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호

‘朴-李 전초전’ 한나라당 전당대회 밀착취재기

”박근혜” 이재오 연설 때 자리 떠놓고 웬 기자 탓? ‘개혁 대표를!’ 너무 속보여 역풍 맞은 ”이명박”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입력2006-08-07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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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한나라당은 새 대표로 강재섭 의원을 택했다. 후유증이 적지 않다. 색깔론이 난무했다. 한나라당이 수구보수로 퇴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는 대선주자의 대리전으로 전개되는 양상도 뚜렷했다. 자칫하면 당이 깨질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 속 박근혜-이명박 대리전을 해부했다.
    ‘朴-李 전초전’ 한나라당 전당대회 밀착취재기

    7월1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로 선출된 5명의 최고위원이 인사하고 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린 7월1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은 대의원 6000여 명이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일곱 번째 순서로 이재오 후보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방 합동연설회 때면 늘 해오던 그만의 연설 방식이었다. “그렇게 말을 잘한다니, 얼마나 잘하나 한번 들어보자.” 방청석을 가득 메운 대의원들의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그의 경쟁자 강재섭 후보는 첫 번째 연사로 나와 이미 연설을 끝냈다. 전당대회 경선 결과는 으레 대의원들의 박수소리와 연호(連呼)의 강도로 예측 가능하다. 강 후보가 연설할 때 박수 소리는 꽤나 커 실내체육관을 울렸다. 전여옥, 강창희 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들도 강 후보의 연설 대목에서 함께 박수를 쳤고 ‘강재섭’을 연호했다.

    이재오 후보를 향한 박수 소리는 그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 후보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결사적’이었지만 넓은 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드디어 이재오 후보가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빨간색 재킷 차림으로 연단 건너편에 대의원들과 섞여 앉아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대의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연설을 듣다 말고 일어나 박 전 대표에게 인사하는 대의원도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수행원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 연단 오른편 기표소 옆으로 향했다. 이재오 후보의 연설은 계속됐다. 하지만 흐름이 끊겨버렸다. 전당대회 이후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자리 이동 사건이다.

    “한마디로 배신행위 아니냐”

    이재오 후보는 전당대회 패배 이후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주장한다. 배신했다고까지 했다. 전당대회에서 강재섭 후보에게 패배한 이재오 후보가 내뱉은 말이다.

    “저쪽(박근혜 전 대표측)이 다 공작한 것이다.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냄새를 풍겨 박심(朴心)을 자극했고 박 전 대표도 노골적으로 가담했다. 내가 전당대회장에서 연설할 때 박 대표가 자리를 뜬 것은 사실상 연설 방해 행위로밖에 안 보인다. 내가 원내대표를 할 때 그렇게 잘 모셨는데, 한마디로 배신행위 아니냐.”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당시 박 전 대표를 수행했던 관계자의 얘기다. “전당대회 실무를 맡은 당직자들이 자리를 이동해달라고 요청해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이런 결과(강재섭 후보의 대표 당선)를 생각했다면 이재오 후보가 연설하는 데 자리를 옮겼겠나.”

    “사진 기자들이 옮겨달라 해서”

    당시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방청석 가운데쯤에 앉은 박 전 대표를 사진기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박 대표는 당초 3층에 위치한 대구지역 대의원들과 함께 앉아있기 위해 3층으로 가려다 방청석 가운데 국책자문위원단과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연단 오른편 당직자석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자리는 기표소 바로 옆이었다.

    사진기자들은 빅3가 나란히 투표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먼저 당직자들에게 주문을 했다고 한다. “연설이 끝나면 대의원들이 한꺼번에 투표하러 기표소로 몰려 내려올 것이고 혼잡할 게 뻔하다. 박 전 대표 자리를 미리 기표소 옆으로 옮겨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성헌 사무부총장은 박 전 대표에게 이런 얘기를 전하고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순순히 따랐다. 박 전 대표측이 “우리가 왜 굳이 오해 받을 짓을 했겠느냐”고 항변하는 이유다. 얘기를 종합하면 박 전 대표 자리 이동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장면은 7개월여를 끌어온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 간의 팽팽한 힘겨루기 1막이 절정으로 치닫던 순간에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그게 문제였다.

    2005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한나라당은 한창 사학법(私學法) 투쟁 중이었다. 여당의 사학법 단독처리 강행에 한나라당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이재오 의원은 서울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 이명박계(系)로 분류되는 홍준표 의원도 서울시장 출마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또 다른 경쟁자인 맹형규 의원도 꽤나 오랜 시간 시장 출마에 공을 들인 상태였다.

