린 공략법과 더불어 골프 교훈을 몸으로 터득했다. 계산하지 않고 치는 샷은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리고 과욕을 부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것. 평범하지만 자주 잊는 진리다.
골퍼들은 파5 홀에서 두 번째 샷은 반드시 3∼5번 우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샷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홀의 길이와 공이 놓인 지점, 그리고 샷 낙하지점의 해저드 유무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두 번째 샷이 아무리 잘 맞았다 해도 워터 해저드나 벙커, 심한 러프, 또는 나무 밑으로 공이 떨어지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럴 땐 페어웨이 우드 대신 미들 아이언이나 롱 아이언으로 샷을 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샷은 페어웨이에서 편안하게 9번이나 7번 아이언으로 풀샷을 하는 게 어정쩡한 어프로치 샷을 하는 것보다 편하고 실수도 줄일 수 있다. 어프로치 샷으로 50∼70야드의 거리를 정확하게 맞추기는 어렵다. 자칫 뒤땅을 치거나 토핑하기 일쑤다. 잘 맞은 드라이브 샷이나 두 번째 샷이 이런 샷 하나로 빛이 바래버린다. 그래서 프로 골퍼들은 파5 홀에서 투온이 되지 않을 바에야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거리에 두 번째 샷을 갖다놓는다. 이것이 요령이다.
신타사양 골프장 파5 홀을 통해 페어웨이 우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체험했지만 여기서 얻은 교훈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그린을 바라보면 투온에 도전하고픈 의욕이 솟구치고, 어떻게 해서든 그린 근처에 공을 갖다놓으려는 욕심이 나도 모르게 앞서기 때문이다. 골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절제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도의 수양과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가장 어렵다는 14번홀. 샷이 제대로 안 돼 마음 상한 골퍼들의 기분을 아름다운 풍경이 바꿔준다.
물론 모든 샷을 소극적으로 하라는 말은 아니다. 샷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신중을 기하되 모험을 할 때는 과감히 공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말은 쉽지만 실행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그래서 골프는 ‘정복되지 않는 스포츠’라고들 한다.
영국의 골프 명언 중에 ‘서두르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가던 길 멈추고 꽃향기를 맡는 여유로움을 지녀라’는 말이 있다. 이 골프장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얘기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천연 경관을 그대로 살린 신타사양 골프코스는 아름다운 정원이나 다름없다. 흰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있는 하늘 저편, 안개가 휘감은 구능 제라이(Gunung Jerai) 산은 킬리만자로의 설산을 연상케 한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뭉게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 위로 사냥에 나선 독수리가 선회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매일 즐기는 ‘대통령 골프’
골프 마니아라면 누구나 36홀이고 45홀이고 연일 마음놓고 골프를 쳐보는 게 꿈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런 소원을 이룰 수 있다. 아침 6시 반에 시작해 18홀을 마치고 점심식사와 낮잠을 즐긴 다음 기온이 내려가는 오후 2시 반 전후에 다시 시작하면 추가 18홀을 무난히 마칠 수 있다. 전반 9홀을 두 시간 만에 돌고 나서 후반 9홀에 들어가도 골프팀은 두세 팀밖에 눈에 띄지 않는다.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추가 라운드를 할 경우 카트비만 더 내면 된다. 또한 골프 아카데미가 있어 가족들에게 골프를 가르칠 수 있고, 코스가 한산해 티칭프로와 동반 라운드를 하면서 현장 레슨도 받을 수 있는데 그 비용도 매우 저렴하다. 늘 골퍼들로 붐비고 예약하기도 힘든 세계적인 명코스보다 때로는 이런 골프장에서 영어가 가능한 친절한 직원과 대화하며 여유롭게 골프를 즐기는 게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건강증진에도 일조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웰빙 골프’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