    “이 시장 계열인 이재오, 홍준표 두 사람이 단일화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단일화가 쉽겠느냐”는 회의론이 일었다. 시민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적법 통과’ 효과를 톡톡히 본 홍준표 의원이 이재오 의원보다 지지도면에서 월등히 앞서 있었다. 하지만 이재오 의원도 꽤나 오랫동안 대의원들을 상대로 공을 들여놓은 상황이었다. 누구도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그즈음 새로운 원내대표 경선도 임박해 있었다. 강재섭 전임 원내대표는 여당의 사학법 통과를 막지 못한 뒤 사퇴한 상태였다. 직전 사무총장을 했던 박근혜 대표의 최측근 김무성 의원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그의 원내대표 등극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당 주변에선 “이재오 의원이 원내대표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초선의원 A씨의 말이다. “2006년 1월 신년하례식에 나갔더니 이 같은 얘기가 널리 퍼져 있더라. 이상한 것은 이재오 의원의 반응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칠 것 같던 이재오 의원이 어느 순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더니 이내 순순히 승낙하더라.”

    1월에 원내대표 경선이 열렸다. 당초 예상을 깨고 이재오 의원이 당내 비주류를 묶어내면서 당당히 원내대표로 당선된다. 친박(親朴) 진영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당시 이재오 의원에게 원내대표 출마를 설득했던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재오 의원의 마음을 서울시장 출마에서 원내대표 출마로 돌린 것은 7월 전당대회였다. 원내대표로 끝날 일이라면 이재오 의원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가 되겠다는 목표가 세워지면서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던 이재오 의원은 원내대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현관까지 나가 마중했는데…”

    당시 이 원내대표의 당선 인사말을 들어보자. “크고 작은 일을 박 대표와 상의해 당을 안정시키고 강력한 대여(對與)투쟁으로 당의 위기 타개에 한 몸을 바치겠다.” 그는 이후 박 대표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출근하는 박 대표를 현관까지 나와 마중하는 등 한없는 친밀감을 내보였다. 이재오 의원의 종착지가 원내대표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첫 번째 과제는 박 전 대표와의 관계 회복이었다. 박 전 대표를 향해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했던 그다. 더구나 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측근으로 꼽혀왔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보는 듯했다. 박 대표측 한 관계자의 말이다.

    “역대 원내대표(김덕룡, 강재섭, 이재오) 가운데 박 대표와 의견충돌이 거의 없었던 원내대표는 이재오 대표였다. 아무런 대립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오죽했으면 이재오 원내대표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는 얘기가 나왔을까.”

    이재오 원내대표로서는 모든 것이 순탄해 보였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차기 당 대표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김덕룡 의원이 낙마했다. 부인이 서초구청장 출마 희망자로부터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재오 원내대표의 유력한 경쟁자마저 사라진 것이다.

    박창달 전 의원은 5·31지방선거를 전후해 지방을 돌며 대의원들을 상대로 “다음 대표는 이재오”라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무엇보다 명분을 쥐고 있었다. 수도권 출신에 박근혜 전 의원과 대비되는 경력을 갖고 있었다. 박 대표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민주화 운동경력은 한나라당에 개혁적 이미지를 더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전당대회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대표 입성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2006년 7월 당 대표 경선은 처음엔 어디까지나 ‘개인전’ 양상을 띠었다. 강재섭 후보는 6월27일 ‘화합과 통합’을 내다걸고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을 이끌 적임자를 자처하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대권(大權)의 꿈을 접었다.

    이재오 후보에게 의외의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이 후보도 당 개혁을 내세우며 서민 대표를 자처했다. 대표 경선전은 양강(兩强)전으로 틀이 잡혔다. 서로 민정계니 민중계니 치고받는 신경전도 있었다. 그러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명박 당시 시장은 언론사와의 잇단 퇴임 기자회견에서 이재오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 시장은 6월2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 7월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어떤 인물이 대표로 뽑혀야 한다고 보나

    “좀 개혁적이어야 할 것이다. 보수당 부자당 영남당 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미지여야 한다. 또 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개헌이다 뭐다 정치적 활용을 하려 할텐데, 그걸 견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난 대선의 김대업 사건 같은 공작정치를 막을 수 있는 뱃심·야성·개혁성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

    ▶ 이재오 원내대표를 염두에 둔 것인가.

    “국민 여망이 그렇다는 것이지 특정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이재오 원내대표는 이 시장 사람이라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중립성을 지킨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이 당 대표의 이미지와 당의 이미지를 연관시킨다는 점이다.”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상 ‘나는 이재오 후보를 지지한다’였다. 이명박 당시 시장의 이 같은 인터뷰는 이후 박근혜 전 대표측이 이 전 시장이 전당대회 경선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전화 걸고 버스 동원해줬다?

    하지만 이 전 시장측은 이 대목부터 억울하다고 말한다. 조해진 전 서울시 정무보좌관의 얘기다. “그건 이 시장의 스타일이다. 당이 어찌 갔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유불리(有不利)를 계산하지 않고 한 말이다. 그것을 개입이라고 보는 것은 저쪽의 핑계일 뿐이다. 개혁적인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국민이 한나라당에 바라는 것 아니냐.”

    이 전 시장의 개입설 중엔 “이 전 시장이 위원장들에게 일일이 전화했다”는 얘기도 있다. 강재섭 후보측은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이 전 시장이 의원과 지역운영협의회 위원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재오 후보를 지지할 것을 부탁했다”고 주장한다. 전화를 받은 몇몇 위원장이 박 전 대표측에 이를 알렸고 박 전 대표 측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며 본격적으로 격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조해진 전 보좌관의 설명이다.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다. 한번은 A씨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이 시장님이 B의원에게 전화하면 우리 편으로 넘어온다’며 이 시장의 전화를 요청해왔다. 내가 보고했더니 시장님은 ‘비밀이란 게 없다. 내가 그렇게 전화하면 저쪽에도 다 들어갈텐데…’라고 말하더라. 며칠 지나서 A씨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왜 시장님이 전화를 안 하느냐’고 항의를 하더라.”

    이 전 시장 개입설의 또 다른 정황으로 등장한 얘기는 이재오 후보의 버스 동원이다. “23평 한옥에 살며 대표후보 등록비 7000만원도 여기저기서 빌려서 냈다는 이재오 후보가 도대체 어디에 돈이 있어 버스로 운동원을 동원했겠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의구심은 이명박 전 시장이 이재오 후보에게 경선 자금을 대준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졌다.

    이에 대해 이 전 시장측은 “도대체 버스 빌리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총장과 원내대표를 지낸 유력 대표 후보가 그 정도 여력이 없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공정성이 핵심인 차기 관리형 대표를 선출하는 경선이므로 이 전 시장은 특정 후보를 미는 듯한 행보는 일절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이재오 후보도 이 전 시장 측근이라는 색깔을 철저히 뺏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시장이 빌미를 주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기회를 포착한 박 전 대표측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김무성 의원 등 10여 명의 부산 경남지역 의원들이 4일 강재섭 후보와 만찬회동을 했다. 강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이었다. 6일에는 유정복 유승민 최경환 의원 등 친박(親朴) 의원 10여 명이 모여 강재섭 후보 지지를 결의했다. 개인전 양상이던 경선전은 급격히 조직 대 조직의 ‘세 싸움’으로 흘렀다.

    그런 가운데 5일 대구 제이스 호텔에서 당대표 출마 후보자들의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전날인 4일 서울에서 열린 후보자 합동연설회는 이재오 후보측의 판정승이었다. 강재섭 후보측은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흔한 피켓 하나 없었다.

    반면 이재오 후보측은 철저히 챙겨왔고 연설회장의 분위기를 다잡아갔다. 연설회장인 서울 잠실 역도경기장이 ‘이재오’ 연호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이 후보의 연설은 대단했다. 그는 현역 정치인 가운데 최고라는 대중 연설 기량을 맘껏 뽐냈다.

    강재섭 후보측 운동원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다음날 잡혀 있는 부산·대구지역 합동연설회는 분위기가 다를 것으로 강 후보측은 예상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대구 합동연설회도 이재오 후보 쪽이었다.

    “대구에서 너무 잘해 역효과”

    이재오 후보를 위해 오래전부터 동분서주했던 대구 출신 박창달 전 의원은 꽤나 준비한 듯했다. 제이스 호텔 인근에는 대형버스가 여러 대 서 있었다. 운동원들은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이재오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김을 빼듯 연설장을 빠져나가기까지 했다. 연설회장이 술렁댔다. 주객이 전도된 듯했다.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조차 주도권을 빼앗긴 강 후보측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이 대목이 이재오 후보측의 실수였는지 모른다. 당 인사들은 “너무 ‘오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장을 둘러싼 관광버스들 때문에 자금 유포설은 더 힘을 얻었다.

    이 후보가 대구에서마저 분위기를 우세하게 끌고 나가자 박 전 대표측은 더욱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박 전 대표측이 움직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박 전 대표측 의원과 원외 위원장들이 신속하게 결집하기 시작했다.

    강재섭 후보는 처음엔 쉽게 생각했다. 표 계산을 해봤다. 그는 TK, PK 지역에선 압도적 우위를 자신했다. PK 출신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과 TK 출신 이상배 의원이 최고위원 출마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호남에서는 김덕룡 의원으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김덕룡 의원의 경우 공천 헌금 파문 후 어찌된 일인지 이재오 후보와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상황이었다. 충청은 누구보다 친분이 깊은 강창희 전 의원이 지지해줄 것으로 믿었다.

    다만 이재오 후보의 홈그라운드인 수도권이 문제였다. 수도권 대의원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엄청난 비중이다. 그러나 ‘서울에선 맹형규 전 의원, 김덕룡 의원의 지원을 받고, 경기도에선 홍문종 도당 위원장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수도권도 쉬워 보였다.

    강 후보는 자신만만했다. 특히 의원, 원외 지구당 위원장을 상대하는 공중전에선 압도적 우위를 자신했다. 그러나 막상 선거전이 시작되니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았다고 한다. 한 참모 의원의 얘기다.

    “막상 경선에 나서 보니 텃밭인 TK 지역부터 공기가 이상했다. 대의원들이 이런 말을 하더라. ‘한 표는 강재섭 후보를 찍겠지만 다른 한 표는 이재오 후보를 찍어야 하지 않겠나. 대권주자도 영남인데 대표마저 영남에서 되면 곤란하지 않겠나. 이재오 후보가 대표가 되는 것도 박근혜에게 괜찮은 것 같다.’ 정신이 아득하더라. 큰일 났다 싶더라. 공중전은 우위를 자신했는데 지상전이 한참 힘들게 된 상황이었다.”

    7월3일 강 후보측이 자체 실시한 대의원 상대 여론조사에도 이런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765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강재섭 후보는 27.9% 지지에 그쳤고, 이재오 후보는 31.5%를 받았다. 서울, 인천, 광주, 경기, 강원, 충북, 전남, 전북, 경남, 제주에서 이재오 후보가 강 후보를 앞섰다. 심지어 경북에서도 39.0% 대 35.8%로 이재오 후보가 앞섰다.

    강 후보가 선두인 지역은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충남뿐이었다. 강 후보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이다. 만회할 길이 없었다. 30%가 반영되는 대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이재오 후보가 우위를 달리고 있었다.

    바로 이런 찰나에 당 대표 경선이 개인전에서 대선 주자간 조직 대결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재오 후보와 이명박 전 시장측이 빌미를 줬고 박 전 대표측이 그것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터졌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관련 기사가 전 신문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정국은 북한 미사일 문제에 빨려들었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국민은 물론, 일반 대의원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갔다. 판세가 이대로 굳어질 수도 있었다.

    미사일 정국이 며칠만 더 갔더라도 강재섭 후보측은 판세를 뒤집기 힘든 상황이었다. 강 후보측은 어떻게든 전당대회 소식을 언론에 실어야 했다.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 고민을 뜻밖에도 이재오 후보측이 풀어줬다.

    미사일 발사로 꺼진 불을 왜…

    미사일 정국이 며칠만 더 갔더라도 강 후보측은 판세를 뒤집기 힘든 상황이었다. 강 후보측은 어떻게든 전당대회 소식을 언론에 실어야 했다.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그 고민을 뜻밖에도 이재오 후보측이 풀어줬다.

    8일 일요일 오전이었다. 이재오 후보가 한나라당사를 찾아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는 박심(朴心)-이심(李心) 대리전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입을 열었다. “나는 서민의 대리인일 뿐 누구의 대리인도 아니다. 대리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자발적으로 그런 것을 차단했다.” 미리 의도했다기보다 자신의 격정을 이기지 못해 터져 나온 발언 같았다.

    이명박 전 시장의 대변인 격인 정두언 의원, 조해진 전 서울시 정무보좌관도 이재오 후보가 기자회견을 할 무렵 이례적으로 당사를 찾았다. 이들은 “이 전 시장은 누구도 돕지 않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이는 실책이었다. 거꾸로 대리전 공방에 불을 질렀다.

    이날 오후 강재섭 후보는 당사를 찾아 맞불을 놓았다. “나는 이명박 전 시장과 싸우는 느낌이다. 대리전을 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이 이재오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각종 사조직을 동원하고 있고 여기저기에 전화하고 있다.”

    이심(李心)-박심(朴心) 전면전은 미사일 정국에 파묻힐 뻔했다. 그런데 이재오 후보측은 그만 작은 불을 진화하려다 불길을 키워놓고 말았다. 드디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심 대 박심 전면전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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